박일경 정치사회부 차장

하지만 선거 승리와 시정 운영은 전혀 다른 문제다. 민선 9기 서울시는 오히려 협치 없이는 한 걸음도 나아가기 어려운 정치 지형에 놓여 있다.
겉으로는 오 시장이 서울시정을 이끌지만 현실은 ‘여소야대’다. 서울시 자치구 25곳 가운데 17곳을 더불어민주당 소속 구청장이 맡고 있다. 서울시의회 역시 전체 118석 중 민주당이 80석을 차지한다. 서울시 핵심 정책인 재개발‧재건축부터 도시계획, 각종 조례 개정까지 야당 협조를 얻지 못하면 추진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미 곳곳에서 이런 현실이 드러난다. 민주당 구청장들은 500세대 이하 소규모 재건축‧재개발 사업에 관한 인허가 권한을 자치구로 넘겨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서울시가 신속통합기획을 내세우면서도 520여 곳에 이르는 정비사업 심사를 사실상 한 부서가 전담하는 현재 시스템으로는 속도를 낼 수 없다는 주장이다.
서울시는 사업 일관성과 난개발 방지를 이유로 신중한 입장이지만, 어느 한쪽 주장만으로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결국 답은 협의와 조정이다.
중앙 정부와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최근 오 시장은 영등포구 양평동 신동아아파트 정비사업 현장을 찾아 준공업지역 용적률을 최대 400%까지 높인 규제 완화를 소개하며 공급 확대 의지를 강조했다.
그러나 앞으로 공급 확대의 핵심 무대로 거론되는 곳은 영등포만이 아니다.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이 언급했듯 구로‧가산 일대 서울디지털국가산업단지 활용이 중요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문제는 국가산업단지는 서울시가 단독으로 개발 방향을 결정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니라는 점이다. 국토교통부가 지정‧조성하고 산업통상부가 관리하는 국가산업단지는 공원 하나를 만드는 일조차 중앙 정부와 협의가 필요하다. 하물며 산업단지 이전과 주택 공급을 포함한 대규모 개발은 서울시 혼자 추진할 수 있는 사업이 아니다. 김 정책실장 또한 “서울시 혼자 감당할 수 없다”며 중앙 정부와의 협력을 전제로 제시했다.
서울의 미래는 서울 경계 안에서만 해결되지 않는다. 기업 이전과 산업 재배치, 신규 주택 공급은 경기도를 비롯한 수도권 전체와 연결된다. 서울시와 중앙 정부‧경기도가 함께 움직여야 실질적인 성과를 낼 수 있다. 정치적 이해관계가 다르다는 이유로 각자 목소리만 높여서는 수도권 문제를 풀 수 없다.
오 시장은 대통령이 주재하는 국무회의에 참석하는 유일한 지방자치단체장이다. 야당 소속 시장이라는 정치적 상징성에만 의미를 둘 일이 아니다. 국토부와 산업부‧청와대 정책실 등과 서울시 현안을 직접 조율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다. 시민이 서울시장에게 기대하는 것은 정치적 존재감이 아니라 도시 문제를 해결하는 행정력이다.
5선 시장이란 타이틀은 화려하다. 그러나 진정한 리더십은 혼자 밀어붙이는 데서 나오지 않는다. 다른 정치세력과 지방 정부‧중앙 정부를 설득해 성과를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비로소 증명된다. 지금 서울시에 필요한 건 승자의 자신감이 아니라 협치의 지혜다. 그 것이 서울시민이 오세훈 시장에게 부여한 또 하나의 과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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