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지속가능성공시, '방향·속도' 신중하지 않으면 천문학 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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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의형 한국지속가능성인증포럼(KOSRA) 회장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공시 의무화가 본격화된 가운데, 2028년부터 시행될 정부의 지속 가능성 공시 로드맵이 확정된 최근 한 사무실에서 관련 업무가 진행되고 있다.

담론으로만 그칠 것 같던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과제들이 눈앞의 현실로 다가왔다. 지난주 정부의 지속 가능성 공시 로드맵이 최종 확정되면서다. 확정안은 2월에 공개되었던 초안에 비해 강화된 내용을 담고 있다. 입법을 통해 2028년부터 공시를 의무화한다는 것인데 첫해에는 107개 기업부터 공시를 시작하지만 2029년에는 약 150개, 2030년에는 약 250개 기업에 공시 의무가 부과된다. 자신이 직접 공시를 하지는 않지만, 공시 기업을 통해 정보를 제공해야 하는 기업의 수는 3000개를 넘어선다. 공시의 방식이 종속회사를 포함하는 연결기준 공시이기 때문이다. 이제 공시에 관한 한 기업들에 퇴로는 없어 보인다. 앞으로 갈 길만 남았다.

■ 기업의 과제

기업이 감당해야 하는 공시 과제는 두 가지다.

첫째는 유럽형 ESG 공시다. 소위 기업지속가능성공시지침(CSRD)에 따른 유럽형 ESG 공시는 사회적 책임에 관한 공시다. 기업이 환경규제나 온실가스 배출규제 등 각종 규제를 잘 수용하고 있는지는 물론이고 산업안전이나 인권보호 등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있는지를 외부에 알리는 공시이다. 직접적인 법적 규제뿐 아니라 다양한 사회적 규범의 준수 여부를 유럽지속가능성공시기준(ESRS)라는 공시 기준에 따라 공개하는 것이다. 유럽 기업을 대상으로 하지만 2029년부터는 해외 기업에도 적용된다. 유럽에 사업장을 유지하면서 일정 규모 이상의 판매를 하는 국내 기업은 의무적으로 공시해야 한다. 유럽시장에 수출을 지속해온 수많은 국내 기업에는 피할 수 없는 과제다. 직접 공시를 하지 않지만, 공시 대상인 기업에 납품하는 공급망에 속한 기업들도 필요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각종 규제와 규범을 제대로 준수하고 있는지 △준수를 위한 내부통제는 갖추고 있는지 △미준수 사항이 있다면 이에 대한 대책은 무엇인지 등을 공개하거나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공시의 미준수나 공시의 실패는 판매 중단뿐 아니라 자본시장을 통한 제재로 이어질 것이 분명하다.

두번째는 정부가 로드맵을 통해 공개한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형 지속가능성 공시다. 로드맵에 따르면 주요 상장 기업은 2028년부터 의무적으로 ISSB기준에 근거를 둔 국내 공시 기준(KSSB 기준)에 따라 지속 가능성 정보를 공개해야 한다. ISSB에 근거한 공시는 유럽의 공시 기준인 ESRS에 따른 공시와 달리 기업의 지속가능경영 결과를 외부에 공개하는 것이다. 지속가능경영에 대한 정의는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기업 외부의 환경 변화를 적극적으로 감지하고 수용하면서 그에 상응하는 장기 경영 전략을 수립하고 실천하는 경영을 말한다. 사업의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기업이 어떻게 대응하고 관리하고 활용해 가는지 공시하는 것이다.

두 가지의 공시, ESRS와 ISSB 기준에 따른 공시는 같은 것처럼 오해되기도 한다. 두 공시가 모두 환경과 사회라는 기업 외부의 변수와 연결돼 있고 공시를 통해 기업 외부에 정보를 공개한다는 유사성 때문이다. 하지만 이 두 가지 공시는 근본적으로 다른 목적과 다른 성격을 가진 공시다. 전자가 기업이 감당해야 할 사회적 책임의 이행에 관한 공시지만 후자는 기업의 장기적인 생존 전략의 실행에 관한 공시이다. 전자가 탄소 감축이나 수자원 보존 소비자 권리의 보호 같은 사회적 책임 이행의 공개라면 후자는 소비자의 변화나 기술의 변화 공급망의 지정학적 변화 등에 기업이 얼마나 적극적으로 대응하는지에 대한 공개다. 물론 공시를 요구하는 법적 환경도 다르다. 전자가 유럽의 법에 따른 것인데 반해 후자는 국내법에 따른 공시다.

■ 제도의 불확실성

지속가능성 공시는 선진국들에조차도 생소한 새로운 제도다. 제도의 설계가 끝났고 시행이 임박했지만 누적된 경험이 없다. 유럽의 경우 한동안 공시제도를 유지해 왔다. 하지만 과거의 공시는 국제적인 정합성을 가진 새로운 의무공시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공시의 목표는 물론 형식과 내용도 매우 달랐다. 이런 이유로 새로운 제도의 도입에 따른 기업들의 부담은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다. 무엇보다 짧은 시간 내에 정보의 수집과 보고를 위한 인적·물적 시스템을 갖춰야 하는 부담이 크다. △제도의 요구를 양적으로 질적으로 충족시킬 수 있는지 △제공되는 정보가 정보의 이용자에게 충분히 유용한지 △정보제공에 실패하는 경우 법적 사회적 책임은 어떻게 감당할지 등의 과제도 산적해 있다.

제도 자체의 불안정성은 기업에 더 큰 부담을 준다. 지속가능성 공시의 뼈대가 되는 ISSB 공시 기준은 기준 자체가 미완성 상태다. 기후를 제외한 상세 기준이 준비되지 않았다. 기준의 정체성에 대한 의문도 지속된다. 투자자를 위한 공시라는 대원칙과는 달리 규정의 많은 부분이 이해관계자들을 위한 정보제공에 집중돼 있다. 이런 불안정성은 공시 기준의 대폭적인 수정이나 변경으로 이어질 수도 있어 공시의 책임을 진 기업에 더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

유럽은 ESG의 발원지이다. 오래전부터 ESG 규제를 쏟아냈고 자발적인 공시를 시행한 경험도 있다. 그런데도 규제도 공시도 여전히 시행착오를 겪는 중이다. 지난해 초에 겪었던 옴니버스 법안의 채택은 그 불안정성의 구체적인 증거다. 비유럽 국가들은 ESG의 역사가 짧다. 유럽의 규제에 수동적으로 대응해 왔을 뿐이다. 그런 이유로 규제의 도입보다는 공시에 무게를 싣고 있다. ISSB 공시 기준이 공표된 이후 이에 기초한 강제적 지속 가능성 공시를 앞다퉈 도입 중이다. 우리의 로드맵 제시도 이런 차원의 결정이다. 하지만 비유럽국가들 준거 기준인 ISSB 기준은 기후를 제외한 다른 주제에 대해서는 아직 세부 기준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향후 공시해야 할 주제가 무엇인지조차 정하지 못하고 있다. 미완성의 제도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더 큰 문제는 ISSB 공시기준의 정체성 혼란이다. ISSB 기준에 따른 공시는 지속가능경영의 결과를 주주와 투자자 그룹에 공개하기 위한 목적의 공시다. 규제 및 사회적책임의 준수 여부를 공개하는 ESRS에 따른 공시와는 다르다. 하지만 현실의 ISSB 공시기준은 유럽의 ESG 공시기준인 ESRS와 유사한 내용(사회적 책임)과 형식(측정된 지표)을 담고 있다. 현행의 ISSB 기준이 주주와 투자자를 위한 공시 목적의 기준인지 의심은 커지고 있다.

■ 방향과 속도의 조절

유럽이 중심이 된 ESG 규제와 공시는 사실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나 있다. 해외의 법과 규제에 따른 것이기 때문이다. 구조적인 불안정성에도 불구하고 정부도 기업도 수동적으로 수용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ISSB 공시 기준에 따른 공시는 해외의 법이나 제도가 아니고 우리의 제도에 근거하고 있다. 이 제도의 운용 방향과 속도에 관해서는 정부와 기업이 머리를 맞대고 현명한 해법을 찾아야 한다. 공시기준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고 정체성에 대한 의문도 남아있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무엇보다 공시의 범위 확장에 대해서는 신중한 입장이 필요해 보인다. 다수의 국가가 ISSB기준에 따른 공시를 앞다퉈 제도화하고 있다. 하지만 공시의 범위에 관해서는 보수적이며 소극적이다. 대부분 국가가 공시의 대상을 기후에 한정하고 있다. 우리도 공시의 주제를 확대하는데 신중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공시의 준거 기준인 ISSB 기준의 개선에 관한 국제적인 협력도 중요해 보인다. 한국은 ISSB 공시 기준을 사용하는 비유럽국가 중 가장 핵심적인 국가 중 하나다. 비유럽 국가 중 경제 규모나 산업화의 정도 자본시장의 중요성 면에서 한국은 선두에 있다. 홍콩이나 싱가포르 등은 물론이고 타 대륙의 국가들과도 비교할 수 없다. ISSB 기준을 채택한 일본이나 호주 등 주요국가들과 함께 기준의 완성도를 높이는 공동의 노력을 해 나갈 필요가 있다.

백년 이상 지속돼 온 재무 공시를 위해 시장은 국내에서만 매년 수십조원의 비용을 지불한다. 지속가능성 공시가 시작되면 시장은 이에 버금가는 비용을 지불할지도 모른다. 공시의 방향과 속도에 대한 신중함이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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