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지식재산처는 1367억원 규모의 지식재산(IP) 투자펀드 조성 계획을 발표했다. 눈에 띄는 대목은 투자 전 ‘특허 가치평가’가 요건으로 명시된 점이다. 국내 IP금융이 12조원을 넘어선 지금, 가치평가는 투자 유치와 기술이전, IP 담보대출을 뒷받침하는 핵심 인프라가 됐다.
그러나 특허는 부동산이나 주식처럼 통용되는 시장가격이 있는 자산이 아니다. 같은 특허라도 적용 산업, 시장의 성장성, 경쟁사의 회피설계 가능성, 표준특허 채택이나 라이선스 가능성에 따라 경제적 가치가 크게 달라진다. 따라서 가치평가는 미래 가치를 정확히 맞추는 작업이 아니라, 미래의 경제적 가능성을 합리적으로 설명하는 과정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전통적으로 특허 가치평가는 세 가지 방식으로 이뤄져 왔다. 기술 개발에 투입된 비용을 기준으로 삼는 원가접근법, 유사한 특허의 거래 사례와 비교하는 시장접근법, 특허가 앞으로 벌어들일 현금흐름을 현재 가치로 환산하는 수익접근법이 그것이다. 어느 방식이든 전문가 분석이 필수여서 상당한 비용과 수주의 시간이 드는 작업이었다. 최근에는 여기에 AI와 데이터 분석이 접목되고 있다.
특허 인용관계와 패밀리, 권리범위, 소송·라이선스 이력 등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해 분 단위의 등급 평가가 가능해졌고, 정식 가치평가에서도 AI가 핵심 변수를 추정하고 전문가가 검토하는 방식으로 시간과 비용의 문턱이 낮아지고 있다. 물론 AI가 미래를 예측해 주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평가의 객관성과 일관성을 보완하고 평가에 대한 접근성을 넓힌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해외의 초점도 정확한 가격이 아니라 신뢰할 수 있는 평가 체계에 맞춰져 있다. 미국은 라이선스와 거래, 소송을 통해 시장에서 IP 가치가 검증되는 구조를 발전시켜 왔고, 싱가포르는 무형자산 공시체계를 통해 투자자와 금융기관이 기업의 IP를 투명하게 들여다볼 수 있도록 지원한다. 방향은 같다. 평가금액 자체보다 평가 과정의 객관성과 설명가능성을 높이는 것이다.
IP금융이 커질수록 가치평가의 역할도 커진다. 중요한 것은 하나의 정답을 내놓는 평가가 아니라, 시장 참여자들이 각자의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신뢰의 기준을 쌓는 일이다. 특허 가치평가가 기술과 시장, 데이터를 잇는 의사결정의 기반으로 진화할 때, IP금융의 성장도 그 위에서 지속될 것이다. 고은주 삼성벤처투자 투자심사역·변리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