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별 기업 유치 경쟁 공허함만
자립기반 다지는 작업 펼쳐야할 때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벌어야 산다’는 순서를 당연하게 받아들여 왔다. 최근 정부가 내놓는 경제·산업 정책들을 보면, 지난 산업화 이후 견지해온 성장 문법이 그대로 반복되고 있다. 화려한 숫자와 장밋빛 전망이 쏟아지지만, 이것이 과거와 같은 효과를 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문제는 성장 자체가 아니라, 성장을 생존의 전제로 삼아온 우리의 사고방식이다.
정부가 최근 발표한 ‘2026년 경제성장전략’은 2.0% 성장을 목표로, 재정 확대, 정책금융 추가 투입, 시설투자자금, 수출금융 확대, 그리고 ‘한국형 국부펀드’ 설립까지 담고 있다. 반도체 중심 전략산업 육성, 방산 4대 강국 도약, AI 대전환 같은 과제들도 하나같이 속도와 규모 경쟁을 전제로 설계돼 있다. 숫자는 화려하지만, 이 성장이 기후위기를 가속화하고, 양극화를 심화시킬 수 있다. 특히 일자리에 대한 우려를 불식할 가능성을 제대로 따져봤는지 의문이다.
우리 헌법은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며 생존권을 보장한다. 그런데 이 권리는 실제로 국가의 재정 형편에 의해 좌우된다. 따라서 정부는 성장과 복지를 추진해야 한다.
프랑스는 1970년대 초까지 30년간의 고성장기를 바탕으로 복지를 확대해 왔다. 그러나 2025년 기준 국가부채가 국내총생산(GDP)의 115.6%까지 불어났고,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2027년 120%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한다. 미국도 다르지 않다. 의회예산국은 2026년 재정적자가 GDP의 5.8%(1조900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성장이 계속될 것이라는 전제 위에 세워진 생존권은, 성장이 멈추는 순간 지속가능성을 잃는다. 이는 프랑스와 미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 헌법 제34조가 보장하는 생존권도, 국가 재정이 흔들리면 같은 운명을 피하기 어렵다.
지방자치단체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진다. ‘벌어야 산다’는 논리는 곧 기업이나 공공기관 유치전쟁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국토교통부 산하 35개 국가산업단지 중 축구장 882개 규모가 아직도 비어 있다. 경남항공산단은 분양률이 5%에 그쳐 95%가 미분양이고, 경기 동두천 산단은 98.9%가 비어 있다. 지방에 조성한 산업단지 상당수가, 텅 빈 부지로 남아 있는 것이다. 원주·진천·음성·전주 같은 혁신도시들도 공공기관 이전으로 초기 인구는 늘었지만, 지속적인 성장 동력은 부재한 상황이다. 기업을 유치하여 지역을 살리겠다는 순서는, 정작 기업이 오지 않으면 성립되지 않는다.
생존주권은 “살아야 번다”로 이 순서를 뒤집는다. 기업유치보다 먼저, 식량과 에너지처럼 기초생활비를 스스로 감당할 수 있는 자립기반을 확보하자는 것이다. 이처럼 생존주권은 시장과 국가에 기대지 않고도 살 수 있는 최소한의 힘을 의미한다. 독일의 펠트하임 마을은 1990년대 중반 세운 풍력발전기 몇 기에서 시작해 지금은 전력을 100% 자급하고, 전기요금은 인근보다 훨씬 낮으며 실업률은 사실상 0%다. 기업을 유치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살 수 있는 기반을 만들었더니 사람이 모인 것이다. 인구 감소로 소멸을 걱정하는 한국의 지자체들이 정작 힘을 쏟아야 할 곳은 바로 이 지점이다. 지역공동체가 기초생활 안정을 위한 최선의 정책을 펼친다면, 화려한 기업유치 공약보다 더 많은 사람을 지역으로 불러올 수 있을지 모른다. 갈수록 불확실해지는 일자리도 기초생활비가 안정되는 곳이라면 새로운 도전이 가능할 것이다. 일자리가 사라지는 미래에는 더욱 매력적인 유인책이 될 수 있다. 성공이 불확실한 기업유치보다 훨씬 직관적이고 지속가능한 정책이다.
개인의 삶도 다르지 않다. 벌어서 모든 것을 해결하는 삶은, 소득이 흔들리는 순간 모든 것이 함께 흔들린다. 반면 기초생활비를 스스로 감당할 수 있는 기반을 확보하면, 그 기반 위에서 하고 싶은 일과 꿈을 실현할 여지가 훨씬 크다. 기초가 흔들리면 꿈도 함께 흔들리지만, 기초가 단단하면 꿈은 실패해도 다시 설 자리가 남는다. 더 많이 버는 능력도 중요하지만, 적게 벌어도 흔들리지 않는 삶을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것이 바로 생존주권의 힘이다.
정부와 지자체, 그리고 우리 모두는 지금까지 ‘벌어야 산다’는 순서로 달려왔다. 그러나 AI와 기후위기의 시대에는 그 순서가 더 이상 지속가능하지 않을 수 있다. 이제는 먼저 살아갈 기반을 만들고, 그 위에서 성장하는 사회로 전환해야 한다. 살아갈 기반이 있는 사람만이 실패를 견디고 다시 도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