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성 한국사립대학총장협의회(사총협) 사무총장

반도체 산업이 우리 경제를 견인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중심으로 한 반도체 기업들은 유례없는 실적을 거두고 있으며, 이에 따라 성과급 확대와 사회적 환원 방안도 중요한 화두가 되고 있다. 기업이 좋은 실적을 내면 임직원에게 성과를 배분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기업의 성장이 기업 내부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그 성과가 미래 성장동력을 키우는 투자로 이어질 때 산업과 사회는 함께 발전할 수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기업의 성과가 인재 양성과 기술 혁신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일이다.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은 특정 기업만의 성과가 아니다. 수십 년간 이어진 국가의 산업정책과 연구개발 투자, 그리고 우수한 인재를 길러낸 대학이 있었기에 가능한 성과다. 우리 기업의 경쟁력 역시 대학이 길러낸 인재를 기반으로 성장했다. 산업 발전의 결실은 다시 다음 세대 인재 양성에 투자돼야 한다. 기업이 대학의 연구 성과와 인재를 바탕으로 성장했다면 이제는 그 성과의 일부를 대학으로 환원하는 구조를 고민해야 한다.
축구계에는 이를 잘 보여주는 제도가 있다. 국제축구연맹(FIFA)은 선수가 이적할 경우 이적료의 5%를 해당 선수를 육성한 학교나 클럽에 지급하는 '연대기여금' 제도를 운영한다. 손흥민 선수가 해외로 이적했을 때 모교가 연대기여금을 받은 것도 같은 이유다. 이는 과거의 공로에 대한 보상이 아니라 앞으로도 우수한 선수를 길러달라는 투자다. 산업계도 마찬가지다. 우수 인재를 길러낸 대학의 역할을 인정하고 산업의 성과 일부를 다시 대학에 투자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장기적으로 국가 경쟁력을 높이는 길이다.
우리나라 고등교육에서 사립대학이 담당하는 역할은 절대적이다. 교육통계에 따르면 대학 졸업생의 80% 이상이 사립대학 출신이다. 첨단산업을 이끌 연구인력과 전문인력 역시 상당수가 사립대학에서 배출된다. 그럼에도 사립대학의 교육·연구 여건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등록금은 오랜 기간 사실상 동결됐고 학령인구 감소까지 겹치면서 대학 재정은 빠르게 악화되고 있다.
고등교육 재정의 현실은 각종 통계에서도 확인된다. 지난해 우리나라 학생 1인당 공교육비는 초등교육 1만9749달러, 중등교육 2만5267달러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을 웃도는 수준이다. 그러나 고등교육은 1만4695달러로 OECD 평균인 2만1444달러의 68.5%에 불과하다. 초등교육과 비교하면 74.4%, 중등교육과 비교하면 58.2% 수준에 그친다. 세계 10위권 경제 규모를 가진 국가라는 점을 감안하면 고등교육에 대한 공공투자는 매우 부족한 수준이다.
교육부의 예산 구조도 이를 보여준다. 2026년도 교육분야 예산은 99조4774억원이지만 고등교육 예산은 16조392억원이다. 그러나 국가장학금 5조5371억원과 국립대학 운영지원비 5조2401억원을 제외하면 대학이 교육혁신과 연구역량 강화를 위해 활용할 수 있는 사업비는 5조원 남짓이다. 이마저도 국공립대 지원분을 제외하면 사립대학이 활용할 수 있는 사업비는 약 3조원으로 전체 고등교육 예산의 18.8% 수준에 불과하다. 우리나라 대학들이 세계 유수 대학들과 같은 조건에서 경쟁하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대학에 대한 투자는 단순히 교육기관을 지원하는 차원이 아니다. AI와 반도체 등 첨단산업 경쟁의 출발점은 결국 대학이다. 세계 주요 국가들이 대학을 연구개발의 핵심 거점으로 육성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대학이 충분한 연구시설과 교육 여건을 갖춰야 우수 인재를 지속적으로 배출할 수 있고, 기업도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다. 고등교육에 대한 투자는 대학만을 위한 지원이 아니라 산업 경쟁력과 국가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미래 투자다.
지금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기회이기도 하다. 반도체 산업의 호황으로 기업의 영업이익은 크게 늘었고 정부 역시 초과세수 증가를 기대하고 있다. 반도체 기업 영업이익의 1%인 약 6조2000억원과 초과세수 증가에 따른 지방교육재정교부금 증액분 약 5조원을 고등교육 재정으로 활용한다면 11조원 이상의 추가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 확보된 재원은 AI 연구시설과 첨단 기자재 확충, 우수 교원 확보 등에 집중 투자해야 한다. 이는 다시 우수 인재 양성과 기술혁신으로 이어지고, 산업 경쟁력 강화라는 성과로 돌아올 것이다.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은 결국 사람에게서 나온다. 그 사람을 키우는 곳은 대학이다. 대학이 흔들리면 산업도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어렵다. 이제는 기업과 정부, 대학이 함께 성장하는 재정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반도체 산업의 성과 일부를 미래 인재 양성과 대학 경쟁력 강화에 투자하는 일은 우리 사회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한 선택이다. 지금이야말로 고등교육에 과감히 투자해야 할 골든타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