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공지능(AI)의 확산으로 글로벌 노동시장이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AI로 큰 성과를 거두는 기업들은 인간의 전문성을 증폭시키고 혁신을 가속화하며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반면, AI를 단순 자동화 수단으로만 활용하는 기업들은 생산성과 성장 면에서 크게 뒤쳐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판단력·창의성·리더십 등 인간 고유의 역량이 노동시장에서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삼일PwC는 이 같은 분석을 담은 '2026 AI 일자리 바로미터(2026 AI Jobs Barometer)’ 보고서를 22일 발표했다. 보고서는 PwC가 전 세계 27개국 10억 건 이상의 채용공고를 분석한 결과를 바탕으로 작성됐다.
보고서에 따르면 AI는 단순히 일자리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직무 구조 자체를 재정의하고 있다. AI가 반복 업무를 자동화하면서 인간의 전문성과 판단력이 더욱 중요해지는 ‘전문화된(Professionalised)’ 일자리와 AI를 통해 업무 수행이 상대적으로 쉬워지며 진입 장벽이 낮아지는 ‘대중화(Democratised)된’ 일자리 간 격차가 빠르게 벌어지고 있다. 보고서 분석 결과 전체의 22%가 전문화된 일자리로, 52%가 대중화된 일자리로 재편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구조 변화는 일자리 성장과 보상 수준에도 그대로 반영된다. 예를 들어 방사선과 전문의, 채용 담당자 등 전문화된 일자리는 정보기술(IT) 시스템 관리자, 진료 행정 담당자 등 대중화된 일자리에 비해 일자리 증가 속도가 두 배 빠르며, 2021년 이후 임금 상승률 역시 42%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는 “이는 AI가 특정 직무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노동시장 내 ‘가치의 기준’을 바꾸고 있음을 시사한다”며 “같은 직군 내에서도 어떤 역할이 인간의 전문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재편되는지에 따라 성과와 보상이 크게 달라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AI의 영향은 신입 직무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났다. 미국 내 약 240만 건의 신입 채용공고를 분석한 결과, AI 노출도가 높은 신입 일자리는 노출도가 가장 낮은 신입 일자리에 비해 시니어급 역량을 요구할 가능성이 7배 더 높은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AI 노출도가 높은 신입 일자리에 새롭게 요구되는 역량의 52%가 동기부여, 리더십, 전략적 의사결정, 팀 빌딩 등 전통적으로 시니어급에게 요구되던 역량인 반면, AI 노출도가 낮은 신입 일자리에서 그 비중은 7%에 그쳤다.
이처럼 '시니어화된(Seniorised)’ 신입 직무의 채용공고는 2019년 이후 35% 증가한 반면, 그 외 신입 직무는 10% 감소했다. AI가 단순 업무를 빠르게 대체하면서 초기 경력 단계에서도 곧바로 복잡한 문제 해결과 의사 결정을 요구하는 방향으로 노동시장을 재편하고 있는 것이다.
피트 브라운(Pete Brown) PwC 글로벌 인력 리더(Global Workforce Leader)는 “경험과 전문성 간의 전통적인 관계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과거에는 반복적인 업무 수행 자체가 일종의 학습 과정으로 작용했지만, AI가 이를 대체하면서 커리어 초기 단계부터 판단력·리더십·적응력과 같은 고차원 역량에 대한 요구가 크게 높아지고 있다”며 “기업이 구성원의 성장을 효과적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인재 육성 방식 전반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보고서는 또 하나의 중요한 변화로 기업 간 격차 확대를 지목했다. AI 활용도가 높은 기업일수록 생산성과 고용 모두에서 더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으며, 이는 AI가 단순한 비용 절감 수단이 아니라 성장 전략으로 활용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AI 노출도가 가장 높은 기업들은 2018년 대비 2025년 생산성이 33.5% 성장한 반면, AI 노출도가 가장 낮은 기업들의 생산성 증가율은 24%에 그쳤다. 특히 AI 노출도가 높은 기업 중 생산성 상위 20%, 이른바 '슈퍼스타 기업'은 같은 기간 생산성이 163% 향상됐다. 이는 AI 노출도가 높은 기업 전체 평균(33.5%)의 약 5배에 달하는 성과다.
이 과정에서 고용 또한 증가하고 있다는 것도 주목할 부분이다. 2018년 대비 2025년, AI 노출도 상위 기업의 인력 증가율은 52%로, 하위 기업의 36%를 크게 앞질렀다. 임금 상승률 역시 상위 기업이 24%로, 하위 기업(17%)을 상회했다. 특히 슈퍼스타 기업의 평균 임금 상승률은 68%에 달해, AI가 견인한 생산성 향상이 근로자 보상으로 환원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조 앳킨슨(Joe Atkinson) PwC 글로벌 최고AI책임자는 "글로벌 경제 전반에 걸쳐, 인재 확보와 가치 창출 방식을 두고 새로운 분기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며 “AI를 통해 성과를 내는 기업들은 인간의 전문성을 확장하고 혁신을 가속화하는 방식으로 AI를 활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들은 단순 자동화 중심 기업보다 생산성과 성장 측면에서 더 빠르게 앞서가고 있다”고 덧붙였다.
기업들이 AI를 통한 생산성 향상을 이어가면서, AI 역량 보유 근로자에 대한 평균 임금 프리미엄은 지난해 57%에서 올해 62%로 상승했다. 임금 프리미엄은 업종별로 뚜렷한 차이를 보였다. 소비재 업종에서는 최대 118%에 달하는 반면, 정부·공공 부문에서는 16% 수준에 머물렀다.
프롬프트 엔지니어링, 머신러닝 등 특정 AI 역량을 요구하는 채용 공고도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2025년 들어 전 세계 AI 전문 인력 채용은 전체 일자리 시장 성장률(8.6%)의 약 8배(69%) 수준으로, 이는 2024년 성장률 대비 두 배에 달하는 수치다. AI 관련 일자리는 2015년 이후 꾸준히 전체 일자리 성장률을 상회하고 있다. 산업별로는 기술·미디어·통신(TMT) 산업이 선두로, 2025년 TMT 산업 채용 공고의 11.4%가 AI 전문 인력 대상이었다.
마지막으로 보고서는 “미래의 경쟁 우위는 기술을 얼마나 잘 쓰느냐가 아니라, 인간의 고유 역량을 얼마나 잘 발휘하느냐에 달려있다”며 “AI가 더 폭넓게 도입될수록, 인간 고유의 전문성은 그만큼 더 큰 가치 가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인간이 AI와 함께 일할 때 반드시 발휘해야 할 고유의 역량으로 △공감 및 감성지능 △신뢰와 협업의 핵심인 현장성·네트워킹·연결성 △의견과 판단, 윤리 △창의성 및 상상력 △비전과 리더십 등을 제시했다.
최창범 PwC 컨설팅 인사전략 리더(파트너)는 “한국 기업들은 AI 도입에는 적극적이지만 여전히 비용 절감을 위한 인력 효율화에 머물러 있다”며 “숙련 인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단순 인력 감축은 오히려 인력 공백을 부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글로벌 선도 기업들처럼 AI를 인간이 가진 고유한 역량을 끌어올리는 도구로 활용해 생산성과 고용을 동시에 높이는 전략으로 전환해야 할 시점”이라며 “이를 위해 신입사원 교육을 판단력·문제해결 능력 중심으로 바꾸고 중장기 관점에서 전문성 축적에 투자하는 등 재교육·재배치 체계를 함께 갖춰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보고서의 상세한 내용은 삼일PwC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