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치·남초·비전문성⋯스스로 만든 ‘지배구조 가이드라인’ 뭉개는 한국거래소 [한국거래소의 역설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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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챗GPT)

한국거래소가 스스로 마련한 지배구조 가이드라인을 제대로 지키지 않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상장사에는 지배구조 개선을 요구하면서 정작 거래소 내부 인사는 ‘관료 낙하산’, ‘비전문성’, ‘남초’ 인사를 반복하고 있어 정부의 ‘밸류업’ 정책 실효성에도 의문이 제기된다.

9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올해부터 코스피 상장사는 '기업지배구조 보고서'를 의무적으로 공시해야 한다.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당시 불투명한 지배구조가 위기를 키운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면서, OECD는 1999년 기업지배구조 원칙을 제시했고, 이후 한국에서도 단계적으로 지배구조 공시 의무가 확대돼 왔다.

한국거래소는 기업지배구조 보고서 공시제도의 운영기관으로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공시 이행 여부를 점검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이사회 구성과 운영에 관한 핵심 원칙 10개와 세부 기준도 함께 제시하고 있다. 공시 자체가 의무인 만큼, 거래소는 제출 여부와 기재 내용의 적정성을 점검하고 미제출이나 허위 기재에 대해서는 불성실공시법인 지정 등 제재를 가할 수 있다.

거래소 가이드라인은 '이사회는 효율적인 의사결정과 경영진 감독 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공정성과 독립성을 갖춘 인사로 구성돼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거래소의 실제 인사 관행은 거래소 스스로 내세운 기준과 괴리가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달 13일 거래소 이사회는 임시 주주총회를 열어 한구 전 금감원 부원장보를 파생상품시장본부장(부이사장)으로 선임했다.

현재 거래소 상임이사 7인의 구성을 보면 ‘관치’ 논란이 불가피하다는 평가다. 정은보 이사장(전 금융감독원장·금융위원회 부위원장), 김성진 상임감사위원(전 기획재정부 공공혁신심의관), 김홍식 시장감시위원장(전 금융위원회 자본시장조사단장), 신임 파생상품시장본부장 등 상임이사의 과반수가 금융당국과 기획재정부 출신 관료로 채워져 있다. 관료 출신 인사들이 선후배 관계로 얽혀 거래소 요직을 채우는 구조에서는 이사회의 실질적인 견제·감시 기능이 작동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사진의 전문성 문제도 도마에 올랐다. 한국거래소의 지배구조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이사회는 기업 경영에 실질적으로 기여할 수 있도록 다양한 분야의 전문성과 책임성을 갖춘 사람으로 구성해야 한다(세부원칙 4-2). 반면 지난달 선임된 한구 파생상품시장본부장은 금융당국 행정 관료 출신으로 파생상품이나 금융공학 분야에 대한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거래소 노동조합 역시 이 같은 인사 관행을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박경환 한국거래소 노동조합위원장은 "역대 파생상품시장본부장 임명자들은 파생상품을 다뤄본 적이 없다"며 "특히 새로 취임한 한구 파생상품본부장은 증권 관련 경험도 아예 없는 인물"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는 정부의 '자본시장 선진화' 기조에 역행하는 처사"라며 "해외 파생상품 거래소의 경우 관련 분야에 종사한 전문가가 수장을 맡는다"고 말했다.

이 같은 인사가 반복되는 배경에는 구조적 요인이 자리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박 위원장은 "거래소의 주요 보직이 정부 부처 퇴직자들을 예우하는 통로로 전락했다"며 "금감원 출신 인사가 파생상품본부장 자리로 흘러들어올 수밖에 없는 이유는, 외부 출신이 맡아야 할 '상임감사' 자리가 이미 기획재정부 퇴직자의 보상 자리로 굳어져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출처=챗GPT)

성별 다양성 측면에서도 가이드라인과의 괴리가 드러난다. 현재 거래소 이사회 15명은 전원 남성이다. 그러나 거래소 지배구조 가이드라인은 이사회 구성원이 특정 성별로만 이루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상장사에 요구하는 기준을 스스로 충족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지배구조 공시 제도의 실효성은 운영 주체의 진정성에 달려 있다고 지적한다. 이남우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은 "지배구조 공시 제도는 연성 규범으로, 결국 그 주체인 거래소가 얼마나 진정성을 갖고 하느냐가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상장사들을 감시하는 거래소가 본인들은 정작 지배구조 기준을 지키지 않고 있는 것은 문제"라며 "거버넌스 측면에서 먼저 거듭나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거래소는 이사회가 지배구조 가이드라인에서 제시한 기준을 충족하지 못할 경우 그 이유와 향후 개선 계획을 공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한국거래소는 이번 인사 논란과 관련해 “별도로 답변 드릴 내용이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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