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현논단] ‘동질화 교육’이 불러온 운동회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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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평함’ 강박에 학교활동 사라져
다양성 대신 전체주의 사고 만연
‘교육감 직선’ 폐지…개혁 시급해

마을버스 안에서 지팡이를 짚고 오른 어르신에게 노약자석의 임산부가 자리를 양보하고 있었다. 버스 안 다른 승객들은 그냥 있었다. 지하철 임산부석도 임산부가 아닌 것으로 보이는 이들에게 점유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우리는 남의 일에 간섭하지 않는 사회를 살고 있다. 그렇다면 교육이라도 공감과 배려를 가르쳐야 할 텐데, 교육이 오히려 자연스러운 사회화 과정을 막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얼마 전 대통령의 현장체험학습 허용 지시와 함께, 학교 운동장에서 축구와 같은 운동을 금지하는 학교가 상당히 많다는 사실이 논란이 됐다. 그 중심에는 학부모 민원이 있다는 지적이 있었다. 초등학교를 품고 있어 높은 주택가격이 형성된 소위 ‘초품아’에서, 아이러니컬하게도 초등학교에서 소리가 난다는 민원이 끊이지 않아 운동이 금지되고, 초등학생들이 손글씨로 주민들에게 “한 번만 운동회를 하게 해 달라”고 죄송하다는 글을 붙인다는 보도도 있었다.

물론 악성민원을 제기하는 학부모가 문제이지만 이들을 탓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악성민원과 교권 침해에 시달리다 극단적 선택을 한 교사들이 잇따르면서 이 문제가 사회적 공분을 일으키기도 했다. 하지만 학부모 입장에서는 자식의 건강과 안전을 염려하는 마음이 먼저다. 안전사고와 학교폭력을 언론과 드라마를 통해 반복적으로 접해온 경험이 부모의 불안을 높여왔다. 민원 금지만으로는 근본적 해결이 되지 않는다.

더 깊은 문제는 따로 있다. 민원을 두려워한 나머지, 학교 운영 전체가 ‘공평함’의 강박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이다. 소음 때문에 축구를 못하게 하는 것은 제도로 해결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아이는 축구를 못하는데 왜 허용하느냐”는 민원 때문에 활동을 없애버리는 것은 제도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 현장체험학습에서 “사진 200장 중 우리 아이 사진이 5장밖에 없다”와 같은 민원을 방지하기 위해 모든 것을 균등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이 제도화되는 것이 진정한 위협이다. 실제로 초등학교에서는 이미 시험이 사라졌고, 많은 활동들이 ‘상대적 박탈감’을 이유로 금지되고 있다.

한국 청소년의 신체활동 부족률은 94.2%로 세계보건기구(WHO) 조사 대상 146개국 중 최하위로 알려져 있다. 2017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조사에서도 방과 후 체육활동 참여율이 42.9%로 72개국 중 이미 최하위권이었다. 오히려 체육활동을 늘려야 함에도 이러한 활동을 금지시키는 학교가 늘어나는 셈이다. 체육활동은 육체적 건강만의 문제가 아니다. 운동으로 풀지 못하는 스트레스는 게임, SNS, 심지어 마약으로 향할 가능성을 높인다. 그러나 운동량 부족은 동질화 교육이 낳은 여러 문제 중 하나일 뿐이다.

역설적으로 집단이 동질화될수록 위계가 더 또렷해질 수 있다. 비교 기준이 단일해지면 아주 작은 차이도 크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시험 결과나 축구 실력의 차이를 없애면 교실에서 통제할 수 없는 차이, 즉 어떤 옷을 입는지, 어느 동네에 사는지에 의해 서열이 만들어진다. 반면 다양성이 높아질수록 비교가 어려워지고 불평등 인식은 오히려 완화된다. 학교가 해야 할 일은 동질화가 아니라, 다양한 활동을 통해 저마다 잘하는 것을 발견하게 해주는 것이다.

동질화 교육의 폐해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조금이라도 불이익을 받으면 민원을 제기하는 문화 속에서 동등한 결과를 강요받은 아이들은, 그 기준에서 벗어나는 타인을 억압하려는 경향을 갖기 쉽다. 이는 전체주의적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사회성은 떨어지고 편향성은 높아진다. 인공지능(AI)이 일을 대신하는 시대일수록 사람에게 남는 역할은 대화와 조율인데, 그 경험을 학교에서 체계적으로 박탈하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변화는 교육감이 만들어야 한다. 교육감의 역할은 민원이 나오지 않게 하거나 민원을 다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여러 민원 속에서도 다수의 학생과 학부모가 올바른 교육을 경험하도록 문화를 조성하는 것이다. 그런데 지방선거와 함께 치러지는 교육감 직선제 아래에서, 학부모 표와 교사 표를 의식해야 하는 교육감이 그런 결단을 내리기는 구조적으로 어렵다. 4년 전 선거 이후에도 교육감 직선제를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었지만, 4년이 지난 지금도 달라진 것은 없다. 학생들은 줄어들고 있지만 법정 교부금 비율은 고정돼 있어 교육감의 권한과 자율성은 오히려 커지고 있다. 그 권한이 민원 관리에만 쓰인다면, 이제는 교육감 직선제를 폐지하고 보다 다양한 관점의 교육개혁을 시도해야 할 때다. 무엇보다 우리 학생들에게 어느 정도의 차이는 자연스러운 것임을 받아들일 용기를 가르쳐야 이 사회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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