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추도식 당일 봉하마을에서 불거진 이른바 ‘일베 인증’ 논란을 계기로 온라인 혐오·조롱 표현에 대한 규제 논의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대통령이 일베 사이트 폐쇄 검토 가능성까지 언급하면서 표현의 자유, 혐오 표현 규제, 사이트 폐쇄의 실효성을 둘러싼 논쟁도 커지고 있다.
정치철학자 김만권 경희대 학술연구교수는 28일 CBS 라디오 ‘박성태의 뉴스쇼’에 출연해 이번 논란을 두고 혐오와 조롱이 일상으로 확산되는 현상을 우려하면서도, 일베 사이트 폐쇄가 근본적 해법이 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우리 역사와 그리고 그 역사적 비극적 사건에서의 희생자라든지 그리고 우리 국민들이 이루어낸 어떤 아주 거대한 성과로서 민주주의에 대한 조롱 그리고 혐오 이런 것들이 너무 깊어졌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그는 이 같은 현상을 “일베의 문법”이라고 표현하며 “그런 일베의 문법이 우리 일상에 깊이 스며들었다는 점에서 좀 걱정이 깊어졌다”고 했다.
이어 혐오와 조롱이 사회적으로 일상화되는 현상을 포퓰리즘의 흐름과 연결해 설명했다. 그는 “포퓰리즘의 지금 네 번째 물결이 왔다고 이야기하고 있다”며 “그 네 번째 물결의 전형적인 특징이 뭐냐고 하면 숨겨져 있던 조롱, 혐오, 차별, 비하 이런 것들이 사회에 전면적으로 그냥 나와서 아무렇지도 않게 통용되는 어떤 그런 현상”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미국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정치 방식이 전 세계적으로 영향을 줬다고 봤다. 김 교수는 “트럼프가 당선되면서 혐오해도 괜찮다는 라이센스를 전 세계에 줘버렸기 때문”이라며 “혐오와 차별, 혐오, 조롱을 통해서 사실 대통령의 당선이 두 번이나 되었기 때문에 그것들이 주는 신호가 되게 명확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일베식 조롱과 혐오의 주요 공격 대상에 대해서는 여성, 호남, 좌파를 언급했다. 그는 “일베가 늘상 공격해 왔다는 세 가지 부류가 있다”며 “첫 번째는 여성이었고, 두 번째는 호남, 지역 차별 그리고 세 번째는 좌파”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들이 “기존 질서에 순응하지 않는 사람들”로 묶이고, 능력주의 경쟁에서 부당한 혜택을 받는 집단처럼 비하되는 방식이 작동한다고 분석했다.
이 과정에서 김 교수는 혐오 정치가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반감과 결합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모두가 다 힘들다, 징징거리지 마라라고 해서 고통을 평범하게 만들고”라며 “그들이 느끼는 고통으로부터 뭔가 대가를 받을 수 있다는 자격을 박탈시키는 논리”가 쓰인다고 말했다. 동시에 “그런데 우리도 정작 이 시스템에서 역차별을 받아서 힘든 건 우리라고 이야기하고 있다”며 이를 “이중적 측면”이라고 평가했다.
김 교수는 사회적 소수자의 문제 제기 방식만을 비판하기 전에 제도권의 책임도 함께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장애인 이동권 문제를 예로 들며 “그분들의 문제 제기 방식을 지적하기 전에 제도권이 그분들의 목소리를 어떻게 수용했는지에 대한 반성도 같이 와야 된다”고 했다. 이어 “그 반성은 제쳐놓고 문제 제기를 하는 방식을 가지고 그분들을 집중적으로 공격함으로써 소위 장애인과 비장애인들을 갈라치기 하는 방식으로 장애인들의 혐오를 동원하는 건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일베 사이트 폐쇄 가능성에 대해서는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김 교수는 “지금 현재 우리 법상으로는 그렇게 가능한 것 같지는 않다”며 “법적 토대가 있어야 된다”고 말했다. 동시에 실효성에 대해서도 “일베 사이트를 지금 폐쇄하는 게 정말 혐오, 비하, 조롱 이런 것들을 확산하는 걸 차단하는 데 효과가 있을까”라며 “별로 효과가 없을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일베의 이용자 유입이 정체된 상황에서 특정 사이트 하나를 폐쇄하는 방식은 한계가 있다고 봤다. 김 교수는 “정작 거기 이용자들은 다른 사이트로 다 떠났다”며 “다양한 커뮤니티 쪽으로 이렇게 갈라져 있고 활동자들이 갈라져 있는 이런 상태에서 일베 사이트라는 하나를 우리가 폐쇄시킨다고 해서 이게 효과적으로 그런 혐오, 조롱, 비하 문화를 차단할 수 있을까”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대안으로 혐오 표현을 규제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우리나라의 법률 자체가 집단 혐오에 대한 규제 자체가 없다”며 “혐오에 대한 규정 자체가 없고 혐오 자체를 규제하는 법률 자체가 지금 현재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혐오의 진짜 본질은 어떤 개인을 특정 타깃을 가지고 공격하는 게 아니라 어떤 집단을 공격하는 것”이라며 집단 혐오에 대한 제도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김 교수는 독일 사례도 언급했다. 그는 독일이 “방어적 민주주의” 차원에서 민주주의 질서를 훼손하려는 표현을 규제하고 있다며 “특정 인구 집단에 대해서 증오를 선동하거나 모욕하는 걸 국민 선동죄 같은 걸로 지금 현재 만들어서 규제를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플랫폼 사업자에게 명백한 위법 게시물을 일정 시간 안에 삭제하도록 하는 규제도 있다고 덧붙였다.
다만 혐오 표현 규제 과정에서 기준의 모호성 논란이 생길 수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많은 국가가 이걸 실제로 시행하고 있다”며 “어떤 명문으로 어떤 집단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를 규정하고 그런 것들을 판례 같은 것을 통해서 경험과 이런 것들을 축적해 나간다면 그 기준을 분명히 확립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