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너머] '혐오'를 소비하는 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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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정치를 “단단한 널빤지를 천천히 뚫는 작업”이라고 했다. 정치란 원래 긴 시간 설득하고 검증받으며 책임을 견디는 과정이라는 의미다. 하지만 ‘6·3 지방선거’ 현장은 그 반대다. 오래 설명하는 정책보다 ‘짧은 장면’과 자극적인 공방이 훨씬 빠르게 소비된다.

서울시장 선거에선 정원오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둘러싼 과거 폭행 논란과 유흥업소 외박 요구 의혹 공방이 이어지고 있다. 국민의힘은 피해 주장과 추가 의혹을 연이어 공개했고, 민주당은 흑색선전이라고 맞서고 있다. 국회의원과 취재진 입에서 ‘성매매’라는 단어까지 오르내린다. 진실 여부와 별개로 유권자들 사이에서는 “서울시장을 뽑는 선거인지, 30년 전 사건 재판인지 모르겠다”는 반응도 나온다.

경기 평택을 재선거도 크게 다르지 않다. 조국 조국혁신당 후보와 김용남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과거 발언과 사모펀드 의혹 등을 두고 충돌하고 있다. 부산 북갑 보궐선거에서는 후보들의 행동 장면 일부가 짧은 영상으로 편집돼 온라인에서 빠르게 확산했다.

이번 지선을 관통하는 풍경은 비슷하다. 정책집은 두껍지만 유권자들이 실제로 소비하는 것은 10초 남짓한 쇼츠 영상과 자극적인 한 줄 공방이다. 누가 어떤 도시를 만들겠다는 설명보다 누가 더 문제 있는 사람인지 공격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이 쓰인다.

선거판에서 이런 방식은 효율적이다. 긴 정책 설명보다 짧은 공격이 더 빠르게 퍼지고, 더 강하게 기억된다. 특히 박빙 승부일수록 상대 후보의 부정적 이미지를 부각해 ‘더 나쁜 상대’를 막아야 한다는 논리가 반복된다. 유권자에게 미래 비전보다 혐오와 피로감을 먼저 각인시키는 술수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정작 시민들의 삶이 사라진다는 점이다. 서울 시민은 교통·주거·돌봄보다 과거 사건 공방을 듣고, 지역 유권자들은 산업과 일자리보다 편집된 영상 속 한 장면을 소비한다. 후보들이 내세운 공약과 정책은 네거티브 공방 속에 묻히기 십상이다.

토론과 검증은 상대 후보를 공격하기 위한 이벤트가 아니다. 유권자가 후보의 자질과 정책, 위기 대응 능력을 직접 비교할 최소한의 장치다. 그런데 이번 지선에선 긴 토론보다 짧은 영상이, 정책 경쟁보다 폭로전이 더 큰 영향력을 갖는 모습이 반복된다.

베버는 정치인에게 필요한 덕목으로 열정뿐 아니라 책임감과 균형감각을 언급했다. 선거가 가까워질수록 설명은 짧아지고 자극은 강해지고 있다. 쇼츠는 넘쳐나는데 정책은 보이지 않는다. 가장 손해를 보는 쪽은 결국 유권자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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