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심 잡기’보다 중요한 것 [노트북 너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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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지방선거를 약 보름 앞둔 15일 국토교통부는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A 삼성역 구간에서 시공 오류가 확인됐다며 긴급 점검과 감사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지하 5층 승강장 기둥 80개 가운데 50개에서 2열로 배치돼야 할 주철근이 1열만 시공된 중대한 사안이었다. 누락된 철근만 2570개, 170톤(t)에 달한다.

이후 사안은 숨 가쁘게 정치권으로 번졌다. 논란은 어느새 철근 누락 자체보다 ‘보고가 제대로 이뤄졌는지’를 둘러싼 책임 공방으로 흘러가고 있다. 핵심은 현대건설이 지난해 11월 문제를 발견해 당시 오 후보가 시장이던 서울시에 보고했는데, 서울시가 이를 상위 기관인 국토교통부에 제대로 전달했느냐다.

서울시는 지난해 11월부터 6개월간 여섯 차례에 걸쳐 국가철도공단(국토부)에 총 51건의 관련 내용을 보고했다고 주장한다. 반면 국토부는 해당 내용이 공구별 400페이지 분량, 총 2000페이지에 달하는 월간 보고서 안에 포함돼 있었던 만큼 사실상 은폐에 가깝다는 입장이다. 철근 누락은 중대한 사안인 만큼 별도 요약보고서나 대면 보고가 있었어야 했다는 것이다.

20일 국회 긴급 현안질의에서는 익숙한 ‘네 탓 공방’이 반복됐다. 같은 말이 반복되자 답답했던 김윤덕 국토부 장관은 “보고도 안 했는데 어떻게 책임지냐”고 목소리를 높였고, 김성보 서울시장 권한대행 역시 “공무원 하기 힘들다”고 말했다가 논란을 샀다.

국회의 모습을 지켜보며 피로감이 밀려왔다. 선거를 앞두고 어떻게든 상대에게 책임을 떠넘겨 표심을 얻으려는 모습만 보였기 때문이다. 정작 중요한 질문은 잘 들리지 않았다. 현재 보강 대책으로 충분한지, 비용이 더 들더라도 이미 시공한 부분을 철거하고 철근을 다시 더해야 하는 건 아닌지 같은 문제들이다.

대한민국 최악의 부실시공 사고를 떠올리면 많은 사람이 삼풍백화점 붕괴를 기억할 것이다. 어린 시절 한 TV 프로그램에서 당시 생존자들이 사고를 회상하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 거대한 백화점 건물이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리는 모습도 충격적이었지만, 더 오래 기억에 남은 건 생존자들의 표정이었다.

무너진 건물 안에서 자신의 소변을 마시며 버티다 구조됐다는 한 중년 여성은 당시 붕괴 장면이 화면에 나오자 차마 쳐다보지 못하고 눈을 감아버렸다. 사고가 벌어진 지 한참이 지났는데도 그 공포와 절망이 몸에 새겨져 있다는 게 느껴졌다.

철근 누락은 정치 공방의 대상이 아니라 시민의 삶과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중대한 문제다. 선거가 끝나면 표심은 흩어지지만, 부실시공이 남긴 상처와 트라우마는 평생 지워지지 않는다. 책임 소재를 가리는 일도 필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앞으로 어떻게 더 안전하게 보강하고 재발을 막을 것인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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