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허, 톡!] AI시대의 리스크 관리 ‘특허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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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인공지능(AI) 서버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면서 고성능 메모리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한국 반도체 기업들은 글로벌 AI 공급망의 핵심 제조자로 부상했지만, 그만큼 특허분쟁에 노출될 위험도 커졌다. 지난 3월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는 한 특허관리전문기업(NPE)의 제소에 따라 국내 주요 메모리 기업의 고대역폭메모리(HBM) 등에 대한 특허 침해 여부 조사를 개시했다. 이런 흐름은 통계로도 확인된다. 지식재산처에 따르면 최근 6년간 국내 기업이 받은 특허침해 소송 610건 중 90.6%가 미국에서 발생했고, 그중 약 80%가 전기·전자 분야에 집중됐다.

이를 이해하려면 NPE를 단순한 소송 주체가 아니라 하나의 사업 모델로 봐야 한다. NPE, 일명 ‘특허괴물’은 제품을 생산하지 않고 보유 특허를 기반으로 라이선스료나 합의금을 얻는다. 따라서 소송은 법리적 다툼인 동시에 철저한 투자수익률 계산의 결과다. 승소 가능성, 예상 손해배상액, 피고의 시장 점유율과 협상력 등을 따져 기대수익이 큰 대상을 고른다.

한국 반도체 기업들이 주요 공격 대상이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첫째, 첨단 공정에 기술적 병목이 집중돼 있어 특허의 협상력이 커지며, 회피가 어려운 기술일수록 합의금 규모는 커진다. 둘째, 미국 특허제도의 변화다. 최근 미국 특허청이 특허무효심판(IPR) 개시율을 대폭 낮추면서 특허권자에게 유리한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 한국 기업은 미국 시장 의존도가 높아 상대적으로 타격이 크다. 셋째, 자본의 관점이다. 기업의 매출과 마진이 클수록 손해배상 산정의 기준도 커진다. 실적과 공급망 지위가 높을수록 NPE 입장에서는 합의금을 극대화할 수 있는 대상이 되는 것이다.

한국 반도체 산업은 기술과 제조 역량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입증했다. 그러나 이제는 그 기술이 만들어낸 경제적 가치를 지켜내는 능력도 중요해졌다. 특허분쟁으로 인한 판매금지나 수입금지로 이어져 공급망 차질, 제품 출시 지연, 고객 신뢰 훼손으로 이어지는 경영 리스크를 낳는다. 앞으로의 특허 전략은 단순한 권리 확보를 넘어, 산업 병목과 분쟁 흐름을 선제적으로 읽고 대응하는 역량에 달려 있다. 고은주 삼성벤처투자 투자심사역·변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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