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업무·주거·문화·녹지 결합한 ‘입체복합수직도시’
주택 공급 확대 놓고 정부·서울시 이견…정체성 쟁점
전문가 “단순 가구 수보다 도시 기능 배치 관점에서 봐야”

서울 용산역에서 3번 출구 방향으로 걸음을 옮기면 도심 한복판이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넓게 펼쳐진 공터가 모습을 드러낸다. 철도시설과 고층 건물 사이로 드러난 부지 너머로는 용산전자상가와 호텔 건물이 시야에 들어온다.
오랜 기간 서울 중심부의 빈 땅처럼 남아 있던 용산 철도차량정비창 부지다. 한때 국제업무지구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큰 기대를 모았지만 사업 무산의 상처를 남겼던 이곳은 이제 ‘용산서울코어’라는 이름으로 다시 서울의 미래 중심지 조성을 준비하고 있다.
19일 서울시에 따르면 용산국제업무지구는 서울 용산구 한강로3가 40-1 일대 45만6099㎡ 규모의 철도정비창 부지를 국제업무와 상업, 주거, 문화, 녹지, 교통 기능이 결합된 복합도시로 바꾸는 대형 도시개발사업이다. 광화문·여의도·강남을 잇는 서울 도심 축의 한가운데 자리한 만큼 서울 공간구조 자체를 다시 짜는 사업이라는 상징성이 크다.
이곳은 한 차례 대형 개발의 꿈을 꿨다가 좌초된 바 있다. 2000년대 후반 추진된 용산국제업무지구 사업은 ‘단군 이래 최대 개발사업’으로 불릴 만큼 관심을 모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와 자금조달 문제, 사업구조 갈등이 겹치며 표류했다. 결국 2013년 사업시행자 지정 취소와 도시개발구역 해제로 백지화됐다. 이후 부지는 서울 한복판에 남은 대표적 대규모 유휴지로 남았다.
오랜 공백 끝에 사업은 다시 본궤도에 올랐다. 코레일은 2024년 2월 용산구에 도시개발구역 지정을 제안했고 같은 해 11월 도시개발구역 지정 및 개발계획 수립 결정고시가 이뤄졌다. 12월에는 코레일과 SH공사가 공동 사업시행자로 지정됐다. 이후 지난해 11월 실시계획인가 고시를 거쳐 같은 달 27일 기공식을 열며 사업 본격화를 알렸다.
이번 사업은 과거 민간 중심 대형 개발과 달리 공공이 먼저 기반시설을 조성한 뒤 민간이 개별 필지를 개발하는 방식으로 추진된다. 한국철도공사(코레일)와 서울주택도시개발공사(SH)가 도로와 공원, 기반시설을 조성하고 이후 토지공급을 거쳐 민간 사업자가 블록별 건축에 나서는 구조다. 토지 조성과 기반시설 공사는 2028년 말 준공, 건축물 준공과 첫 입주는 2031년, 전체 조성은 2035년을 목표로 하고 있다.
현장 주변에서는 용산국제업무지구를 일대 도시 구조를 바꿀 프로젝트로 보고 있다. 한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용산은 서울 한복판에 있으면서도 철도시설과 대규모 유휴지 때문에 공간이 단절된 측면이 있었다”며 “국제업무지구가 조성되면 용산역과 한강 일대가 하나의 생활·업무권으로 연결되는 효과가 클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그동안 용산 개발은 기대감은 컸지만 실제 변화가 더뎠던 게 사실”이라며 “이번 사업은 기반시설부터 다시 짜는 대형 개발인 만큼 단순히 건물을 몇 동 올리는 차원이 아니라 용산의 중심 기능을 새로 만드는 사업으로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의 핵심은 ‘입체복합수직도시’다. 평면적으로 업무시설만 늘리는 방식이 아니라 국제업무와 주거, 문화, 녹지, 교통 기능을 한 공간에 수직·입체적으로 결합하는 구상이다. 서울시는 이곳을 걸어서 업무와 주거, 여가를 누릴 수 있는 글로벌 콤팩트시티로 조성하겠다는 계획이다.
공간은 크게 국제업무존, 업무복합존, 업무지원존을 중심으로 짜인다. 국제업무존은 글로벌 기업 유치와 마이스(MICE) 기능을 겨냥한 핵심 업무공간이다. 100층 내외 랜드마크가 들어설 수 있도록 계획됐고 국제회의장과 국제전시장, 광역환승센터, 도시문화공간 등이 함께 배치된다. 단순한 오피스 밀집지가 아니라 업무와 전시·컨벤션, 상업·문화 기능이 결합된 서울의 새 업무 중심지로 키우겠다는 구상이다.
업무복합존은 용산전자상가 등 주변 산업 기반과 연계한 신산업 업무공간으로 조성된다. 오피스와 오피스텔, 상업시설 등이 들어서 직주근접형 복합업무 환경을 만드는 역할을 맡는다. 업무지원존에는 공동주택과 민간임대주택, 공공임대주택, 의료시설, 교육연구시설, 생활SOC 등이 배치돼 국제업무지구 안에서 일하고 생활할 수 있는 정주 기능을 보완한다.
녹지 계획도 핵심 축이다. 용산역 남측 선로 상부와 국제업무존 중앙부에는 8만㎡ 규모의 공중녹지인 ‘그린스퀘어’가 계획됐다. 한강공원과 용산역을 잇는 입체공원 역할을 하는 공간이다. 여기에 폭 40m, 연장 1㎞의 U자형 순환 녹지 ‘그린커브’와 폭 40m, 연장 670m의 선형 녹지축 ‘그린코리더’가 더해진다. 고밀 개발에 따른 부담을 줄이고 한강과 용산공원, 주변 생활권을 녹지로 연결하겠다는 취지다.
사업은 본격화 단계에 들어섰지만 주택 공급 확대 논의가 사업 방향을 흔드는 핵심 변수로 떠올랐다. 용산국제업무지구는 국제업무 중심지 조성을 목표로 추진돼 왔지만 서울 도심 주택 공급 압력이 커지면서 주거 기능 확대 요구도 함께 받고 있다. 관건은 이곳을 글로벌 업무거점으로 키우겠다는 기존 구상을 유지하면서 어느 수준까지 주택 물량을 늘릴 수 있느냐다.
정부는 개발계획 변경 등을 통해 용산국제업무지구 내 주택 공급 물량을 최대 1만 가구 수준까지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서울 도심 한복판에 위치한 대규모 부지인 만큼 공급 효과가 크다는 판단에서다.
반면 서울시는 생활 인프라와 교통 수용력, 업무지구 본연의 기능 등을 고려하면 과도한 주거 비중 확대는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기존 6000가구 안팎에서 8000가구 수준을 상한으로 봐야 한다는 기류가 강하다.
주택 공급 논쟁은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서울시장 후보 간 공방으로도 번졌다. 정원오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는 용산국제업무지구를 AI·금융 중심 글로벌 경제 거점으로 조성하겠다는 구상을 내놓으면서 장기 임대 방식과 용산 리츠 등을 제시했다. 주택 공급 확대 가능성도 함께 거론하며 공공성을 강화한 개발 모델을 강조하고 있다.
반면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는 과도한 주택 확대에 선을 긋고 있다. 오 후보는 용산국제업무지구가 주거 중심으로 흐를 경우 국제업무 기능이 약화할 수 있다고 보고 기존 계획의 연속성과 업무지구 정체성 유지를 강조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용산국제업무지구의 주택 공급 논쟁을 단순한 가구 수 문제가 아니라 도시 기능 배치의 문제로 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용산은 강남·여의도·광화문을 잇는 핵심 입지지만 일자리 규모는 강남의 약 30% 수준에 불과하다”며 “강남과의 균형 발전을 위해서도 업무 중심 개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일자리와 상권이 형성된 뒤 주거가 확대되는 것이 일반적인 도시 성장 구조”라며 “용산국제업무지구도 업무 중심 개발 방향을 유지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