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세'만 철저했던 고증…'21세기 대군부인'이 남긴 것 [해시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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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김다애 디자이너 mnbgn@)


한 달 전만 해도 일부 시청자의 예민한 문제 제기처럼 보였던 이야기. ‘뇌빼드’, ‘흐린눈’으로 포장됐던 MBC 금토드라마 ‘21세기 대군부인’이 가장 뜨거운 논란에 서 있는데요. 시청률과 화제성에 힘입은 호평이 아닌 비판으로 말이죠.

대세 배우 아이유와 변우석의 만남, ‘입헌군주제 대한민국’이라는 독특한 설정, OTT 디즈니플러스를 통한 글로벌 송출까지 더해지며 방영 전부터 기대를 모았던 이 작품은 올해 상반기 드라마 시장의 중심에 섰습니다. 하지만 드라마 초반부터 올라왔던 ‘고증 오류’ 비난이 11회 왕위에 오르는 이안대군(변우석 분)의 즉위식 장면에서 폭발했죠. 그리고 그 논란 끝에 결국 등장한 단어는 ‘동북공정’이었습니다.


(출처=MBC '21세기 대군부인' 캡처)


이후 지난달 13일 출고됐던 ‘흐린 눈 필수…‘21세기 대군부인’ 설정 오류 뒷말 [해시태그]’ 기사가 뒤늦게 주목을 받았는데요. 사실 이 의문은 드라마 제목이 알려진 순간부터 시작됐습니다. ‘21세기 입헌군주제’와 ‘대군’은 도무지 가까워질 수 없는 단어였거든요.

동북아시아에서 ‘칭제건원(황제로 칭하고 연호를 세움)’은 서로가 지독히도 얽혀있는 이야기인데요. 특히 고려 후기부터 조선왕조 대부분에 이르기까지 명나라와 청나라 아래 제후국으로 종속됐던 시기를 떠올린다면 말이죠.

그렇기에 드라마 초반 황제가 아닌 왕, 황태자가 아닌 세자, 황자가 아닌 대군으로 불리는 이유에 대한 명확한 설명이 필요했습니다. 21세기 강대국인 대한민국이 제후국으로 머물러 있다는 가정은 도무지 상상할 수 없었기 때문이죠. 오죽하면 2차 세계대전에서 한국이 ‘부정적인 입장에 속한 것인가’라며 애써 짐작하면서요.

하지만 ‘친절한 설명’은 살펴볼 수 없었죠. 이에 앞선 기사를 통해 ‘21세기까지도 중국의 영향력 아래 있는 사대 외교의 연장선’이라며 이 드라마의 세계관 문제를 지적했습니다. 이 연장선이 바로 문제의 11회에 닿은 건데요. 극 중 왕이 된 이안대군은 ‘구류면류관’을 착용했고 신하들은 그를 향해 “만세”가 아닌 “천세”를 외쳤습니다. 그렇게 결국 “천세 천세 천천세”가 불리고 만 것이죠.


▲'천세 천세 천천세' 대사 논란 (출처=MBC '21세기 대군부인' 캡처)


사실 대한제국 이전 조선왕조에서 왕의 즉위식에서는 당연히 “천세 천세 천천세”가 울려 퍼졌습니다. 제후국이었으니깐요. “만세 만세 만만세”는 오직 중국의 황제만이 가능했습니다. 왕에게 ‘만세’가 아닌 ‘천세’를 올리는 방식은 조선 시대를 다룬 사극 안에서는 오히려 자연스러운 고증입니다.

그렇기에 오히려 철저하게 고증을 지킨 이번 즉위식은 더 아이러니했는데요. 드라마 세계관 안에서도 밖에서도 어긋났던 고증이 이것만큼은 정확했기 때문이죠.

입헌군주제라면서 민주공화국의 헌법 감각과 맞물리는 설정이 등장하고 특정 가문이 총리직을 세습하는 듯한 정치 구조, 그리고 대비가 아닌 대군이 섭정하는 상황. 이것이 이 ‘드라마’라는 ‘판타지’에 속한 설정이라고 애써 욱여넣었던 이들에게 날아온 건 ‘세계관 속 설정 파괴’였는데요. 민정우 총리(노상현 분)가 이안대군을 향한 부정적 여론을 언급하며 대비(공승연 분)에게 섭정을 맡아달라고 요구한 장면이죠. 조선 왕조 500년을 관통하는 철칙인 ‘종친불임이사(宗親不任以事)’. 왕의 지친은 절대 정무에 관여할 수 없다는 원칙을 깨고 이안대군이 섭정을 하는 설정을 두고 “이 세계관에서는 여성이 아닌 남성 종친만이 섭정이 가능한가보다”라고 애써 이해했었지만, 이 또한 깨진 건데요.


▲아이유, 변우석 '21세기 대군부인' 논란 사과 (출처=MBC '21세기 대군부인' 캡처)


그렇다면 대비와 대비의 가족들이 섭정하는 이안대군을 그토록 견제했던 것인지 의문이 들죠. 처음부터 대비가 섭정(원래는 수렴청정(*동아시아에서 나이 어린 왕이 즉위했을 때 왕의 어머니나 할머니, 또는 큰어머니(적모, 백모)나 작은어머니(숙모)가 대리로 정치를 맡는 일) 옳음)을 하면 되는 문제였을 거라고요. 이런 당당한 ‘설정 파괴’에서도 왕은 ‘천세’는 지킨 지독한 고증방식에 비난이 속출했죠. 헐거운 세계관 속에서 하필 격하의 문법만은 정확히 살아남은 이유를 두고도 여러 말이 오갔습니다.

현 인기몰이 중인 웹소설과 웹툰에서도 이 ‘고증’은 그야말로 예민하고 예민한 문제인데요. 민감한 독자들을 위한 철저한 자문과 자료는 필수죠. 그런데 무려 방송과 OTT를 통해 수출되고 인기 배우가 등장하는 ‘작품’에서 이런 오점은 그 모든 과정에 물음표를 떠올릴 수밖에 없는데요.

그러나 이 드라마에서는 이 또한 무색했습니다. 국가적인 유산 화재 사고에는 철저한 메뉴얼을 통해 담당자가 처리하는 것임이 상식인데도 무려 3번의 방화사고가 난 궁, 그리고 계속된 화재에도 여전히 우왕좌왕 중인 궁인들, 항상 문제 해결을 위해 짜증을 내고 앞장서지만 ‘결과값’은 항상 나오지 않은 여자주인공 설정 등 이런 의문점은 문제도 아니었죠.


(출처=MBC '21세기 대군부인' 캡처)


그렇게 소환된 단어가 ‘동북공정’이었는데요. 21세기 대한민국을 배경으로 한 세계관이 왜 스스로를 제후국의 의전처럼 보이게 만들었느냐는 불편함이, 최근 한국 대중문화가 민감하게 반응해 온 중국발 역사 왜곡 문제와 맞물렸습니다. 이 작품이 실제로 그런 의도를 가졌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글로벌 OTT를 통해 다국어 자막으로 확산되는 순간 결과를 따질 수밖에 없었는데요. 그간 역사 왜곡을 익숙한 듯 행해왔던 중국 네티즌이 우려대로 움직이고 있다는 점도 분노를 불러왔죠.

결국, 제작진은 이후 공식 입장을 통해 해당 장면이 우리나라의 자주적 지위를 훼손한다는 지적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사과했고 재방송과 VOD, OTT에서 해당 부분의 오디오와 자막을 수정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수정 움직임은 방송본에만 그치지 않았는데요. 웹소설과 대본집까지 논란의 영향권에 들어왔죠. 논란이 확산하자 플랫폼 측은 수정 조처를 진행했고 출간을 앞둔 대본집 역시 수정 절차에 들어갔습니다.

작품 밖의 후폭풍도 이어졌는데요. 주연배우들도 직접 고개를 숙였습니다. 주인공 성희주 역의 아이유는 18일 사과문을 통해 “지난 며칠간 많은 시청자분께서 남겨주신 말씀 하나하나를 꼼꼼히 읽어보았다”며 작품의 주연배우로서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해 송구하다고 밝혔죠. 그는 드라마 속 여러 역사 고증 문제에 대해 “변명의 여지 없이 반성하고 사과드린다”며 이 작품이 “우리 고유의 역사에 기반한 상상력과 대한민국의 전통적인 아름다움”을 담아내는 것이 중요한 작품이었다는 점도 짚었습니다. 그만큼 배우로서 더 신중하게 대본을 읽고 공부했어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며 “미리 문제의식을 제대로 갖지 못했다”라고 사과했습니다.

이안대군 역의 변우석도 같은 날 입장을 전했는데요. 그는 “주말 동안 행여 제 말이 또 다른 피해를 주지 않을까 우려와 걱정을 했다”며 “작품으로 인해 불편함과 우려를 느끼신 분들께 무거운 마음을 담아 글을 올린다”고 밝혔습니다. 변우석은 촬영과 연기 과정에서 “작품에 담긴 역사적 맥락과 의미가 무엇이고 그것이 시청자 여러분께 어떻게 받아들여질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부족했다”고 돌아봤는데요. 이어 “배우로서 연기뿐 아니라 작품이 가진 메시지와 맥락까지 더욱 책임감 있게 살펴보고 고민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점을 다시 한번 깊이 새기게 되었다”며 “진심으로 죄송하다는 말씀 올린다”고 덧붙였습니다.


▲21세기 대군부인 '동북공정' 논란 (출처=MBC '21세기 대군부인' 캡처)


‘21세기 대군부인’은 방송 내내 시청률과 화제성, 글로벌 OTT 순위에서 강한 존재감을 드러낸 건 사실인데요. 10회 방송 당시에는 수도권 13.5%, 전국 13.3%, 2054 타깃 5.6%로 자체 최고치를 경신했습니다. 글로벌 OTT 순위에서도 디즈니플러스 TV쇼 부문 글로벌 상위권과 비영어권 1위에 올랐는데요. 숫자로만 보면 ‘성공한 드라마’가 확실합니다. 하지만 이번 논란으로 그 어마어마한 수치가 무색해졌죠.

불씨를 당긴 ‘천세’는 드라마가 끝내 정리하지 못한 세계관의 모순을 가장 선명하게 드러낸 말이었는데요. 흐린 눈으로 넘기던 균열은 마지막에 ‘동북공정’이라는 가장 예민한 단어를 불러내고 말았죠. 판타지는 가능하지만, 세계관은 설득돼야 하는데요. 특히 그 세계가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을 달고 세계로 나가는 순간 넘길 수 있는 ‘빈틈’은 존재할 수 없다는 걸 다시 한번 새길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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