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표는 사랑. 오로지 그와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달려간다지만, 결국 남는 것은 ‘사람’인데요. 케이블과 종편, OTT를 넘나드는 도파민 폭발 프로그램, 연애 예능 이야기죠.
누가 누구를 선택했는지보다 오가는 말과 쌓이는 오해, 그리고 감정표출이 더 오래 회자되기 마련인데요. 특히 ENA·SBS 플러스 ‘나는 SOLO <나는 솔로>’가 그랬죠. 어느 순간 단순한 커플 매칭 예능을 넘어, 짧은 합숙 안에서 인간관계의 민낯이 드러나는 관찰 예능처럼 소비됐죠. 호감, 질투, 견제, 착각, 자존심, 체면, 자기합리화가 몇 박 며칠의 공간 안에 압축되면서 시청자는 연애보다 ‘다양한 인간 군상’을 마주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31기가 유독 시선이 불편한 지점에 멈췄죠. 바로 ‘뒷담화’였는데요. 6일 방송에서는 영숙, 옥순, 정희가 순자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이 전파를 탔고 이 대화가 바로 옆방에 있던 순자에게 들리면서 논란이 커졌습니다.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뒷담화 아니냐”, “당사자가 들을 수 있는 상황에서 너무 배려가 없었다”는 반응이 이어졌고 MC 데프콘 역시 세 사람이 순자에게 사과해야 한다는 취지로 지적했죠.
13일 방송에서도 마찬가지였는데요. 슈퍼데이트권 레이스에서 순자가 여자부 우승을 차지한 뒤, 영숙은 숙소에서 옥순과 대화하며 자신이 넘어진 상황을 두고 누군가의 다리에 걸린 것 같다고 언급했죠. 이 말을 들은 순자는 눈물을 보였고 결국 스트레스성 위경련을 호소하며 응급실로 향했습니다.
사과와 해명뿐 아니라 제작진의 대응도 논란의 한 축이 됐는데요. 정희는 자신의 유튜브 댓글을 통해 방송을 보며 행동이 미성숙했음을 느꼈고 당사자에게도 사과했다는 취지로 밝혔지만 이후 해당 댓글을 삭제했습니다. 이에 대해 정희는 말 한마디가 조심스러워 삭제했으며 더 깊이 생각한 뒤 정식으로 글을 올리겠다고 설명한 것으로 전해졌죠. 여기에 제작진이 논란 이후 공개한 미방송분 영상까지 비판을 받자 비공개 처리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문제는 출연자 개인의 언행을 넘어 갈등 장면을 화제성으로 소비한 제작 방식에 대한 비판으로도 번졌는데요. 일각에서는 ‘옥순 임신설’을 언급하며 제작진의 배려가 아니었냐는 두둔도 이어졌습니다.
이런 ‘뒷담화’를 두고 온라인 커뮤니티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주변에서 익숙하게 벌어지는 일이라는 ‘실제 경험’이 쏟아지며 성토의 장이 열렸는데요.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뒷담화를 하는 걸까요?

이 질문을 단순히 ‘성격이 나빠서’라고 정리하면 너무 얕죠. 심리학과 사회학에서는 뒷담화를 오래전부터 인간관계의 중요한 현상으로 다뤄왔는데요. 인류학자인 로빈 던바 교수는 ‘가십(Gossip)’을 인간 사회의 결속 장치로 설명했습니다.
그의 논문에 따르면 자유롭게 형성되는 대화의 상당 부분은 사회적 주제에 관한 것이며 이런 대화는 집단 안에서 누가 믿을 만한 사람인지, 누가 규칙을 어기는지, 누가 협력자인지를 파악하는 기능을 하는데요. 원숭이가 털 고르기로 친밀감을 확인하듯, 인간은 말로 관계의 거리를 조정한다는 겁니다. 타인에 관한 이야기는 곧 관계망을 확인하고 관리하는 방식이 되는 셈이죠.

문제는 그 기능이 언제든 공격으로 바뀔 수 있다는 점인데요. 뒷담화는 누군가를 함께 평가하는 순간 묘한 결속감을 만들죠. “저 사람 이상하지 않아?”라는 말은 겉으로는 제3자에 대한 평가지만, 그 안쪽에는 “너도 나와 같은 편이지?”라는 확인이 숨어 있습니다. 듣는 사람이 맞장구를 치는 순간 말하는 사람은 혼자가 아니게 되죠. 둘 이상이 같은 평가를 공유하면, 그 평가는 사실 여부와 별개로 집단의 분위기가 되는데요. 그래서 뒷담화는 정보 공유이자 동시에 ‘편 만들기’의 역할을 합니다.
또 다른 연구는 이 뒷담화를 문화적 학습의 방식으로 보는데요. 심리학자 로이 바우마이스터와 캐슬린 보스 등은 단순한 험담이 아니라 사람들이 사회 안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배우는 서사적 규칙 전달 방식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누군가의 행동을 두고 “저건 선을 넘었다”, “저렇게 하면 안 된다”고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집단의 규범이 공유된다는 건데요.
누군가의 행동을 평가한다는 명분 아래 말하는 사람들의 감정, 질투, 불만, 오해가 섞이면 규범 판단은 험담으로 변합니다. 그리고 그 험담이 반복되면, 당사자는 단순히 비판받는 것이 아니라 관계망 안에서 고립되는 느낌을 받게 되죠.
이 지점에서 ‘관계적 공격성’도 떠올릴 수 있는데요. 관계적 공격성은 물리적 폭력이 아니라, 험담, 소문, 배제, 평판 훼손처럼 상대의 사회적 지위나 관계망을 해치는 방식의 공격을 말합니다. 심리학자 나딜라·R·크릭 등은 관계적 공격성을 사회심리적 적응과 연결해 분석했고 이는 또래 관계와 집단 내 따돌림을 설명할 때 자주 쓰였죠. 물론 이번 방송 속 모든 발언을 곧바로 공격성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다수가 한 사람에 대해 반복적으로 이야기하고 당사자가 그 말을 들으며 고립감과 고통을 호소한 상황인데요. 시청자가 이를 단순한 수다가 아니라 관계적 공격처럼 받아들이는 것은 충분히 설명 가능한 반응이죠.

연애 리얼리티라는 장르의 특수성도 중요합니다. ‘나솔’에서 호감은 감정이면서 동시에 자원인데요. 누가 누구에게 마음이 있는지, 누가 데이트권을 얻었는지, 누가 누구와 대화 시간을 확보했는지가 곧 집단 안의 위치를 만들죠. 그런 공간에서는 작은 말도 커지는데요. 평소 같으면 지나갈 수 있는 표정, 농담, 질문이 경쟁 구도 안에서는 견제나 조롱처럼 읽히게 됩니다.
갈등은 예능의 재료죠. 연애 리얼리티에서 오해, 질투, 삼각관계, 엇갈린 선택은 이야기를 움직이는 동력과도 같은데요. 특히 ‘다양한 인간 군상’을 주무기로 삼는 ‘나는 솔로’에서는 최고의 소스입니다. 그러나 일반인 출연자의 감정과 건강은 단순한 재료는 아닌데요. 방송은 갈등을 보여줄 수 있지만, 갈등이 한 사람의 고립감과 신체적 고통으로 이어지는 장면이라면 그 노출 방식은 다시 따져봐야 하죠.
그렇다고 이번 논란을 출연자 개인을 향한 무차별적 비난으로 몰고 가는 것도 경계해야 합니다. 일반인 출연자는 방송을 통해 유명해졌지만, 직업적 연예인은 아니기 때문이죠. 방송 속 몇 장면이 그 사람의 전부일 수 없고 편집된 장면만으로 인격 전체를 단정하는 일도 위험합니다.
뒷담화는 특별히 악한 사람만의 언어는 아닙니다. 불안한 관계 속에서 내 편을 만들고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려 할 때 누구나 쉽게 꺼내 드는 말의 방식이기도 하죠. 문제는 그 말이 너무 쉽게 시작된다는 데 있는데요. 맞장구가 붙으면 판단은 확신처럼 굳어집니다. 하지만 그 말이 벽 하나를 넘어 당사자에게 닿는 순간, 수다는 상처가 되죠.
‘나는 솔로’ 31기 논란이 유독 불편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시청자는 한 출연자의 눈물만 본 것이 아니라, 현실의 관계 안에서 너무 쉽게 반복되는 말의 폭력을 봤거든요. 사랑을 찾으러 간 곳에 만난 사람, 그리고 그 말이 남기는 상처에 모두가 예민하게 바라봐야 하죠. 그 말이 어디까지 닿을지 충분히 생각하면서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