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로 68년째다. 1958년 제정된 민법의 유언 관련 조항은 지금껏 단 한 번도 손질되지 않았다. 스마트폰 하나로 송금하고, 인공지능에게 법률 상담을 받는 시대에, 유언만큼은 여전히 펜과 종이의 시대에 머물러 있다. 자필로 쓰지 않으면 무효, 이름·날짜·주소 중 하나라도 빠뜨려도 무효. 고인이 남긴 명확한 뜻이 사소한 형식상 실수 하나에 ‘종잇조각’으로 전락하는 일이 지금 이 순간에도 반복되고 있다.
법무부 가족법 특별위원회가 최근 유언 법제 개정 논의에 착수했다. 저출생·고령화와 1인 가구 증가라는 시대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2023년 출범한 이 기구가 유언 법제를 정면으로 다루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논의 테이블에 오른 의제는 크게 넷이다. △디지털 유언장의 법적 효력 인정 △유언장 공적 보관소 신설 △자필 유언 형식 요건 완화 △장애인 유언자를 위한 규정 개선이다. 뒤늦었지만 반가운 움직임이다.
논의 배경에는 엄연한 현실이 있다. 60대 이상 고령층이 보유한 자산, 이른바 ‘시니어 머니’는 지난해 기준 4600조원에 달한다. 그 막대한 부가 세대를 넘어 이동하는 과정에서 유언은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그런데 법원 통계를 보면 상속재산 분할 분쟁은 2014년 771건에서 2022년 2776건으로 8년 사이 세 배 이상 폭증했다. 유류분 반환 청구소송도 같은 기간 세 배 넘게 늘었다. 유언제도가 제 기능을 못 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현행 제도의 문제는 두 갈래다. 하나는 ‘형식의 벽’이고, 다른 하나는 ‘소재의 미로’다. 자필 유언은 요건이 지나치게 엄격하고, 공증 유언은 법적 효력이 확실한 대신 유족이 그 존재조차 모른 채 상속 절차가 마무리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실제로 공증사무소에서 적법하게 유언장을 작성한 고인의 유족이 두 달 동안 계좌 명세를 뒤진 끝에 유언장 보관처를 간신히 찾아낸 사례는, 제도의 허점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해법은 이미 가까운 곳에 있다. 일본은 2020년 법무국이 자필 유언장을 보관하는 제도를 시행한 뒤 2년 만에 상속 분쟁이 38%나 줄었다. 현재 일본 정부는 한발 더 나아가 유언장을 디지털 방식으로 작성하고 공적 클라우드에 보관하는 민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하기로 확정했다. 미국도 2019년 ‘통일전자유언법(UEWA)’을 채택해 전자유언의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국내에선 2023년 유언장 공적 보관 법안이 국회에 발의됐지만 21대 국회 임기 만료와 함께 폐기됐다. 입법 의지의 문제였지, 제도 설계의 문제가 아니었다.
이번 논의에서 특히 주목할 대목은 장애인 유언자에 대한 배려다. 현행 공증 유언은 말로 의사를 명확히 전달해야 하는 요건이 있어, 의사소통이 어려운 중증 장애인은 사실상 유언권에서 소외돼 왔다. 기술의 발전으로 다양한 보조적 의사소통 수단이 보편화된 지금, 이 요건을 그대로 유지할 이유는 없다. 동영상 유언의 명문화 역시 마찬가지다. 녹화된 영상에 고인의 목소리와 얼굴이 담겨 있어도 현행법상 법적 효력이 없다. 위조 방지와 본인 확인이라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수단은 이미 충분하다.
물론 디지털 유언 도입에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본인 확인과 위조 방지, 의사능력 판단 등 해결해야 할 기술적·법적 과제가 남아 있다. 그러나 그것이 논의 자체를 68년 더 미룰 이유가 될 수는 없다. 금감원의 상속인 금융거래 조회 서비스처럼, 유언장 소재를 한 번에 확인할 수 있는 공적 플랫폼은 당장 설계가 가능한 수준이다.
유언은 단순히 재산을 나누는 문서가 아니다. 한 사람이 살아온 삶의 마지막 언어이자, 남겨진 이들에 대한 배려의 기록이다. 그 언어를 시대에 맞는 그릇에 담을 수 있도록, 68년의 침묵을 이제는 깰 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