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이 인공지능(AI)·반도체 슈퍼사이클로 창출되는 막대한 부(富)를 국민 전체와 공유하는 ‘국민배당금’ 구상을 화두로 던졌다. AI 인프라 투자 확대와 반도체 호황을 일시적 경기 반등이 아닌 국가 구조를 바꾸는 장기 전환기로 규정하면서 초고속 성장 과정에서 생기는 '성장 과실'을 어떻게 사회적으로 분배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를 본격화한 것이다.
김 실장은 1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차원이 다른 나라: AI 시대 한국의 장기 전략'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최근 AIㆍ반도체 호황을 기존 경기순환의 연장선으로 해석하는 시각에 대해 단순 경기 회복으로 보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짚으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닷컴 버블, 일본 부동산 버블, 중국 성장론, 미국 서브프라임 사태 등을 언급한 뒤 "그러나 이번 수요는 구조가 다르다"고 진단했다.
핵심 논리는 AI 인프라 수요의 비가역성이다. 김 실장은 "AI 인프라는 일회성 설비 투자가 아니다"며 "한번 구축된 인프라는 지속적인 업그레이드 수요를 만든다"고 설명했다. 스마트폰처럼 일정 시점 이후 교체 수요가 둔화되는 구조가 아니라 AI 인프라 자체가 계속 새로운 수요를 발생시킨다는 것이다.
특히 그는 한국이 메모리반도체·배터리·디스플레이·전력장비·정밀 제조 역량을 동시에 보유한 드문 국가라는 점에 주목했다. AI 시대의 핵심은 단순히 모델을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인프라를 실제 공급할 수 있는 역량이라는 게 김 실장의 판단이다. 그는 한국 경제가 기존 순환형 수출경제에서 '기술독점경제'에 가까운 구조로 이동할 가능성도 언급했다.
김 실장은 2021~2022년 반도체 호황기 당시 발생했던 대규모 초과세수를 언급하며 "사전에 설계된 원칙 없이 그때그때 소진됐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이번 사이클의 규모는 그때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클 가능성이 있다"며 "아무 원칙 없이 그 과실을 흘려보내는 것이야말로 더 무책임한 선택일 수 있다"고 했다.
이는 '국민배당금'을 해법으로 제시한 배경이 됐다. AI 인프라 시대의 성장 과실은 특정 기업만의 결과가 아니라 "반세기에 걸쳐 전 국민이 함께 쌓아온 산업 기반 위에서 나온 결과"라는 게 김 실장의 인식이다. 일례로 노르웨이 국부펀드를 들었다. 노르웨이가 석유 수익을 장기 사회 자산으로 전환했듯이 한국 역시 AI 인프라 시대의 성장 이익을 사회적으로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김 실장의 문제 제기는 최근 AI·반도체 관련 기업의 이익을 둘러싼 분배 논쟁과도 맞닿아 있다. 삼성전자 노동조합은 영업이익의 15%를 성과급으로 지급하고 상한선을 폐지하라며 성과 보상 확대를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시각은 다르다.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지난달 27일 "삼성전자의 결실에는 수많은 인프라와 협력기업, 400만명이 넘는 소액주주와 국민연금이 연결돼 있다"며 "이익을 회사 내부 구성원끼리만 나눠도 되는 문제인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실장의 사고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갔다. AI 시대 성장 과실을 어떤 방식으로 사회 전체와 공유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구상을 내놓은 것이다. 다만 이는 단순 현금 지급이나 일회성 복지 확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도 분명히 했다. 김 실장은 “핵심은 개별 프로그램이 아니라 원칙”이라며 “청년 창업 자산으로 갈 것인지, 농어촌 기본소득으로 갈 것인지, 예술인 지원이나 AI 전환 교육 계좌로 갈 것인지 등은 사회적 합의를 통해 정교화해야 할 설계 영역”이라고 설명했다.
AI 시대 양극화 문제에 대한 우려도 함께 드러냈다. 김 실장은 "AI 시대의 초과이윤은 속성상 집중된다"며 메모리 기업 주주, 핵심 엔지니어, 수도권 자산 보유자 등 생산 자산에 접근한 계층에 부가 집중될 가능성을 언급했다. 이어 "나라는 부유해져도 그 부의 분포는 자동으로 확산되지 않는다"며 "초과이익의 일부를 사회 안정성과 전환 비용 완화에 사용하는 것은 단순한 분배가 아니라 체제 유지 비용의 성격을 갖는다"고 주장했다.
결국 김 실장의 문제 제기는 단순한 재분배 논의를 넘어, AI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산업국가 모델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라는 보다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 것으로 해석된다.
김 실장은 최근 들어 잇달아 구조 개혁성 화두를 던지고 있다. 이달 초에는 '금융의 구조 시리즈'를 통해 고신용자에 낮은 금리, 저신용자에 높은 금리를 적용하는 현 금융 시스템을 비판하며 금융 양극화 문제를 정면으로 제기했다. 이번 국민배당금 구상까지 더해지면서 단순 경기 부양을 넘어 한국 경제 시스템 전반의 구조 재편 필요성을 본격적으로 부각시켰다. 무엇보다 성장의 과실을 누구에게 어떻게 배분할 것인가를 둘러싼 논의를 정책 의제로 끌어올리면서 향후 정치권과 산업계 전반에 적지 않은 파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