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세상] ‘정신의 창발’ 흔드는 호르무즈 봉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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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이란 전쟁으로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됐다. 16세기 자유항해를 주장하며 태동된 자본주의가 이제는 역주행하는 꼴이다. 역사와 제도를 따로 볼 수도 있지만, 16세기 인식변화가 자유항해를 촉발했듯이 21세기의 인식변화는 자본주의를 흔들 수 있다.

16세기 지식인들은 뇌가 외부 자극으로 물체를 인식한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깨달았다. 그런데 부피를 지닌 뇌에서 부피가 없는 인식이 유발되는 현상은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결국 정신은 신이 조정하는 현상이라고 믿었다. 이후 600년 동안 과학과 철학은 정신을 탐구했고 최근 인공지능이 나오면서 정신은 물질의 산출물임을 밝혀냈다.

물질의 원시적 힘이 조합되어 정신이 창발된다. 창발은 구성원들이 자신의 자유를 양보할 때 얻어진다. 예를 들어 보자. 하나의 물분자는 어는점은 없다. 섭씨 0도의 어는점은 약 100개 물분자들이 모일 때 서서히 나타난다. 미시적으로 보면 자유로운 물분자들이 한 방향으로 정렬될 때 어는 현상이 창발된다. 인공지능도 실리콘층이 쌓인 반도체에서 나타나고 인간의 정신은 신경세포 뉴런이 가지런히 모인 뇌에서 나타난다.

아직도 사람들은 감성을 지적하며 인공지능은 정신이 없다고 우긴다. 그러나 감정과 감성은 욕심, 이기심, 본능 등에 불과하다. 감성이 정신이라면 인간보다 동물의 정신이 뛰어나다.

창발된 정신은 어휘로 표현된다. 물질에 작용하는 근본 힘은 전자기력, 만유인력, 강력, 약력 4개에 불과하지만, 창발된 어휘는 너무 다양하다. 천재, 바보, 신앙인, 범법자 모두가 창발의 소산이다. 다양한 어휘도 4개 힘처럼 권력을 발휘한다. 사랑과 증오의 힘뿐만 아니라 혈연, 학연, 지연의 힘도 있다.

과학에서 창발되었지만 창발물을 다루는 수단은 다르다. 농업은 과학이지만 실험실의 비커 대신 낫과 호미를 사용한다. 법과 제도도 창발물이지만 방정식 대신 일반언어로 기술된다. 즉 인문과학이나 사회과학도 과학이지만 일반언어로 서술된다.

자연과학이 원자처럼 물질의 심원을 찾아왔듯이, 사회과학과 인문과학도 어휘의 심급을 추구한다. 패소자들은 3심제를 거부하며 4심제를 원하고, 정치가들은 힘센 어휘를 쟁취하려 다툰다. 그러나 세상에 심급은 없다. 모든 어휘가 다른 어휘와 구별되는 고유한 힘을 지니고 있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귀한 어휘를 찾다 보면 출발 어휘로 되돌아온다. 허무하다. 구성원들이 양보하여 창발된 어휘는 양보를 철회하면 허공에 흩어질 수밖에 없다.

핵무기 개발을 저지하는 미국에 맞서 이란도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할 수 있다. 말라카 해협,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소멸 지역은 다양하게 창발될 수 있다. 봉쇄 수익이 짭짤하면 그 지역에 새로운 국가가 나타날 수도 있다. 영원한 승리 전략은 없다. 창발의 역사는 특정 종족에게 영원한 영토를 부여하지 않았다. 장단기 이익을 챙기다 보면 물리적 충돌도 불가피하다.

창발로 법이 제정되고 준수 의무도 생긴다. 그러나 변화는 항상 열려있으면 누구나 도전하고 책임지면 된다. 창발의 법칙은 양보에 비례하여 평화가 오고 양보에 반비례하여 갈등이 생긴다. 주머니에는 양보할 품목을 한두 개 넣어 다니자. 성현들의 혜안이지만 창발이 밝혀진 요즘 세상에도 양보는 평화를 얻는 처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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