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창] 효의 본질은 관심과 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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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5월의 식당과 놀이동산은 인파로 붐빈다. 어디를 가나 연로하신 부모님을 모시고 나와 식사를 하는 모습과 화목한 가족의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다.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이 이어지는 달력 앞에서는 자연스레 ‘가정’을 떠올린다.

조선의 선비들에게 가정은 단순한 생활 공간이 아니었다. 그곳은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는 첫 자리였고, 세상을 향해 나아가기 전 스스로를 다듬는 근본의 터전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큰일을 논하기에 앞서 늘 집안을 먼저 돌아보았다.

퇴계 이황이 아직 젊은 선비였을 때의 일이다. 한겨울, 관직에 나아갈 기회가 열렸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주변에서는 모두 “이제 세상에 나갈 때”라며 등을 떠밀었다. 그러나 그의 발걸음은 서울이 아닌 고향 안동으로 향했다.

눈이 허리까지 쌓인 길을 며칠씩 걸어 돌아간 까닭은 단 하나였다.

“어머니께서 연로하시니, 내가 곁에 있어야 한다.”

그는 벼슬길을 미루고 어머니 곁에 머물렀다. 학문을 이루는 것보다 더 먼저 지켜야 할 것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훗날 그는 다시 조정에 나아가 큰 학자가 되었지만, 퇴계에게 효는 기회보다 먼저 선택해야 하는 삶의 기준이었다. 평생 학문과 벼슬 사이에서도 어머니를 향한 마음을 놓지 않았으니,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도 자주 안부를 묻고, 몸 상태를 걱정하며 편지를 보냈다. 그의 효는 극적인 희생이 아니라, 떨어져 있어도 마음을 잇는 꾸준함에 있었다.

또한 율곡 이이 역시 어머니 신사임당과의 관계 속에서 깊은 인간적 뿌리를 내렸다. 그는 학문으로 이름을 떨치기 이전에 한 사람의 아들로서, 가족과의 관계 속에서 삶의 기준을 세웠다. 그의 사유는 결국 가정에서 시작되어 사회로 확장된 것이었다. 이처럼 조선의 선비들에게 가정은 도덕의 출발점이자 삶의 방향을 정하는 나침반과 같았다.

유교 경전에서도 효를 덕의 근본(孝爲本·사진)이라 했지만, 그 뜻은 단지 부모를 봉양하는 데 있지 않다. 서로를 존중하고 마음을 다하는 태도, 곧 사람 사이의 기본을 지키는 데 그 의미가 있다.

조선의 효행 이야기를 오늘날 그대로 따르기는 어렵다. 그러나 그 정신까지 낡은 것으로 치부해서는 안 될 것이다. 부모를 향한 마음, 가족을 향한 책임, 그리고 서로를 향한 배려는 시대가 변해도 사라질 수 없는 인간의 근본이기 때문이다.

5월의 햇살 아래, 우리는 거창한 희생이 아니라 짧은 안부 전화 한 통, 함께하는 식사 한 끼 속에서 이미 효를 실천하고 있다. 기실 한 끼의 식사가 나의 마음이 편하고자 함일지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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