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가사 너무 귀하다."
최근 악뮤(AKMU)의 신곡 가사가 화제를 모으고 있다. 노래 전체가 순수 한글로만 채워진 것을 본 네티즌들이 "영문 가사로 도배된 차트에서 한글 가사가 너무 귀하다"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은 K팝 산업이 마주한 위기를 대변한다. 2일(현지시간) CNN은 "K팝이 그 어느 때보다 대중화되고 있지만 동시에 '덜 한국적(Less Korean)'으로 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2026년 현재 K팝은 특정 국가의 전유물을 넘어 전 세계로 이식되는 하나의 '보편적 메커니즘'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불과 수년 전까지만 해도 K팝의 정체성은 '한국인 멤버'와 '한국어 가사'에 있었다. 하지만 현재 차트를 점령한 풍경은 사뭇 다르다. 블랙핑크의 최신 앨범 '데드라인(Deadline)'에 수록된 곡 대부분이 영어로 채워졌으며, 하이브(HYBE)가 선보인 걸그룹 '캣츠아이(KATSEYE)'는 미국, 스위스, 인도 등 다국적 멤버로 구성되어 "이것을 K팝이라 부를 수 있는가"에 대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전문가들은 이를 K팝의 '하이브리드화'라고 정의한다. 그레이스 카오 예일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제 K팝은 국적이 아니라 시스템의 문제"라고 진단한다. 현지에서 발굴한 원석을 한국식 트레이닝 시스템에 투입해 산출하는 방식, 즉 '제품의 수출'을 넘어 '생산 방식의 현지화' 단계에 진입했다는 것이다.

수치로 본 K팝의 위상은 압도적이다. 하이브, SM엔터테인먼트, JYP엔터테인먼트, YG엔터테인먼트 등 이른바 '4대 기획사'의 합산 매출은 2024년 기준 약 30억달러(4조원)에 육박하며 5년 만에 세 배 가까이 폭증했다. 기획사들은 이 막대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라틴 아메리카와 인도, 미국 현지에 직접 'K인큐베이터'를 심고 있다.
블랙핑크의 여러 히트곡을 쓴 대니 정(Danny Chung) 작곡가는 K팝의 핵심을 '판타지와 현실의 결합'이라고 말한다. 정교하게 설계된 비주얼 아이덴티티, 팬덤과의 유기적인 소통 플랫폼, 그리고 소장 욕구를 자극하는 피지컬 굿즈 시스템이 그것이다. 음악 스타일은 '하이퍼팝'처럼 더 빠르고 자극적으로 변할지언정, 팬을 '세계관' 속에 가두는 한국 특유의 육성 방식은 전 세계 음악 시장의 표준이 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글로벌 확장'이 장밋빛 미래만을 약속하는 것은 아니다. 해외 팬들이 K팝에 열광했던 본질적인 이유가 오히려 '한국적인 이질감'에서 오는 매력이었기 때문이다. 한국적 색채가 거세된 K팝이 기존 팝 음악과 무엇이 다르냐는 회의론이 고개를 드는 이유다.
실제로 CNN은 3월 광화문에서 열린 방탄소년단(BTS) 복귀 공연 당시, 일반 관람 구역의 인파가 예상치를 밑돌았다는 점에 주목했다. CNN은 "이러한 현상이 하이브의 주가 급락을 촉발했다"고 분석하며, 이를 시장 포화와 정체성 상실에 대한 잠재적 경고 신호로 해석했다.
K팝이 '한국'이라는 뿌리를 잘라내고도 독자적인 생명력을 유지할 것인지, 아니면 정체성을 잃고 일시적인 유행으로 사그라들 것인지는 현재 시험대에 오른 5세대 글로벌 그룹들의 행보에 달려 있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