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런데 좀 이상하다. 위암과 대장암은 순서만 바뀌었을 뿐 둘 다 여전히 흔한 암인데 위와 대장 사이에 있는 소장은 암 통계에서 나오지도 않는다. 실제 한 연구에 따르면 평생 걸릴 위험성이 대장암은 4.8%인 반면 소장암은 0.2%로 24분의 1에 불과하다. 굵기가 가늘어서 소장이지 길이로는 대장의 서너 배나 되는데 어떻게 된 일일까.
이에 대해 예전에 한 한의사가 설명한 게 기억난다. 암은 ‘음(陰)’의 질환이라서 음의 장기인 대장이 취약하고 양의 장기인 소장은 암이 드물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싶긴 한데 아무튼 참신한 발상이다.
그런데 주요 장기 가운데 소장보다도 암에 더 강한 장기가 있다. 바로 심장이다. 심장암은 사실상 없을 정도이고 심지어 다른 장기의 암세포가 전이돼 생긴 암도 드물다. 전이됐더라도 암이 거의 자라지 않아 부검을 통해 확인하는 수준이다.
흥미롭게도 심장은 양의 기운이 가장 강한 장기다. 음양오행설에 따르면 심장은 소장과 함께 ‘화(火)’에 해당하는데 여름과 붉은색을 상징한다. 뜨거운 붉은 피를 뿜어대는 장기이니 자연스러운 발상으로 보인다. 그 한의사의 말이 정말 맞는 것일까.

지난주 학술지 ‘사이언스’에는 심장암이 드문 이유를 밝힌 이탈리아 국제유전공학생명공학센터가 주축인 공동연구자들의 논문이 실렸다.<사진> 결론부터 말하면 설사 암세포가 생기더라도 심장 박동, 즉 심근이 주기적으로 수축하는 힘 때문에 증식하지 못해 종양으로 진행하지 못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혈관을 타고 전이된 암세포 역시 심장에 자리한 상태에서는 수축하는 힘을 받을 수밖에 없어 증식이 어렵다. 그런데 심장 박동(수축)으로 인한 힘이 어떻게 암세포 증식을 억제하는 걸까.
연구자들은 심장 기능에 치명적인 문제가 생겨 좌심실보조장치를 단 환자들에게서 힌트를 얻었다. 다른 장기와는 달리 심장을 이루는 심근세포는 출생 이후 증식 능력을 잃는다. 즉 자라면서 심장이 커지는 건 세포 자체가 커진 결과다. 따라서 어떤 이유로 심근세포가 죽거나 기능을 잃으면 보충이 안 되므로 치명적일 수 있다.
그런데 심좌심실보조장치가 대신 피를 뿜어줘 쉬게 된 심근세포가 오히려 증식 능력을 회복했던 것이다. 이는 심장 수축으로 인한 힘이 심근세포에 증식을 억제하라는 신호로 작용했음을 뜻한다. 따라서 심장에 생긴 또는 전이로 자리 잡은 암세포 역시 이 신호를 받아 증식이 억제된 것 아닐까.
연구자들은 생쥐를 대상으로 암 관련 유전자 두 개가 돌연변이를 일으키게 처리해 암 발생을 유도했는데, 여러 장기에서 암이 생겼지만 예상대로 심장만은 예외였다. 그런데 접시에 배양한 심근세포(따라서 힘을 받지 않는다)에 처리해 생긴 암세포는 활발히 증식했다.
심장 근육의 수축, 즉 심근세포를 누르는 힘이 증식을 억제하는 과정을 추적한 결과 핵막에 있는 네스프린2라는 단백질이 힘의 신호를 받아 증식 관련 유전자 발현을 억제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실제 네스프린2 유전자를 없앤 심근세포는 힘을 받아도 증식해 이 가설을 뒷받침했다. 연구자들은 다른 장기의 암에도 힘을 가해 치료하는 방법을 개발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그런데 왜 심근세포는 증식하는 능력이 억제돼 손상을 입었을 때 대책이 없게 된 것일까(덕분에 암은 안 걸리지만). 진화의 관점에서는 이게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심장 박동은 대단히 정교한 과정으로 자칫 어긋나면 바로 목숨을 잃는다. 만일 심근세포가 증식하면 새로 생긴 세포가 공간을 차지하며 심장 구조가 틀어져 오작동 위험성이 커진다.
수명에 따라 다르겠지만 사람 심장은 평생 30억 회를 뛴다.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암에도 걸리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심근세포들이 새삼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