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휴머노이드 로봇은 인간의 신체 구조를 닮아 기존 공장 설비를 개조하지 않고도 작업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범용성이 탁월하다. 유니트리·어지봇·BYD 등 중국 기업들은 2025년 글로벌 휴머노이드 로봇 출하량의 80% 이상을 점유한다. 테슬라 옵티머스가 그해 실제 출하한 수량은 150대에 불과했다. 중국은 산업용 로봇에서도 세계 최대 도입국으로, 2024년 한 해에만 약 29만8000대를 신규 설치해 전 세계 시장의 54%를 차지했다. 로봇이 단순히 비용을 줄이는 도구가 아니라, 임금 상승 압력을 흡수하고 공급망 지배력을 고착시키는 제조 인프라로 기능하기 시작한 것이다.
한국은 어떤가. 한국은 로봇 밀도 세계 1위(직원 1만 명당 1012대, 2024년 기준) 국가다. 그러나 로봇 대부분은 대기업 공장에 몰려 있다. 제조업 경쟁력의 근간인 중소 뿌리 기업, 주조·단조·금형·용접을 떠받치는 현장은 고령화와 인력난으로 무너지고 있다. 뿌리 기업 상당수가 원가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폐업하거나 동남아로 이전하는 추세다. 한국 중소기업의 94%가 이미 외국인 노동자에 의존 중이며, 여기에 중국의 가격 경쟁력이 더해지며 삼중의 압박에 시달린다. 중국이 휴머노이드 로봇으로 노동력 문제까지 해결한다면, 한국 중소 제조업이 버틸 공간은 더욱 좁아진다.
그렇다면 화려한 쿵후 동작의 휴머노이드 경쟁에서 중국을 이길 수 있을까, 반문하게 된다. 전면전보다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시점이다. 한국이 승부를 걸어야 할 곳은 범용 휴머노이드가 아니라, 중소 제조 현장에 특화된 협동로봇(Cobot)과 서비스형 로봇(RaaS) 생태계다.
실제로 글로벌 시장에서 의미 있는 전환이 일어나고 있다. 협동로봇 시장은 2026~2033년 연평균 21% 이상 성장이 전망되며, 자동화를 도입한 중소기업의 42% 이상이 협동로봇을 통합하고 있다. 진입형 모델의 본체 가격이 3만달러(약 4000만원) 이하로 진입했고, 로봇을 구매하는 대신 시간당 8~15달러 수준의 구독료로 이용하는 구독 서비스형 RaaS 모델도 자리를 잡았다. 무거운 설비 투자 없이 운영 비용만으로 자동화가 가능해진 것이다. 1980년대 메인프레임이 개인용 컴퓨터로 대중화되며 차고지 창업자들이 세상을 바꿔놓았듯, 이제 로봇의 민주화가 중소 공장 현장에서 조용히 진행되고 있다.
국가 차원의 결단이 시급하다. 중소 제조업체의 협동로봇 도입을 위한 한국형 RaaS 플랫폼, 공공이 설계하고 민간이 운영하는 구독형 금융 지원 구조를 갖춰야 한다. 독일의 미텔슈탄트 4.0 프로그램처럼, 뿌리 기업이 초기 투자 부담 없이 자동화에 진입하는 경로를 열어야 한다. 아울러 은퇴하는 숙련공의 노하우를 로봇에 학습시키는 공정 디지털화 지원을 확대하고, 공정별 소프트웨어를 표준화해 유통하는 로봇 앱스토어 생태계도 민관이 함께 설계해야 한다. 장인의 기술이 공장 밖으로 사라지지 않도록 하는 것, 이것이 한국 제조업 재건의 핵심이다.
지금은 중국과 스펙 경쟁을 벌일 시간이 아니라, 한국 중소 제조업의 생존 엔진을 달아줄 시간이다. 쿵후 동작보다 중요한 것은 골목 공장의 협동로봇 한 대다. 협동로봇을 뿌리 산업의 생존 인프라로 삼는 전략적 결단에서 한국 제조업의 부활을 이끌어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