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현광장_이상미의 예술과 도시] 경험 설계하는 플랫폼이 된 ‘예술’

기사 듣기
00:00 / 00:00

공연은 글로벌 단위로 복제돼 소비
문화적 변화에 예술가도 예외 없어
슈퍼팬 중심 관객저변 확산 나서야

2026년 4월 현재, 서울 도심의 시간은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흐르고 있다. 특정한 하루의 사건이 아니라, 축적되는 문화적 파동이 도시의 리듬 자체를 바꾸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3월, BTS의 공연을 계기로 광화문 일대가 대규모로 통제된 장면은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라 이러한 변화를 압축적으로 드러낸 상징적 사건이었다. 이제 도시는 고정된 생활 공간이 아니라, 이동하는 문화예술 경험과 감정이 교차하는 플랫폼으로 재편되고 있다. 이는 일시적 유행이 아니라 도시의 기능과 소비 구조를 재구성하는 구조적 전환으로 읽어야 한다. 이러한 변화는 도시의 경쟁력 기준 자체를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특히 BTS와 같은 글로벌 아티스트의 투어는 공연 발표만으로도 항공, 숙박, 플랫폼 산업을 동시에 움직이는 파급력을 갖는다. 일정이 공개되는 순간 관련 산업이 연쇄적으로 반응하며, 개최 도시는 단순한 공연장이 아니라 경험을 위해 방문해야 할 목적지로 재정의된다. 이는 과거 일시적 관광 수요와는 다른 양상이다. 팬덤은 이벤트에 집결하는 것이 아니라 경험의 경로를 따라 이동하며 반복적으로 소비하고, 이 과정에서 예술은 순환적 경제를 창출하는 동력으로 작동한다. 결과적으로 K팝 공연 산업은 도시 경제 구조를 재편하는 핵심 인프라로 기능하고 있다.

이 변화는 예술의 기능에 대한 재해석을 요구한다. 전통적으로 예술은 감상의 대상이었지만, 이제는 경험을 설계하는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다. 공연은 글로벌 단위로 복제되는 구조화된 경험이며, 동일한 감동이 세계 도시에서 반복된다. 결국 동시대 예술은 개별 작품이 아니라 경험을 조직하고 유통하는 시스템으로 이해되어야 하며, 관객 역시 능동적 참여자로 전환되고 있다.

이 지점에서 시각예술계 역시 더 이상 관망할 수 없다. 작품 중심의 가치 체계에서 벗어나 관람자의 체류 시간과 참여 방식, 공간 경험을 포함한 총체적 설계가 요구된다. 전시장은 감각을 축적하고 체류를 유도하는 경험의 동선으로 재구성되어야 한다. 몰입형 전시와 인터랙티브 콘텐츠, 디지털 기술과의 결합은 필수 조건이 되었으며, 이는 미술관과 갤러리의 존재 방식을 재정의하고 있다.

예술가에게도 변화는 불가피하다. 창작은 결과물이 아니라 관객과의 관계를 설계하는 과정으로 확장되고 있다. 작품은 다양한 플랫폼에서 변주될 수 있어야 하며, 디지털 환경에서도 지속적으로 재생산될 수 있는 구조를 갖추어야 한다. 예술가는 창작자에 머무르지 않고 경험을 기획하는 프로듀서로서의 역할을 요구받는다. 이는 예술가의 역할이 생산자에서 기획자, 나아가 플랫폼 설계자로까지 확장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변화는 시각예술계의 수용 구조에도 긴장을 만들어낸다. 슈퍼팬 중심 소비는 미술시장에서도 강화되며, 소수 컬렉터 의존 구조는 관람층 피로와 진입 장벽 상승이라는 리스크를 동반한다. 경험의 고급화가 가속화될수록 새로운 관객 유입은 제한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다양한 관람 방식과 가격 구조를 통해 관객 저변을 확장하려는 노력이 필수적이다.

동시에 이를 뒷받침할 물리적, 제도적 기반도 필요하다. 도시 공간을 임시적 전시 및 공연 무대로 활용하는 방식은 상징성은 크지만 지속 가능성에는 한계가 있다. 복합 문화 인프라와 전시 공간에 대한 투자, 정책적 지원이 병행되어야 하며, 이는 문화가 도시 경쟁력을 결정하는 핵심 자산으로 전환되는 흐름에 대한 대응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개별 공연의 성패가 아니라 구조의 전환이다. 예술은 이미 도시와 경제, 소비를 재편하는 경험 생산의 질서로 이동했고, 이는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다. 이 변화 속에서 시각예술은 더 이상 주변에 머물 수 없다. 작품을 넘어 경험을 설계하고, 관객과 도시를 조직하는 중심 주체로 전환해야 한다. 광화문을 멈춰 세운 것은 하나의 공연이 아니라, 예술이 현실을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신호다. 이제 질문은 하나다. 시각예술은 이 변화의 중심에 설 준비가 되어 있는가. 그 답이 곧 미래 문화 경쟁력을 결정할 것이다.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추가취재 원해요0
주요뉴스
많이 본 뉴스
댓글
0 / 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