前 산업연구원장
정부·가계·기업 동시확대 복합위기
재정준칙 지켜 효율성부터 높여야

미국과 이란 전쟁 등으로 국내외 경제의 어려움이 가중되는 가운데 국가 총부채가 원활한 경제운영을 더욱 힘들게 할 위험성이 높아지고 있다. 최근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한국 총부채는 6500조원을 넘어섰다. 이는 국내총생산(GDP)의 약 2.5배 수준이다. 더 큰 문제는 증가 속도다. 불과 몇 년 전 5000조원이었던 총부채는 6000조원을 거쳐 단기간에 6500조원까지 증가했다. 이는 단순히 빚이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경제 구조 자체가‘부채 의존형’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전에는 가계부채 중심으로 경제위험이 잠복해있었지만, 이제는 가계·기업·정부 세 부문 부채가 동시에 늘어나‘복합 부채 위기’구조로 전환되고 있는 것이다. 가계부채는 GDP 대비 약 90% 수준으로 세계 최고 상태를 유지하고 있고, 기업부채도 빨리 늘어나 100%를 웃돌고 있다. 정부부채 역시 급증하면서 국가 총부채 구조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최근에는 부채 부담을 가중시킬 새로운 대내외 불안 요인들마저 생겨나고 있다. 미·이란 전쟁으로 지정학적 불확실성과 불안감이 크게 높아지면서 세계 에너지 가격과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지정학적 긴장이 고조될수록 각국 정부는 경기 방어와 물가 대응을 위해 재정지출을 확대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이는 국채 발행 증가로 이어지고 결과적으로 정부부채를 빠르게 늘리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한국 역시 이러한 흐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에너지 가격 상승과 경기 불확실성에 대응하기 위한 재정지출 확대는 불가피하지만, 이는 동시에 정부부채 증가를 구조적으로 고착화시킬 가능성이 크다. 한편 금융시장에서도 또 다른 위험 여건이 형성되고 있다. 최근 인공지능(AI) 확산에 따른 반도체 산업 특수 등으로 국내 주가가 급등하면서 개인 투자자들 자금이 빠르게 증시로 유입되고 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차입을 통한 투자, 즉 ‘빚투’가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의 총부채는 현 상태에서 조정해 나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요인들에 의해 다시 확대되는 악순환 양상을 나타낼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정부는 지정학적 리스크 대응 과정에서 부채를 늘리고, 가계는 금융시장 호황을 배경으로 차입을 확대하고, 기업 역시 경기 부진 상황 속에서 차입 의존 구조를 유지할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부채가 세 부문에서 동시에 확대되는 현상은 매우 위험하다. 어느 한 부문에서 문제가 발생할 경우 다른 부문으로 충격이 빠르게 전이될 수 있는 까닭이다.
정부부채 증가로 국채 발행이 확대되면 시장 금리는 상승 압력을 받는다. 금리가 상승하면 가계의 이자 부담이 커져 소비가 위축되고, 기업의 투자 비용도 올라가 투자 활동이 위축된다. 동시에 정부의 이자 부담 역시 급증하면서 재정 여력은 줄어들게 된다. 결국 소비, 투자, 재정이 동시에 제약되는 구조를 형성한다.
국제통화기금(IMF)과 같은 세계적 경제기구들은 각 부문 부채가 동시에 늘어나는 상황에서는 부채의 상호 연계를 고려한‘거시금융 통합 관리’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각 경제 부문 부채를 개별적으로 관리하는 접근에서 벗어나 총부채 관점에서 정책을 설계하고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계부채는 상환능력 범위 내에서 강력하게 관리하고, 금융시장 과열 국면에서 신용 확대를 최대한 억제해야 한다. 기업부채는 한계기업의 구조조정 등을 통해 비효율적 차입 구조를 해소해 나가야 한다.
무엇보다 정부부채는 확고한 재정준칙하에서 증가 속도를 억제하고 불요불급한 정부 지출을 줄여 재정의 효율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관리해야 할 것이다. 특히 현재와 같이 지정학적 리스크와 금융시장 호황이 동시에 나타나는 시기에는 정책 균형이 더욱 중요하다. 단기적 경기 대응과 시장 부양에만 집중할 경우 부채는 더 빠르게 증가하고 그 부담은 고스란히 미래로 전가될 수밖에 없다.
다행히 정부는 부채 관리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가계부채 관리 방안’등 선제적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다. 이번 추경 예산도 추가 빚을 내기보다는 반도체 경기 호황 등에 의한 세수 증가로 충당하기로 한 것에서 부채 관리를 위한 정부 고심을 읽을 수 있다. 부채 관리에 실패하면 이는 미래 부담뿐만 아니라 현재 위험으로도 바로 전환될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차제에 총부채 관점에서 부채 규모를 적정수준에서 통제하고, 산업 경쟁력 강화와 생산성 제고에 의한 세수 확대 등으로 부채 상환 능력을 키우는 보다 중장기적 경제운용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기업에 대한 규제 혁신과 노동 개혁 등으로 기업의 생산성과 경쟁력을 키우고 고용을 늘리는 경제성장 정책이 결국 근본적 부채 관리 전략이라 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