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가 스스로 인공지능(AI)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없으면 결국 외부에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된다. 전기 같은 인프라를 해외에 의존하지 않는 것과 같은 문제다."
하정우 청와대 AI미래기획수석은 한국형 AI 독자 개발의 이유를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단순히 기술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겠다는 차원을 넘어 외국산 AI에 의존했을 때 맞닥뜨릴 공급망·가격·안보 리스크를 고려한 판단이라는 설명이다.
그가 '소버린 AI'를 처음 제기한 것은 2021년 2월이다. 당시엔 낯선 개념이었지만 지금은 주요국들이 앞다퉈 자국 AI 기술 확보에 나서며 패권 경쟁이 본격화했다. 그 흐름을 가장 먼저 읽었던 인물이 이제 청와대 참모로서 전략을 직접 설계하고 있다.
이재명 정부 10개월. 한국이 'AI 3강'을 어떻게 노리고 있는지, 제조업과 AI의 결합이 어디까지 왔는지, 그리고 AI 시대의 일자리 문제를 정부가 어떻게 접근하고 있는지. 과학의 날(4월 21일)을 앞두고 하 수석은 8일 이투데이 등 복수 매체와 공동인터뷰를 가졌다.
하 수석은 AI를 기술이 아닌 '국가 인프라'로 규정했다. 그는 "지금도 벌써 AI 없이 일하기가 되게 힘든 상황이 됐다"면서 "(앞으로) 훨씬 더 많은 업무에 AI가 도입되고 그 AI들이 로봇에 탑재돼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시기에 왔을 때 가격 정책을 바꿔버리거나 혹은 활용 범위를 제한해 버린다면 큰일이 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는 단순한 우려가 아니다. 메타의 오픈소스 AI 모델 '라마(Llama)'가 대표적인 사례다. 라마는 버전을 거듭할수록 라이선스 정책이 달라졌다. 하 수석은 "라마1과 라마2 라이선스가 다르다. 언제든지 수 틀리면 바꿔버리는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특정 버전부터는 용도별로 별도 계약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무료로 개방된 다른 오픈소스도 공급자의 판단에 따라 언제든 조건이 바뀔 수 있다는 얘기다.
하 수석은 "우리가 스스로 이런 AI를 만드는 능력이 없으면 거기에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라며 "한국 자체적으로 AI를 잘 만들고 잘 운영할 수 있는 능력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하 수석은 지난 10개월간 가장 의미 있는 성과에 대해 묻자 "당연히 GPU(그래픽처리장치) 26만장을 확보한 것"이라고 했다. 그동안 국내 AI 생태계는 컴퓨팅 자원 부족이 가장 큰 병목 요인으로 지적돼 왔다. 대학과 스타트업은 물론 기업 연구소까지 GPU 확보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연구·개발 자체가 제한되는 구조였다. 과거 고속도로가 산업 발전의 기반이 됐듯 GPU 인프라가 그 역할을 하게 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는 것이 하 수석의 설명이다.
흥미로운 것은 GPU 확보가 단순한 인프라 투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재 유출을 막는 직접적 수단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지난해 카이스트 연구팀이 AI 인재 해외 유출 원인을 조사한 결과 1위는 '처우 차이', 2위는 'GPU가 없어서'였다고 한다. GPU 환경이 갖춰지면 처우 차이가 크지 않은 한 남겠다는 응답이 60%에 달했다는 것이다. 하 수석은 "이런 부분도 GPU 확보를 가장 먼저 진행했던 이유"라며 "실제 스타트업이나 학교 등에 GPU가 배분되면서 그간 해보지 못했던 걸 할 수 있게 됐다는 긍정적 반응이 나오고 있다"고 밝혔다.
현재까지 확보된 GPU는 지난해 추가경정예산으로 1만3000장이 도입됐고, 올해 하반기에는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에 9000장이 구축될 예정이다. 여기에 본예산으로 1만5000장이 추가 투입될 예정이며 별도로 확보가 예정된 1만5000장까지 포함하면 총 5만2000장 규모가 확정된 상태다. 하 수석은 여기에 "수요를 조사해봤더니 1만장이 부족한 상황"이라며 추가 확보 가능성을 내비쳤다.
GPU 확보와 함께 글로벌 자본 유치도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해 9월 유엔총회를 계기로 래리 핑크 블랙록 회장과 면담이 이뤄졌고, 이후 블랙록 자회사인 비나(Vena) 에너지가 서해안 해상풍력 단지에 20조원 규모의 투자 의향서(LOI)를 체결했다. 재생에너지 인프라를 기반으로 한 데이터센터 투자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AI 인프라 확충과도 직결되는 사안이다. 하 수석은 "블랙록의 투자는 단계적으로 진행되고 있고 추가적인 논의도 이어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 수석은 한국 AI의 경쟁력에 대해 "프랑스·싱가포르·영국·아랍에미리트(UAE) 등이 포진한 3위 그룹에서 선두를 지키면서 미·중 양강과의 간극을 좁히는 것이 현실적인 목표"라고 말했다.
가능성의 근거로는 두 가지를 꼽았다. 먼저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메모리 반도체와 제조업 기반이다. 그는 "미국은 소프트웨어 강국이지만 제조업이 약하고, 중국을 제외하면 두 축을 모두 갖춘 나라는 한국이 거의 유일하다"고 평가했다.
연구 경쟁력도 기대 이상이다. 세계 최고 권위 AI 학회 뉴립스(NeurIPS)에서 한국은 지난해 처음으로 저자 수 기준 미국을 제치고 2위에 올랐다. 1위는 중국이다. 하 수석은 "이만큼 우리가 잘할 수 있고 실제로 잘하고 있다는 의미"라고 했다.
여기에 더해 정부는 '국가과학자 제도' 등을 통해 인재 확보에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하 수석은 국가과학자 제도는 단순한 처우 개선을 넘어 사회적 존중을 강화하는 데 방점이 찍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국가과학자 제도를 만들 때 일반적인 지원이나 국가사업 개념이 아니라 과학자들이 국민으로부터 '존경받고 있다'는 느낌을 줄 수 있는 데 중점을 뒀다"고 설명했다.
실질적인 처우 문제 개선에도 정책의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하 수석은 "외국 인재가 국내에 들어올 때 정주여건과 지원도 중요하지만, 회사냐 학교냐 둘 중 하나만 선택하도록 하는 구조는 한계가 있다"면서 "기업과 대학 양쪽에 동시에 소속돼 일할 수 있도록 하고 양측에서 보수를 받을 수 있게 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풀어야 한다"고 했다. 이어 "세금과 물가 수준까지 고려하면 한국에서도 충분히 경쟁력 있는 선택지가 될 수 있도록 제도를 설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전문연구요원 제도와 관련해서는 "병무청과 오랜 기간 협의해 상당한 진전을 이뤘고 조만간 공개할 수 있을 것"이라며 "국방부 장관도 이 문제에 대해 전향적인 입장을 밝혔다"고 했다.
하 수석은 AI 성장의 이면에 놓인 일자리 감소와 양극화 문제에 대해 "어렵다"는 표현을 여러 차례 반복했다. 단순한 정책 설계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합의가 전제돼야 하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하 수석은 AI 전략위원회를 중심으로 대응 논의를 시작했다고 했다. 그는 "2월 첫 회의를 주재하면서 이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기 시작했다"면서 "현재 위원회 내 사회 분과와 AI민주주의 분과를 중심으로 논의가 이어지고 있으며 국회와의 협의가 필요한 부분도 있어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일자리 문제의 경우 현장 조사도 병행하고 있다. 지난해 말 AI로 인해 위기를 느끼는 현직 종사자 3개 직업군을 대상으로 심층 인터뷰를 진행했고 현재는 수십개 직업으로 확대해 인터뷰와 그룹 토론을 이어가고 있다. 하반기 중 결과 보고서가 나올 예정이다. 하 수석은 "중요하지 않아서가 아니고, 너무 어렵고 많은 공감대가 필요하기 때문에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