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강력한 ‘국가 비전’ 나와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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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완 서정대 스마트모빌리티학부 및 미래자동차석사과정 교수

대한민국은 현재 ‘인공지능(AI)’이라는 거대한 블랙홀에 매몰되어 있다. 국가 정책의 설계도부터 예산 편성, 기업들의 경영 전략까지 온통 AI라는 두 글자뿐이다. 그러나 화려한 수사 뒤에 숨겨진 냉혹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글로벌 지형에서 우리나라는 미국과 중국이라는 독보적 ‘G2’를 뒤쫓는 수많은 ‘나머지(Others)’ 중 하나일 뿐이다. 인프라 구축, 인재 양성, 그리고 소버린 AI에 사활을 걸고 있다지만, 정작 명확한 ‘국가 비전’이 보이지 않는다 건 치명적이다.

AI 대전환, 산업 고도화에 그쳐선 안돼

현재 정부가 추진하는 AI 대전환은 기존 산업의 효율성을 높이는 수준의 ‘고도화’에만 멈춰 있다. 정권 출범과 동시에 기획되었어야 할 차세대 제조업 육성은 ‘AI 만능주의’하에 실종됐다. 미래 경쟁력의 핵심은 단순히 AI를 제조업에 얹는 수준이 아니다. AI가 실체로 현신하는 ‘피지컬 AI(Physical AI)’의 시대로 나아가야 하며, 이미 G2는 이 분야에 국가적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반면 우리의 현실은 암담하다. 세계가 고도(완전) 자율주행과 첨단 휴머노이드라는 새로운 지평으로 달려나갈 때, 우리는 고작 ‘제조 AI’를 피지컬 AI라 포장하며 자위하고 있다. 이대로라면 과거 ‘로봇 물고기’의 악몽처럼, 실체 없는 구호와 껍데기만 남은 결과물로 귀결될 것이라는 우려가 결코 기우로 들리지 않는다.

정부가 내세운 미래 전략기술의 면면을 살펴보면 더욱 난감해진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핵융합은 국가 비전으로 삼기엔 너무 먼 미래의 이야기이자 지엽적인 과제다. 여당이 내세운 ‘ABC(AI, Bio, Culture)’ 테제의 ‘첨단 바이오’도 논리적 기반이 역시 박약하다. 실제로 식품의약품안전처 공무원 198명 공개채용에 1만8000여 명이 지원했다는 건 산업 전반의 회의론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사실 지난 정부 때 이미 ‘퍼펙트 스톰’ 수준으로 붕괴된 국가비전을 현 정부가 답습하는 게 여기저기서 자주 보여 안타깝다. 한때 경제의 든든한 버팀목이었던 배터리마저 무너진 상황에서, 문재인 정부에서 시작해 현 정부로 이어진 ‘국가첨단전략기술’ 체계도 그대로 답습하는 것만으로는 새 시대의 성장동력을 얻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국가비전의 실종이다. 정부 출범 1년을 향해가는 시점에도 국민의 가슴을 뛰게 할 비전은 고사하고, 소위 ‘평타’만 치겠다는 안이한 자세와 존재감 미미한 정책들만 나열되고 있다. 대통령실 AI 미래 수석실은 수석 한 명이 일기당천으로 과학기술과 기후에너지까지 감당하며 과부하에 걸려 있는데, 그 와중에 들려오는 수석의 출마설은 고민을 더 깊게 한다. 전략가이자 리더조차 정치 논리에 밀려 자리를 비운다면 더욱 힘들어질 것이다. KAIST 총장 하나 제대로 선임하지 못하고 밥투정만 하며 돈돈거리는 과학기술과 종량제 봉투 1매씩 판매를 논한 근시안적인 기후에너지 정책으로 격화되는 지정학적 위기에 어떻게 대응할지 의문이다.

행사용 아닌 명확한 이정표 제시해야

이제 반도체 하나에만 의지해 국가의 5년을 끌고 갈 수 있다는 오만에서 벗어나야 한다. 핵심 인력을 선거로 내몰 만큼 절박하다면, 오히려 이를 기점으로 국가 운영의 판을 완전히 다시 짜야 한다. 대통령비서실 정책실부터 대규모 인적 쇄신으로 ‘강력한 국가 비전’을 정합성 있게 구축해야 한다. 정부 2년 차 이후를 제대로 준비하는 마음으로 지금의 공백을 메워야 할 골든아워가 지나가고 있다.

국가 비전은 실적 보고를 위한 행사용이 아니라 기업에는 명확한 이정표를, 국민에게는 손에 잡히는 희망을 제시하는 엄숙한 선포여야 한다. 지금 우리는 첨단과학기술에 더해 어디로 갈지를 결정하지 못한 국가 비전의 실종을 고민해야 한다. 국가 비전의 정교화가 2년 차의 숙제로 남았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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