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시각] 전쟁이 만든 물가 '워플레이션'의 역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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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발(發) 전쟁의 불길이 한국 경제를 옥죄고 있다. 한 달 넘게 이어진 포성은 지정학적 충돌을 넘어섰다. '워플레이션(Warflation·전쟁발 물가 상승)'이라는 이름의 충격파가 산업 현장과 소비자 물가, 시민의 일상까지 파고들고 있는 것이다.

이미 현장 곳곳에서 경고음이 울리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 여파로 나프타 수급에 빨간불이 켜졌고 원자재 가격 급등이 맞물리면서 석유화학 제품의 생산 원가가 가파른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 비닐·플라스틱 등 생활 밀착형 필수재 가격도 심상치 않은 흐름을 보이기 시작했다. 공장에서 조용히 쌓이던 비용 압박이 유통망을 타고 소비자 장바구니까지 번지는 것은 시간문제다. 산업계 안팎에서 '공포의 4월'이 현실화될 것이란 말이 심심치 않게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이 충격이 기존의 인플레이션과 본질적으로 다른 성격을 띤다는 점이다. 통상적인 물가상승은 소비 과열이나 통화 팽창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워플레이션은 전쟁이 틀어막은 공급망에서 출발한다.

특히 중동은 글로벌 원유 공급의 핵심 축으로, 유가는 사실상 모든 산업의 비용 기준으로 작용한다. 그런데 유가 충격은 수직으로 낙하하지 않는다고 한다. 물류비와 원자재값을 동시에 끌어올리며 산업 전반을 비스듬히 가로지르는 것이 워플레이션의 속성이다.

더 치명적인 것은 워플레이션을 통제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일반적인 수요 과열형 인플레이션이라면 기준금리 인상으로 대응이 가능하지만, 공급 충격 기반의 워플레이션은 통화정책으로 제어하기 어렵다. 금리를 올린다고 막힌 항로가 열리지는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기업의 자금 조달 부담만 키워 경기 둔화를 자극할 수 있다. 비용 상승과 경기 침체가 동시에 나타나는 스태그플레이션 위험이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시간차 공격이다. 기업 간 거래(B2B)에서 시작된 비용 상승이 소비자물가에 반영되기까지는 시차가 존재한다. 통상 2~3개월의 지연이 발생하는 만큼 3월보다 4월 이후 물가 상승 압력이 본격화될 가능성이 크다. 실제 최근 물가 전망치가 한 달 사이 2.1%에서 2.6%로 상향된 것도 이 같은 흐름을 반영한다.

설상가상, 출구조차 녹록지 않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은 전쟁 전개 양상에 따른 세 가지 시나리오 중 가장 낙관적인 '조기 종전·휴전'에서도 유가가 전쟁 이전(배럴당 63달러)보다 43% 높은 90달러 수준에 머무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최악의 '에너지 시설 타격·확전' 시나리오가 현실화할 경우 유가는 역사적 전례를 찾기 어려운 배럴당 174달러까지 급등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결국 세 시나리오 모두에서 공통된 결론은 하나다. 전쟁이 끝나도 유가는 전쟁 이전 수준으로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부도 사태의 심각성을 분명히 인지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을 중심으로 전 부처가 연일 물가와 수급 상황 점검에 나서며 선제적으로 대응 체계를 강화하는 모습이다. 하지만 속도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워플레이션 국면에서 정책의 성패는 속도만큼 중요한 것이 정교함이다. 공급망 관리, 업계와의 실시간 소통, 물류 차질 대응 등 현장에서 작동하는 세밀한 조율이 뒤따르지 않으면 시장은 쉽게 흔들린다.

무엇보다 유류세 인하와 가격 통제는 소비자 체감 부담을 덜지만만 국제 원가 자체를 낮추지는 못한다. 공급원 다변화, 전략비축유의 국제에너지기구(IEA) 공조 체계 연계, B2B 물가 전이 경로의 촘촘한 모니터링도 병행돼야 한다.

전쟁은 통제할 수 없는 변수다. 그러나 그 파고를 넘는 방식은 선택의 문제다. 지금 한국 경제 앞에 놓인 시험대는 단순한 물가 대응이 아니다. 워플레이션이라는 복합 위기 속에서 정부가 얼마나 정교하게 상황을 관리할 수 있는지에 대한 시험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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