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국가가 못하면 시민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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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윤희 사단법인 무의 이사장

“왜 애 엄마가 이런 정보를 모으고 있죠? 이런 건 국가가 모아야 하는 것 아닌가요?”

처음 서울지하철교통약자환승지도를 만들었을 때 들은 말이다. 틀린 말이 아니다. 마땅히 정부 부처가 나서서 이동 약자 정보를 수집하고 제공해야 한다. 하지만 서울지하철에만 최소 6개의 사업자가 존재하고, 이들은 서로 다른 부처 소속이다. ‘협력해야 한다’는 당위나, ‘좋은 일이니 돕자’는 사명감만으로는 복잡하게 얽힌 이해관계를 풀 수 없다.

‘엄마의 불편’이 만든 공익데이터

얼마 전 서울역에서 그 현실을 몸으로 겪었다. 서울역 공항철도 구간에 있는 회의실에 가는 길이었다. 내가 이끄는 무의가 서울교통공사와 협력해서 서울역, 시청 등 10개 역에 붙인 청록색 교통약자 표지가 길잡이가 되어 주었다.

자랑스러움이 올라오던 즈음, 청록색 띠가 끊겼다. 서울역 안으로 들어와 다른 철도 사업자 구간에 접어들자 안내판이 사라지고, 폰트가 달라지고, 내가 찾고 있던 3번 출구의 정의가 바뀌고, 엘리베이터 표지가 눈에 띄지 않을 만큼 작아졌다. 구석에 있는 공항철도로 이어지는 엘리베이터를 찾지 못해 20분간 헤매다 회의에 지각하고 말았다. 10년간 지하철에서 데이터 수집 시민 캠페인을 하고 눈에 잘 띄게 엘리베이터 길을 만들자고 외치고 결국 청록색 띠를 지하철 안에 붙이는 꿈을 이룬 나조차 서울역에서 여전히 헤맨다는 건 아이러니다.

장애인 권리 보장을 위해 필수적인 데이터셋과 정책 세 가지가 있다. 경사로가 어느 매장에 있는지 등을 알려주는 장애인 접근성은 보건복지부와 지자체, 교통과 이동관련 정보는 국토교통부와 지자체, 정보접근성에 대한 정책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관장한다. 공공데이터는 행정안전부가 관리하지만 국민에게 정작 필요한 정보는 ‘점’으로만 존재하고, 잘 모여있지도 못하며 결정적으로 ‘선’으로 연결되지 못한다. 그 끊어진 점과 선을 잇는 일은 결국 목마른 사람, 나 같은 엄마의 몫이 된다.

휠체어 탄 딸이 헤매지 말라고 지도를 만드는 과정에서 사실은 시민이 만드는 공익적 정보가 매우 많고, 대부분 관리가 안되어 버려진다는 걸 알게 됐다. 무의의 지하철교통약자환승지도만 해도 처음에는 개인의 비용을 들였고, 나중엔 기업 지원을 일부 받아 근근이 유지해 왔다. 지금은 자원봉사자들을 운영해 데이터 검증을 하고 있다. 운영에 대한 국가 지원은 0에 수렴한다. 반면 이 데이터의 공익적 가치는 매우 높다. 이에 ‘공익데이터’ 개념을 만들어 지원 방안을 마련하자고 수년간 주장해 왔다.

▲지난 2월 11일 국가인공지능위원회가 연 공익데이터 거버넌스 법제화 세미나에서 필자가 발표하는 모습.

AI 열풍 타고 법적 지위 얻어

작년에 드디어 기회가 왔다. 인공지능(AI) 열풍으로 AI 핵심 자원인 데이터에 대한 중요성이 부각됐다.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 사회분과에 합류해 매주 회의하며 문구를 만들었다.<사진> 공익데이터가 뭐냐고 묻는 공무원들에게 설명하고 설득했다. 3월 23일 최종 확정된 ‘대한민국 인공지능행동계획’엔 “공익데이터와 공익 AI의 법적 지위를 명확하게 하고 제도화하라”는 내용이 드디어 명시됐다.

나와 같이 ‘애엄마가 목말라서 우물을 판’ 경험이 개인의 고충으로 묻히지 않고, 공동체 데이터로 살아남길 바란다. 그동안에도 행안부의 ‘오픈데이터포럼’ 등 다양한 경로로 목마른 시민이 데이터 우물을 파도록 단기간 삽을 쥐어주는 단기 지원 사업들은 많았다. 이제는 우물이 마르지 않도록 물줄기를 대거나, 제대로 된 우물이 되게 전문가와 자원을 지원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렇게 시민과 국가가 함께 판 우물에서는, 머지않아 미래 AI의 핵심 자원인 공익데이터란 지하수가 흘러나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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