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결제주기 단축’, 자본시장 미래 여는 관문

기사 듣기
00:00 / 00:00

이화택 경제칼럼니스트

“주식을 오늘 팔았는데 대금은 왜 이틀 뒤에나 들어오나?” 최근 주식 투자자들 사이에서 가장 뜨거운 화두 중 하나다. 규제혁신위원회가 화두를 던지고, 대통령이 직접 추진을 독려한 ‘결제주기 단축’(T+1) 논의가 여의도 자본시장을 뒤흔들고 있다. 이는 자본시장의 효율성을 높이고 글로벌 표준에 부합하려는 국가적 과제이자, 금융 인프라를 선진화하는 신호탄이라 할 수 있다.

현재 국내 증시는 거래일(T) 이후 이틀 뒤에 실제 결제가 이루어지는 ‘T+2’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자산운용 효율 높아져 장점 많아

주식을 사고팔면 매도자는 증권을 건네야 하고, 매수자는 약정된 대금을 지급해야 한다. 증권사가 내부 물량을 정리하고, 거래소가 증권사 간 주고받을 증권과 대금을 청산한 뒤, 예탁결제원이 이를 동시에 결제하는 구조다. 이틀이라는 기간은 외국인 투자자의 시차와 환전·자금 이동 등을 감안한 ‘국제적 관행’이자, 오류를 수정할 수 있는 여유를 제공하는 안전장치로 기능해 왔다.

결제주기 단축(T+1)은 시장 변동성에 따른 잠재적 위험을 줄이고, 자본의 선순환을 촉진하겠다는 선언에 가깝다. 더 큰 명분은 글로벌 시장과의 동조다. 미국과 캐나다는 이미 T+1 결제를 도입했고, 유럽도 2027년 10월까지 T+1을 목표로 추진하고 있다. 결제 주기를 세계 흐름에 맞추는 것은 한국이 국제 금융 중심지로서의 매력을 높이고,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와 시장 경쟁력 강화를 위한 필수 전략이다.

T+1 전환의 효과는 상당히 구체적이다. 첫째, 거래 상대방의 채무 불이행 위험과 시장 위험이 줄어든다. 결제 대기 시간이 짧아질수록 급격한 주가 변동에 노출되는 기간도 줄어든다. 실제로 미국은 제도 시행 이후 증권청산기구(NSCC)의 청산기금이 약 23% 감소하는 효과를 봤고, 증권사의 증거금 부담이 줄어든 만큼 시장에 유동성도 공급됐다. 둘째, 자본 회수 속도가 빨라져 시장 전체의 자산 운용 효율성이 높아진다. 투자자는 회수한 자금을 즉시 재투자할 수 있고, 이는 중장기적으로 T+0·실시간 동시결제(RTGS)로 이어지는 인프라 현대화의 기반이 된다. 셋째, 국내 시스템이 글로벌 표준에 가까워지면, 해외 투자자에게도 더 투명하고 예측 가능한 시장으로 인식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모든 혁신에는 ‘동전의 뒷면’이 있다. 결제 주기 단축은 시장 참여자에게도 상당한 부담을 떠안긴다. 먼저 운영 복잡성이 증가한다. 거래·확인·매칭·결제까지 하루 안에 끝내려면 정보기술(IT) 인프라와 업무 프로세스를 전면 개편해야 하고, 이는 상당한 투자를 요구한다. 대형사는 버티겠지만, 자본력이 부족한 중소형 증권사에는 경영 부담이 될 수 있다. 둘째, 결제 실패 위험이 커질 수 있다. 시간이 촉박해지면 데이터 전달이나 지침 공유에서 작은 오차만 발생해도 결제 지연이나 사고로 이어질 수 있고, 비용과 신뢰 훼손으로 이어진다. 특히 국가 간 시차와 다른 인프라를 가진 해외 기관 투자자들과의 조율은 추가적 난관이 된다. 업계 관계자들이 “외국계 기관 설득과 시스템 동기화가 가장 큰 과제”라고 말하는 이유다.

시간·비용 들여 단계적 로드맵 설계를

이러한 과제들을 극복하려면 시장 참여자 간 정교한 협력이 필수다. 증권사와 중앙예탁결제기관은 시스템을 고도화하고, 소규모 기관이 충분히 숨을 고를 수 있는 테스트 기간과 단계적 전환 로드맵을 설계해야 한다. 인력 재배치와 시스템 개편 비용은 적지 않겠지만, 이는 시장의 미래를 위한 투자로 받아들여야 한다.

결제 주기 단축은 우리 자본시장이 선진 금융으로 도약하는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자 담대한 도전이다. 여러 난관이 예상되지만, 시장 효율성 제고, 결제 리스크 감소, 국제 경쟁력 강화라는 실익은 이 비용을 충분히 상쇄할 것이다. 이번 개혁이 대한민국의 인공지능(AI)·IT 인프라와 결합한다면, 머지않아 주식을 파는 즉시 현금이 지급되는 ‘실시간 동시결제’ 시대로 나아가는 역사적 이정표가 될 가능성이 크다. “주식을 오늘 팔고 오늘 현금을 받는 시장”은 단순한 편의가 아니라, 자본시장의 신뢰와 효율이 동시에 진화하는 최소 조건이 될 것이다.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추가취재 원해요0
주요뉴스
많이 본 뉴스
댓글
0 / 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