닻 올린 ‘석화 재편’ 액셀 더 밟아야 [노트북 너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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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아시아 최대 플라스틱 전시회 ‘차이나플라스’를 찾았다. 국내 기업들은 고기능성·친환경 소재를 전면에 내세운 반면 중국 기업들은 페트병과 세제 용기, 가전 외장재를 산처럼 쌓아 올렸다. 기술이 아니라 물량으로 시장을 장악하겠다는 분명한 메시지였다.

중국의 ‘화학 굴기’로부터 시작된 글로벌 공급 과잉은 산업 환경을 완전히 뒤바꿨다. 중국이 석유화학 자급률을 빠르게 끌어올린 결과로 한국은 최대 수요처를 잃었다. 중국 내수에서 소화하지 못한 물량은 싼값에 해외로 쏟아지며 범용 비중이 높았던 우리 기업들의 수익성을 끌어내렸다.

이미 구조조정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었다. 기업들은 자발적으로 범용 비중을 줄이고 고부가 제품 중심으로 전환하기 위한 사업 재편에 나섰다. 정부도 힘을 보탰다. 2024년 4월 정부와 산업계, 학계가 참여하는 협의체를 꾸렸고 그해 말 ‘석유화학 산업 경쟁력 제고 방안’을 내놨다.

그러나 비상계엄 사태와 탄핵 정국이라는 정치적 불확실성 속 정책 추진 동력은 느려졌다. 선언에서 실행으로 이어지기까지 지난한 시간이 흘렀다.

전환점은 새 정부 출범 이후였다. 지난해 8월 정부와 업계가 사업재편 자율협약을 체결하면서 기업들이 먼저 자구책을 마련하면 정부가 맞춤형 패키지를 지원한다는 큰 틀이 잡혔다. 지난달 HD현대오일뱅크와 HD현대케미칼, 롯데케미칼이 참여한 대산 1호 프로젝트가 정부 승인을 받았고, 최근 여수에서도 여천NCC, DL케미칼, 한화솔루션, 롯데케미칼이 1호 재편안을 제출했다.

구조조정은 설비를 줄이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기업 간 이해관계는 물론 지역 경제와 고용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이를 고려하면 현재 사업재편 속도는 이례적으로 빠르다는 평가가 나온다. 누적된 과잉 공급과 원가 상승 압박 속에서 산업의 체질 개선은 지금의 속도로는 부족하다. 구조개편이 늦어질수록 충격은 더 크게 돌아올 수 있다. 지금보다 한 박자 빠른 결단과 실행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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