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호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
두루 통하는 원칙이라야 존경받아
사법 논란거리 국정타당성 따져야

위르겐 하버마스(J. Habermas)가 얼마 전 타계했다. 그가 세계적으로 대(大)학자라 불린 건 좁은 맥락에서만 유효한 논리가 아니라 많은 사람에게 두루 다가갈 수 있는 보편성을 강조한 덕이다. 그는 공론장에서 보편성 지향의 담론과 숙의를 통해 공적 정당성을 기하는 길을 제시했다. 이런 관점은 시공을 초월해 호응을 얻는다.
1789년 프랑스 혁명이 대(大)혁명이라고 불린 것도 프랑스의 상황 논리에만 이끌리지 않고 자유, 평등, 박애, 인권, 국민주권을 보편적 관점에서 내세운 덕이다. 프랑스 대혁명의 보편적 원칙과 가치는 다른 많은 곳의 혁명이나 개혁을 촉발하는 선도 역할을 했고 자유주의가 인류 문명의 중심 패러다임으로 자리 잡을 수 있게 해주었다.
정치인이 대(大)라는 접두어를 얻으려면 최고위직을 차지하는 것만으론 부족하고 보편성을 추구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구체적 맥락에 적합한 주장을 하되 편협하거나 지엽적인 논리를 넘어 보편적 원칙과 가치를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시공을 가로질러 대정치가로 존경받을 수 있고 광범한 영향으로 역사에 발자취를 남길 수 있다.
물론 말이 쉽지, 보편성을 실제로 우선시하는 정치인은 드물다. 눈앞의 자기 이익에 급급하고 단기 시류에 휘둘리는 다수의 유권자가 그런 정치인을 배척하기 쉽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시시한 정치인에 머물지 않고 대정치가의 반열에 오르려면 당장의 어려움을 무릅쓰고 보편성을 존중해야 한다. 에이브러햄 링컨, 우드로 윌슨, 프랭클린 루스벨트, 존 케네디가 미국뿐 아니라 세계 각지에서 대정치가로 오래 칭송받고 있는 건 단지 강국의 최고지도자여서가 아니다. 단기의 위기와 비판에도 불구하고 국내 및 국제 무대에서 협소한 논리가 아닌 보편적 원칙과 가치를 고수한 결과다. 그들이 주창한 인권, 민족자결주의, 부의 분배와 사회복지, 자유 수호 정신은 보편성을 띠며 한동안의 시련을 넘어 결국 세계적인 파급 효과를 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이런 대정치가들과 정반대다. 미국이 무소불위의 국제적 지배력을 보유한 가운데 그는 강력한 통치를 시행하고 있으나 보편성은 철저히 무시, 심지어 혐오한다. 미국 제일주의 기치 아래 국제 규범은 안중에 없이 각종 독단적 대외정책으로 미국 국익만 절대시한다. 국내적으로도 미국의 예외적 우월성을 종교처럼 외치며 이민자 등 ‘비미국적(un-American)’ 요소를 억누르는 데 앞장서고 있다. 적어도 현대에 이렇게 노골적으로 보편성을 반대하고 편협성을 추켜세운 강대국 최고지도자는 유례가 없다.
트럼프의 자국중심적 편향성·협애성은 단기적으로 그가 원하는 성과를 내게 할 수도 있다. 미국이 워낙 압도적인 초강대국인 데다, 편협성에 빠져 트럼프를 지지하는 미국 유권자가 상당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대통령은 장기적으론 역사의 뒤안길로 잊히거나 한때 반짝하다 주저앉은 한갓 에피소드로 남을 것이다. 보편적 영향을 널리 끼치지 못하는 국정 기조를 내세우는 정치인이 겪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미국의 현실 이익에만 집착하며 보편의 세계를 내치는 대통령이 시대환경이 바뀐 후에도 대정치가로 기억되겠는가. 역사의 씁쓸한 오점쯤으로 여겨질 것이다.
한국 정치의 강자, 이재명 대통령도 보편성을 잊고 정파적·개인적 편협성에 휘둘린다면 비슷한 운명을 맞을 것이다. 지금 대중 인기가 높고 국회 지지를 받아도 보편성에 입각한 영향을 남기지 못하면 결국엔 역사의 진부한 에피소드로 묻힐 수밖에 없다. 이런 운명을 피하려면 각종 국정 사안에 대한 보편성·편협성 점검이 필요하다. 한 예로, 대통령 본인이 관련된 기존 사법 사건들에 대해 ‘공소 취소’를 하려는 게 국정 보편성에 부합하는지 냉철히 따져보고 반성해 봐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