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현논단_김영용 칼럼] 反지성적 정책에 퇴행하는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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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대 명예교수·경제학/前 한국경제연구원장

최고가격제 의도 선해도 시장왜곡
팬데믹 때 풀린 돈에 경제는 ‘골병’
저축 막는 높은 세금 궁핍화의 길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인류의 역사 이래 영원한 화두이다. 변하지 않는 철학의 주제이기도 하다. 그런데 X가 X를 다 설명하지 못하듯이 인간은 인간을 다 설명하지 못한다. 한마디로 인간 이성은 구조적으로 무지하다.

인간은 경험과 학습을 통해 현재의 욕구와 미래의 가치를 저울질하는 능력인 지성의 지평을 넓혀 무지의 영역을 조금씩 줄이고 문명을 발전시켜 왔다. 대한민국도 그러했다. 그런데 오늘날 지성의 진전은커녕 반지성적 행태가 난무하는 분야가 바로 정치다. 몇 가지를 짚어 보자.

미국과 이란 전쟁으로 기름(휘발유·경유·등유 등) 값이 가파르게 오를 기미를 보이자, 정부는 정유사가 주유소에 공급하는 기름에 최고가격제를 시행했다. 이는 물론 선한 의도지만, 사람들이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안내하는 가격의 신호 기능을 마비시켜 기름을 아껴 쓰려는 유인을 없애거나 줄이게 된다. 또 소비자 가격은 정유사 공급 가격 규제와는 상관없이 주유소 판매 기름에 대한 수요와 공급에 따라 결정되므로 최고가격제로 소비자 가격이 낮아진다는 보장이 없다. 공급에 비상이 걸린 지금에는 소비자 가격이 크게 오르는 것이 정상이다. 기름을 낮은 가격에 공급받은 주유소의 이윤도 늘어난다. 그렇다고 해서 가격을 올리는 것은 몰염치하고 그런 주유소는 신고하라고 겁박하는 행위는 폭력적이다. 결국 최고가격제는 에너지의 생산과 소비 및 산업 구조 조정 등을 고려하지 못한 반지성적 정책이다. 소비자 가격을 낮추려면 정부가 가져가는 세금을 줄이거나 없애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이자는 사람들이 현재의 자원을 동일한 미래의 자원에 대해 할증하는 (시간선호) 현상으로 그 비율이 이자율이다. 즉 이자율은 실물적 현상으로 현재와 미래 사이의 시간에 대한 비용이며 화폐와는 상관이 없다. 그리고 금리(金利)는 화폐에 대한 수요와 공급에 따라 결정되는 화폐적 현상이다. 따라서 금리를 조정하여 실물에 영향을 미치고자 하는, 이른바 통화신용정책은 화폐로 실물을 조정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화폐가 교환의 매개 수단을 벗어나는 순간, 화폐는 유용한 도구가 아니라 재앙이 될 수 있다. 대공황과 각종 금융위기가 그렇다. 2007~2008년의 미국의 금융위기는 장기간의 저금리 정책으로 시간선호에 따른 이자율을 조작하여 자가(自家) 소유 비율을 높이려고 했지만, 인플레이션을 우려하여 금리를 빠르게 올리자, 거품이 터지면서 발생한 것이다. 이후 V자형 회복이 가능했지만, 양적 완화 정책으로 다시 돈을 풀어 세계 경제를 늪에 빠뜨렸다. 일본은 1991년에 거품이 터진 후에도 계속 돈을 풀어 30년 넘게 수렁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이에 더하여 지금 세계는 코로나19를 계기로 풀린 돈으로 골병이 들었지만, 파국이 두려워 금리를 올리지 못하고 L자형 침체로 끌고 가면서 더욱 골병들게 하고 있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반지성적 행위의 결정판이다.

정부는 한창 주의를 끌던 상속·증여세 논의는 없던 것으로 하고 주택 보유세도 많이 올릴 모양이다. 대부분 사람에게는 저축으로 재산을 늘려 다음 세대에 물려주려는 유인이 있다. 그러나 재산에 높은 세금을 부과하면 사람들은 그런 유인을 박탈당해 저축을 줄이고 써버린다. 경제 성장의 원동력인 자본은 저축을 투자하여 축적되는데, 저축이 줄면 자본이 축적되지 않아 경제 성장이 멈추고 사람들의 삶은 궁핍해진다. 그래서 세금으로 부(富)를 조롱하는 것은 문명을 파괴하는 반지성적 행위다.

최근 개정된 상법의 자사주 소각 의무화는 황금주나 포이즌 필(poison pill) 등의 장치가 없는 한국 상황에서 경영권 유지 방책을 박탈한 것이다. 주당 가격은 올라가지만, 몇 개 기업을 제외하면 회사의 가치 증가에 따른 것이 아니라 풀린 돈이 자산 시장으로 몰린 탓이다. 이달 10일 시행된 이른바 노란봉투법은 벌써 기업 현장을 분규의 장으로 만들고 있다. 이런 조치들 역시 미래의 삶은 안중에 없고 당장의 이익만을 좇는 반지성적 행태다.

인간은 무지하지만, 끊임없는 경험과 학습, 성공과 실패를 통해 무지의 영역을 줄이고 문명사회를 이룩했다. 대한민국은 그런 본보기로서 아무런 손색이 없는 나라다. 그런데 그런 대한민국이 경험에서 배우지 못하고 학습하지 않는 정치권의 반지성적 행태로 길을 잃고 있다.

유권자들이 인간 세상의 운행 이치를 잘 이해하기는 몹시 어렵다. 그러나 정치권의 행태에 대해 의심할 수 있는 최소한의 지적 능력은 갖춰야 내리막길을 질주하려는 대한민국을 멈춰 세울 수 있다. 그 정도의 지성은 갖춰야 깨어있는 민주 시민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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