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작가 대중문화평론가

윤상은 늘 익숙한 세계의 낯선 존재였다. 사춘기 시절, 음악을 하고자 하는 소년들이 모두 레드 제플린과 딥 퍼플을 지향할 때 그는 듀란듀란을 첫 카피곡으로 골랐다. 기타를 잡은 소년들이 화려한 솔로를 치려는 욕망에 사로 잡혀 있을 때 그는 베킹을 연습하며 정확한 사운드를 내는 데 집중했다. 한 푼 두 푼 모은 돈으로 좋은 기타와 이펙터를 사려는 청년들 사이에서 그가 매혹된 악기는 갓 수입되고 있던, 고가의 신시사이저들이었다.
미디와 프로그래밍이 막 도입되던 시절이었다. 아날로그와 리얼 연주가 세상을 지배하던 시절이었다는 말이기도 하다. 온갖 관행과 불문율이 팽배했다. 발라드곡에서 드럼만큼은 사람이 연주하는 드럼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도 그중 하나였다. 아직 신출내기였던 윤상은 그럼에도 과감하게 전자 드럼을 썼다. 1988년 작품인 ‘이별의 그늘’이 지금 들어도 촌스럽지 않은 이유 중 하나다.
같은 해 발매된 신승훈의 ‘미소 속에 비친 그대’, 015B의 ‘텅 빈 거리에서’ 같은 노래들이 전형적인 90년대 감성을 담고 있지만, 이 노래는 그런 시대성이 옅기 때문이다. 시대를 타지 않는, 감정의 원형이 건조하게 서 있다. 1990년을 대표하는 히트곡 중 하나지만 2020년대에 들어도 추억이 아닌 현재에 자리잡는다. 몇 마디 음과 몇 층의 사운드만으로도 “윤상이네” 한마디만 나온다. 30년간 윤상의 음악에 쌓여지고 입혀진 음표와 리듬, 음향의 공집합과 여집합의 초석으로 ‘이별의 그늘’은 여전히 다가온다.
1990년대의 음악 지망생들에겐 스승이 있었다. 김현철과 윤상은 세련된 음악을 하고 싶은 청년들의 스승이었다. 트렌드 안에 있으되 가고자 하는 방향은 달랐던 이들이다. 댄스 뮤직이 가요계를 장악한 1996년 신해철과 함께 결성한 ‘노 댄스’는 신시사이저가 댄스를 위한 것만은 아님을 알려줬다. 자신의 기존곡들을 프랑스와 이탈리아, 남미의 보컬리스트들에게 해석을 맡긴 ‘Renacimiento’도 충격이었다. 인터넷과 이메일이 없던 때, 인맥의 다리와 국제전화로 모든 걸 연결하고 이뤄야하는 고난을 무릅썼다. 아날로그 시대의 끝자락에서 디지털 시대의 커뮤니케이션을 예언했다. 관행에 익숙해지지 않았으되 실험에 매몰되지도 않았다. 익숙함 속의 낯섬이었다. 케이팝 시대, 그의 이름을 재소환했던 러블리즈의 ‘아츄!’를 지금 들어보라. 80년대, 90년대 음악과 마찬가지로, 장르만 달라졌을 뿐 윤상은 윤상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윤상의 세계에선 동서고금의 음악이 재봉선 없는 옷처럼 자연스럽게 엮인다. 자칫 소음이 될 수 있는 소리의 조각들이 아름다움의 범주에 이식된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기술로 표현하는 일본 독립영화다. 스케일이 투입되지만 디테일로 듣는 이에게 남는다. 싸락눈 쌓인 사막이자 안개끼는 태양이다. 도파민이 흘러야할 순간에도, 윤상의 강줄기에서는 세로토닌이 흐른다. 늘 우리의 딱 반 발짝 앞에 있는 윤상의 음악을, 올봄에도 듣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