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이 자국 산업 보호를 명분으로 무역법 301조 조사 카드를 꺼내 들면서 한국을 포함한 주요 교역국들의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11일(현지시간) 특정 제조업 분야의 구조적 과잉 생산 문제와 관련해 16개 경제권을 대상으로 무역법 301조 조사를 개시한다고 공고했다.
조사 대상에는 한국을 비롯해 중국, 일본, 대만, 유럽연합(EU), 멕시코, 베트남,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인도, 캄보디아, 방글라데시, 싱가포르, 스위스, 노르웨이 등 총 16개국이 포함됐다.
무역법 301조는 미국이 상대국의 무역 관행이 자국 산업에 피해를 준다고 판단할 경우 조사를 거쳐 관세 부과나 수입 제한 등 대응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한 미국의 대표적인 통상 압박 수단이다. 1974년 제정된 미국 통상법 조항으로,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불공정 무역 관행을 조사해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다양한 통상 대응에 나설 수 있다.
조사 결과에 따라 미국은 추가 관세, 수입 제한, 협상 요구 등 다양한 대응 조치를 검토할 수 있다. 다만 조사 개시 자체가 곧바로 보복 조치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며 의견 수렴과 공청회 등 절차를 거쳐 최종 판단이 이뤄진다.
301조 체계는 통상적으로 세 가지 형태로 구분된다. 일반 301조는 특정 정책이나 품목을 대상으로 조사하는 기본 조항이다. 스페셜 301조는 특허·저작권 등 지식재산권 보호 문제를 점검하기 위해 USTR이 매년 발표하는 보고서 체계다. 슈퍼 301조는 1988년 도입된 한시적 제도로 특정 국가를 불공정 무역국으로 지정해 강한 압박을 가하는 방식이었으며 현재는 상시 제도로 운영되지는 않는다.
이번 조사 대상에는 중국과 동남아 국가들뿐 아니라 한국·일본·유럽연합(EU) 등 주요 동맹국도 포함됐다. 미국 정부는 이번 조사의 배경으로 글로벌 제조업 분야에서 제기되는 구조적 과잉 생산능력 문제를 제시했다. 일각에서는 미국이 제조업 투자 확대와 공급망 재편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통상 조사를 병행하고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한국 경제에 무역법 301조는 낯선 제도가 아니다. 1980년대 후반 미국은 쇠고기·담배·보험 등 시장 개방 문제를 둘러싸고 한국에 301조 압박을 가했다.
특히 1988년 도입된 ‘슈퍼 301조’는 불공정 무역국을 지정해 강한 압박을 가하는 조항으로, 당시 한국도 미국의 통상 압력 대상에 포함됐다. 1997년에는 한국 자동차 시장 구조와 세제 문제 등을 둘러싸고 미국이 슈퍼 301조를 발동하며 양국 간 통상 갈등이 격화되기도 했다.
미국은 지식재산권 보호 수준을 평가하는 ‘스페셜 301조 보고서’를 통해 한국을 오랫동안 우선감시대상국 또는 감시대상국에 포함시킨 바 있다. 한국은 1989년 이후 약 20년 동안 목록에 올라 있다가 2009년 처음으로 명단에서 제외됐다.
한편, 여한구 산업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은 12일 백브리핑에서 이번 301조 조사가 한국을 겨냥한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그는 “여러 국가를 대상으로 한 구조적인 조사”라며 “특정 국가를 타깃으로 한 조사는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301조는 강력한 법적 수단인 만큼 추가 조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며 “미국과 긴밀히 협의해 국익을 극대화하겠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