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현광장_함인희의 우문현답] 요리가 일깨워주는 다문화의 지혜

기사 듣기
00:00 / 00:00

이화여대 사회학과 명예교수

개방성과 균형 녹아든 ‘퓨전’ 음식
만든이의 스토리·정서에 주목하듯
이주민 공감할 진솔함 묻어났으면

넷플릭스 ‘흑백요리사’ 시즌 1 당시 어눌한 한국말 솜씨와 함께 남다른 품격을 보여준 셰프 에드워드 리. 한국 이름 이균의 두 번째 작품 ‘버터밀크와 그래피티’(2025년 한국어 번역본이 나왔다)를 읽으며 뜻밖의 감동에 빠져들었다. 책 곳곳에 요리를 향한 그의 진심이 감명 깊게 녹아있던 덕분이다.

뉴욕에서 식당 주방 보조를 하며 고군분투하던 젊은 시절, 그에겐 동거 파트너가 있었단다. 그녀로부터 일본 요리 고유의 미묘함과 섬세함을 배웠다고 했다. 어느 날 그녀가 “당신과 결혼하고 싶다”고 했을 때, 에드워드 리는 “예스”라고 답하는 대신 자신이 오매불망 꿈꾸던 레스토랑을 개업했다고 한다. 그동안 모아둔 돈에 은행대출까지 받고는, 한국 음식점 아니면 동양식 레스토랑을 열 것이란 주위의 기대를 보란 듯이 뒤집으면서 말이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를 떠나보냈단다.

사랑했건만 정작 그녀와 결혼할 수 없었던 이유는, 그녀가 일본에서도 대단한 갑부의 딸이란 사실을 알아챘기 때문이라 했다. 가난한 이민자의 아들로서는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운 조건 앞에서 그녀를 포기하는 것 이외엔 달리 선택지가 없었다는 고백이었다. 여기까진 가슴 아픈 실연의 상처 이야기인가 싶었는데, 곧바로 에드워드 리가 길어 올린 요리의 지혜가 슬그머니 모습을 드러낸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 문화와 문화 사이의 이질감, 계층과 계층 사이의 간극은 현실에선 도무지 좁힐 수가 없지만, 요리는 분명 다른 무언가가 있다는 게다. 동양과 서양의 정통 방식을 섞을 수도 있고, 극과 극의 맛을 버무릴 수도 있으며, 낯선 재료들 사이의 궁합을 맞춰볼 수도 있음에, 요리의 무궁무진한 매력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퓨전(fusion)이란 말을 처음 만들어 순식간에 크나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주인공 또한 셰프였다. 네델란드, 프랑스, 독일의 피가 조금씩 섞여 있다는 그의 이름은 노르만 아켄(Norman Van Aken). 지금은 원래의 의미가 퇴색되고 변색된 채, ‘정통성을 상실한’ ‘이도 저도 아닌’ 요리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어 유감이지만, 퓨전 본래의 의미 속엔 다양한 요리를 향한 “개방성”, 더불어 유럽의 공식 요리와 이민자 집안의 홈 쿠킹 사이의 “균형”이 강조되었다는 게다. 퓨전 요리 속에 그토록 심오한 뜻이 있을 줄이야.

‘버터밀크와 그래피티’ 속엔 이민과 이주의 물결이 세계 각지의 음식과 함께 온다는 실례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미국 내 무슬림 인구가 가장 많이 모여 사는 곳, 덕분에 무슬림 요리의 진수를 맛볼 수 있는 곳은 미시간 주의 디어본(Dearbon) 시라고 한다. 1903년 헨리 포드가 대량생산 대량소비 시대를 열면서 자동차 공장에 컨베이어 벨트 시스템을 도입했던 바로 그곳이다. 그 벨트 앞에 서서 하루 종일 볼트 너트만 조이던 저임금 노동자들이 중동 지역에서 대거 밀려들어왔던 역사가 무슬림 음식 속에 고스란히 남아있는 셈이다.

에드워드 리는 요리 비평가들을 향해 접시 위에 놓인 요리의 맛에만 집중하지 말고, 요리하는 사람의 스토리에 주목해 주길 권유한다. 한 접시의 요리 속에는 요리를 만든 이의 구불구불했던 인생길이 담겨있노라고, 그래서 요리 속엔 고유의 맛과 함께 특유의 정서(emotion)가 녹아있는 것이라면서.

그러고 보니 오래전 지하철 1호선 동대문역 근처에 유명한 인도 음식점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찾아간 적이 있다. 난생처음 맛보는 톡 쏘는 향의 카레에 난(걸레빵)을 찍어 먹으며 마치 해외여행지에 온 듯한 기분을 만끽했던 기억이 있다. 음식점 주인은 네팔에서 왔다고 했다. 이미 다문화 사회로 성큼 들어선 우리도 무늬만 단합이나 통합을 외치기보다 요리가 일깨워주는 지혜에 진솔한 관심을 기울여보면 어떨까?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추가취재 원해요0
주요뉴스
많이 본 뉴스
댓글
0 / 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