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창] 쇄빙선 같이 찾아온 3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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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주 시인

이른 봄의 찬 대기 속에서 매화나 동백꽃은 꽃망울을 터뜨린다. 3월은 이른 봄의 첫머리인데, 어딘지 추운데 따뜻하고, 따뜻한데 몸이 으슬으슬 춥다. 3월은 봄의 희망과 겨울의 어두움이 교차하는 계절이다. 어쩐지 3월은 시리고 배고픈 청춘의 이미지와 자꾸 겹쳐진다. 나는 얼음을 깨고 나아가는 쇄빙선 같이 치욕보다 더 싱싱한 슬픔이 내게로 온다고 썼다. ‘3월’이란 시의 첫 구절이다.

돈은 한 푼도 없고 취직은 어려웠다. 젊은 날을 의기소침한 채 버티는 일에 염증이 솟곤 했다. 나는 소설책이나 시집을 끼고 어슬렁거리며 집안의 구박덩이 노릇을 하던 한심한 영혼이었다. 나는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을 만큼 어두운 스무 살이었다. 스물은 파릇한 청춘인데, 나는 그 아름다움을 모른 채 바다 속 게처럼 어기적거렸다. 그 시절에도 도타워진 봄볕 속에서 꽃을 피운 살구나무는 멀리서 보면 분홍빛 왕관을 쓰고 서 있는 것 같았다. 내 안에 지옥이 있었으나 꽃이 지천으로 피어도 아름다움을 아름다움으로 누리지 못했다.

차라리 여름이 더 좋았다. 폭염 아래 양산을 받은 채 지나가는 젊은 여자들의 맨 소매 아래 드러난 팔은 눈부셨고, 까르륵대는 웃음소리는 내 귀에 종소리처럼 맑게 울렸다.

여름은 하얀 화염을 펄럭이며 돌아왔다. 젊은 시절엔 왜 여름이 좋았을까? 여름, 하고 말하면 여름은 돌연 찬란한 계절로 변신했는데, 그때에도 나는 불행의 바다를 탐색하는 심해잠수부 같았다. 언젠가 빽빽한 나무들의 무성한 잎과 가지 사이를 뚫고 들어오는 숲속의 한 줄기 빛에 감동을 받았다. 언젠가 개양귀비꽃이 만발한 들판을 바라보며 돌연 통곡을 하던 그 찰나 나는 기어코 시인이 될 거라고 확신했다.

폭염을 견딘 해바라기는 꽃판에 검은 씨앗이 빽빽한 채로 서 있다. 산기슭엔 구절초가 작은 키로 꽃을 피운 채 산들바람에 흔들렸다. 분홍꽃을 피우던 살구나무 밑동엔 어느덧 낙엽이 수북했다. 활엽수의 조락은 겨울의 전조다. 산간에서 초빙 소식이 오고, 첫눈도 내리리라. 겨울은 살구나무에게도 시련의 계절이다. 한파가 밀려온 겨울의 어느 날, 간밤의 폭설을 고스란히 뒤집어쓴 채 서 있는 살구나무는 흰눈 속에서 온몸에 하얀 붕대를 두른 듯하다.

봄이 여러 차례 지나갔건만 나는 바지통이 너르고 헐렁이는 옷을 입은 채 방황했다. 암중모색의 시절은 너무 길었다. 내일의 나를 도무지 그려볼 수 없어 속이 답답했다. 나는 훌륭한 사람을 찾아가서, 산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라고 간절하게 묻고 싶었다. 그 시절이 끝나면서 문단에 나와 반세기 동안 출판사에서 일 하거나 글을 써서 밥벌이를 했다. 세월 참 무상하구나, 하고 무심코 중얼거린다.

살구나무에게 명예로운 분홍빛 왕관의 시절이 지나갔듯 내 청춘의 때도 덧없이 흩어졌다. 나는 생의 사계절 속에서 실패도 성공도 겪으며 살아남았다. 이제 삶을 관조하는 나이에 이르렀다. 릴케는 “나는 나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라고, ‘기도시집’에서 썼는데, 나도 나의 생을 열심히 살아냈다고 믿는다. 돌아보면 스무 살의 나와 지금의 나는 크게 다르지 않다.

그토록 징그러웠던 스무 살의 방황과 절망과 자유가 지금의 나를 빚은 뿌리-어머니였다. 3월의 대기에서 미나리향내가 날 때 한 줌의 불씨 같던 희망을 떠올린다. 나는 그 불씨에 기대어 인생의 시림을 이겨낸 것이다. 지금 나는 잘 살고 있는가? 내 뿌리-어머니인 내 스무 살에게 자꾸 묻고 싶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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