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찬의 사람 중심 기업가 정신] 자본의 세 가지 얼굴: 일하는 돈, 꿈꾸는 돈, 그리고 흉기가 되는 돈

고려아연 사태를 통해 본 이해관계자 자본주의의 미래

▲김기찬 프레지던트대학교 국제총장, 세계중소기업학회 의장, 한국이해관계자경영학회 차기 회장 (출처=본인 제공)
최근 고려아연을 둘러싼 경영권 분쟁은 한국 자본시장이 직면한 가장 근본적인 질문을 우리에게 던지고 있다. 자본은 단순히 수익률이라는 숫자를 쫓는 무색무취한 도구인가, 아니면 기업가의 꿈과 철학을 담아 미래를 설계하고 실현하는 생명력 있는 에너지인가에 대한 답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자본주의에서 자본이 기업 생태계 안에서 진화하는 과정을 세 단계로 나누어 보면, 이번 사태가 우리 시대의 기업 경영과 자본시장, 그리고 우리 사회에 던지는 교훈이 보다 선명해진다.

첫 번째 단계는 ‘돈이 일하게 하는’ 효율과 수익의 영역이다.

이것이 사모펀드의 등장을 가능하게 했다. 자본주의 역사에서 사모펀드(PEF)의 등장은 ‘잠자는 시중 자본을 깨우는’ 촉매제 역할을 해왔다. MBK파트너스로 대표되는 거대 사모펀드가 그 사례다. 사모펀드의 자금은 단순히 금고에 보관되는 대상이 아니라, 돈이 기업으로 흘러가게 하는 통로가 되었다. 동시에 이 자금은 기업의 비효율을 찾아내고, 지배구조의 빈틈을 파고들어 숨겨진 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해 움직이는 도구로 기능했다.

이번 고려아연 사태에서도 이들은 지배구조의 불확실성을 명분으로 자본의 역동성을 이끌어내고, 시장의 효율성을 자극하고자 했다. 자본이 일하기 시작하면 정체되어 있던 기업 가치는 요동치고 시장은 즉각적으로 반응한다.

그러나 우리가 경계해야 할 지점은 자본의 목적지가 오직 ‘단기적 효율’ 그 자체에만 머물 때 기업의 본질적 존재 가치가 희석될 위험에 처한다는 사실이다.

기업의 목적은 주주의 이익 극대화에만 있지 않다. 이해관계자의 장기적 이익을 도모하는 것이라는 이해관계자 중심 자본주의는 이미 2019년 미국 비즈니스라운드테이블(BRT) 선언을 통해 천명되었다. 사모펀드 역시 이 선언의 시대적 의미를 잊어서는 안 된다.

기업의 목적은 사람과 지구에서 발생하는 문제에 대해 수익성 있는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다. 해결되지 않은 문제에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 그것이 기업의 존재 이유다. 이는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사이드 경영대학원 석좌교수 콜린 메이어(Colin Mayer)의 관점이기도 하다. 그는 기업 본연의 의무는 소비자, 협력업체, 지역사회와 함께 사람과 지구에서 발생하는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이해관계자 자본주의에 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기업의 목적은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이제 기업은 장기적으로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선한 영향력을 창출하는 조직이 되어야 한다. 미국식 BRT의 정의조차도, 급변하는 시대 속에서 기업에게 “우리의 사업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는 곧 업의 본질과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재정의를 요구하는 시대적 소명이다.

두 번째 단계는 ‘돈이 꿈꾸게 하는’ 가치와 비전의 영역이다.

돈이 수익과 효율의 단계를 넘어 자본에 명확한 지향점과 꿈을 심는 과정이야말로, 자본주의가 지구와 사람의 문제를 해결하며 건강하게 성장하도록 이끄는 기업가가 지향해야 할 길이다. 기업가정신이란 세상의 꿈과 가능성을 현실로 만들어가는 정신이기 때문이다.

투영된 자본은 차가운 숫자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그것은 따뜻한 비전과 꿈을 품고, 그것을 지키는 힘이어야 한다.

고려아연이 추진해온 ‘트로이카 드라이브’—신재생에너지, 이차전지 소재, 자원 순환 경제—는 단순한 사업 확장이 아니다. 이는 자본이 인격을 갖추고 다음 세대를 위해 어떤 유산을 남길 것인가에 대한 깊은 고뇌의 결과물이다.

세계 1위의 기술력은 단기적 이익을 좇는 자본이 만들어낸 결과가 아니다. 미래를 꿈꾸며 인내해온 ‘꿈꾸는 자본’이 오랜 시간 축적되어 빚어낸 산물이다. 자본이 이처럼 원대한 꿈을 품을 때, 주주뿐 아니라 노동조합, 협력사, 그리고 지역사회는 하나의 공동체로 공명하게 된다. 그리고 그 공명 속에서 지속 가능한 성장의 길이 열린다.

이때 직원들은 기업의 목적을 단순한 직무가 아닌 소명처럼 받아들이게 된다. 그 순간 기업은 더욱 건강하게 성장하고, 세상은 조금 더 아름다워질 수 있는 것이다.

세 번째 단계는 ‘꿈이 없는 돈은 흉기가 된다’는 엄중한 경고의 영역이다.

목적지 없이, 인간에 대한 존중 없이, 꿈과 비전이 거세된 거대한 자본은 결국 탐욕에 매몰되어 주변을 파괴하는 흉기로 돌변하기 마련이다. 그 순간 자본은 기업의 장기적 생존보다 단기적 이익 추출과 주주의 단기적 혜택에만 몰두하게 된다.

더욱이 한국의 사모펀드는 이미 로펌 시장과 회계법인 시장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주요 세력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사모펀드를 핵심 고객으로 둔 대형 로펌과 회계법인들은 연약한 중소•중견기업의 호소에는 사실상 귀를 기울이지 않는 구조가 고착화되어 왔다. 법이라는 이름으로 작동하는 대한민국의 기울어진 운동장 위에서, 중소•중견기업은 자본력과 네트워크를 앞세운 사모펀드에 대응하기 거의 불가능한 상황에 이르렀다.

막대한 로펌 시장을 형성하고 있는 사모펀드가 정작 자신의 핵심 고객인 사모펀드와 맞서야 하는 개별 기업에게는 공정한 고객 기회조차 제공하지 않는 구조가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이때 우리는 꿈을 잃은 돈이 기업 생태계와 사회 전반에 어떠한 파괴적 징후를 남기는지 목격하게 된다.

고려아연이 과도한 배당을 통해 단기적 주주이익에 매몰되는 순간, 기업의 미래 투자 재원은 급속히 고갈될 수밖에 없다. 기업이 핵심 자산을 분할 매각해 단기 이익을 확보하려 할 때, 숙련된 인적 자산은 단지 비용 절감의 대상으로 전락한다. 고용의 근간은 흔들리고, 오랜 기간 축적된 인적 자산은 해체의 위기에 처한다.

국가 기간산업의 핵심 기술이 자본의 단기 논리에 휘말려 해외로 유출될 위기에 놓이는 순간, 자본은 개별 기업을 넘어 국가 경제 전체를 위협하는 날카로운 흉기가 된다. 우리는 이미 홈플러스 사례를 통해 꿈을 잃은 돈이 사회에 어떤 방식으로 흉기로 작동하는지를 목격하고 있지 않은가.

기업 경영에서 장기적 비전을 상실하고 단기적 수익만을 추구한 홈플러스는 점차 비극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MBK 인수 이후, 홈플러스는 투자를 통한 기업 경쟁력 강화보다는 자산 매각을 통한 현금 확보에 집중했다. 경쟁사인 롯데마트와 이마트가 물류 시스템, 디지털 인프라, 신규 점포 확장 등에 적극적으로 투자하는 동안, 홈플러스는 설비와 부동산을 매각하며 단기 수익 창출에 몰두했다. 그 결과 기업의 장기적 경쟁력은 약화되었고, 시장에서의 입지는 점차 좁아졌다.

꿈을 잃은 자본은 결국 기업의 미래를 잠식하고, 공동체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방향으로 작동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다시금 직시해야 한다.

돈을 꿈꾸게 하라. 스튜어드십, 자본에 ‘의(義)’를 입히는 고삐가 되라

꿈을 잃은 사모펀드의 돈은 이미 이해관계자들의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했고, 사회에 위협이 되고 있다.

이러한 자본의 흉기화를 막고 기업을 올바른 궤도로 인도하는 최후의 안전장치가 바로 스튜어드십의 강화다. 여기서 우리는 스튜어드십이라는 단어의 어원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스튜어드(Steward)는 고대 영어 ‘스티워드(Stiward)’에서 유래했는데, 이는 집이나 가축의 우리를 뜻하는 ‘스티(Sti)’와 관리인을 뜻하는 ‘워드(Ward)’가 결합된 말이다.

즉, 스튜어드십의 본질은 단순히 재산을 불리는 기술이 아니라, 주인의 꿈과 정신을 위탁받은 소중한 울타리와 그 안의 생명들을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지키고 관리하는 ‘보호자의 책임’에 있다. 오늘날 자본시장에서 요구되는 스튜어드십 역시 이 어원적 본질과 궤를 같이해야 한다.

기업은 단순히 주주 이익을 극대화하는 기계가 아니다. 고객, 직원, 협력업체, 지역사회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지속적인 신뢰 속에서 성장해야 하는 존재다.

국민연금과 같은 기관투자자에게 요구되는 역할은 단순히 의결권을 행사하는 수준을 넘어야 한다.

첫째, 자본의 인격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 돈이 꿈을 지키게 해야 한다. “이 돈이 어디로 흘러가며, 위탁받은 생태계를 어떻게 지키고 있는가”를 끊임없이 질문해야 한다.

둘째, 기업과의 적극적인 대화를 통해 지배구조의 투명성을 높이고, 단기적 수익이라는 달콤한 유혹 앞에서 기업의 본질적 경쟁력이 훼손되지 않도록 보호자의 방패 역할을 해야 한다.

셋째, 시간의 지평을 확장해야 한다. 사모펀드의 시계가 3~5년의 ‘수익 회수’에 맞춰져 있다면, 스튜어드십을 갖춘 자본은 10년, 30년 뒤의 기업 생태계라는 ‘울타리’를 바라보는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

결국 스튜어드십의 강화는 자본주의 시장 안에서 ‘인간과 지구의 문제 해결’, ‘인간 존중’, ‘사회적 책임’의 균형을 찾는 과정이며, 자본에 윤리적 나침반을 부여하는 작업이다. 돈이 제멋대로 날뛰는 흉기가 되지 않도록 ‘공공의 선’이라는 고삐를 단단히 죄는 것, 그것이 바로 이해관계자 자본주의가 지향해야 할 종착역이다.

“꿈 없는 돈은 소유자를 파멸시키지만, 꿈 있는 돈은 세상을 풍요롭게 합니다.”

과거 밀턴 프리드먼의 ‘주주 이익 극대화’ 이론은 오랫동안 세계 기업 경영의 원칙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2019년, 미국 BRT에 참여한 181개 글로벌 기업 CEO들은 새로운 선언을 발표했다. 기업의 목적이 단순히 주주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이해관계자의 가치를 창출해야 한다는 선언이었다.

이해관계자 자본주의(Stakeholder Capitalism)는 기업이 단기적 수익만을 추구하는 존재가 아니라, 지속 가능한 성장을 도모하며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철학에 기반한다. 이는 단순한 이론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기업의 생존과 성과를 결정짓는 핵심 원칙이다.

이제 한국 경제도 변화해야 한다. 사모펀드와 헤지펀드가 단기 수익 창출을 위해 기업을 이용하는 시대에서 벗어나, 장기적 성장과 지속 가능성을 고려하는 경영 철학을 확립해야 한다. 로펌과 회계법인 역시 주주 중심 자본주의의 한계를 직시하고, 이해관계자 중심의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을 구축해야 할 책임이 있다.

다가오는 3월 주주총회는 단순히 한 기업의 경영권 향방을 결정하는 자리가 아니다. 우리 자본시장이 사모펀드의 차가운 메스로 비효율을 도려내되, 그 빈자리를 스튜어드십이라는 보호자 정신과 꿈을 가진 돈으로 채울 수 있는지를 가늠하는 시험대다. 세상의 문제 해결을 돕고, 고객과 협력업체, 사회가 존중받을 때 비로소 장기적 주주 이익도 증대될 수 있다.

그리고 고려아연은 꿈꾸는 돈이 지켜지고, 미래를 향한 따뜻한 비전으로 채워질 수 있는지를 증명하는 역사적 시험대가 될 것이다. 이번 사태가 한국형 이해관계자 경영의 새로운 표준을 세우는 이정표가 되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

김기찬 교수는 현재 인도네시아 프레지던트대학교의 국제총장이자, aSSIST 석좌교수, 가톨릭대학교 경영학부 명예교수이며, 세계중소기업학회(ICSB) 회장으로 활동 중인 대한민국 대표 경영학자다. 기업가정신과 ESG(환경·사회·지배구조)를 통합한 사람중심 경영 철학의 선구자이자, K-Entrepreneurship의 세계화를 이끄는 학계·실무계의 권위자다.

서울대 경영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도쿄대 경제학부 객원연구원, MIT 국제자동차프로그램(IMVP) 연구위원, 조지워싱턴대학 초빙교수 등을 역임했다. 대통령직속 국민경제자문회의 혁신경제분과 위원장, 유엔글로벌콤팩트 한국협회 이사, 신남방정책 민간자문위원을 역임하며 정부 자문 역할도 수행했다.

또한 현대자동차, 삼성전자, 포스코에너지 등 대기업의 자문교수 및 현대모비스·홈앤쇼핑·킨텍스 사외이사 등 산업계와 학계를 연결하는 산학연 허브형 리더로 평가받는다. 윤경ESG포럼 공동대표, 한국인도네시아경영학회 회장으로서 아세안과의 경영교육 및 교류 확대에도 힘쓰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사람중심 기업가정신'(2018), '이토록 신나는 혁신이라니'(2019), '플랫폼의 눈으로 세상을 보라'(2015) 등이 있다. 다수의 국내외 수상 경력도 보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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