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휘은의 AI 이야기] 언어의 불쾌한 골짜기

우리는 왜 그 문장을 믿어버렸을까

▲반휘은 칼럼니스트/ AI컨설턴트. (출처=본인 제공)
모든 생물은 무리 속의 낯선 침입자를 구분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철저히 생존을 위해 발달한 이 본능에서 인간 역시 벗어나지 않는다. 우리는 외양을 보고, 체향을 감지하고, 심지어 말버릇이나 호흡의 리듬만으로도 상대가 ‘우리’에 속하는 인물인지, 외부에서 들어온 위협인지, 혹은 잠정적인 아군인지 판단한다. 이 구분은 의식적인 판단이라기보다, 오랜 시간 축적된 감각에 가깝다.

AI와 로봇이 발전하며 다시 주목받은 ‘불쾌한 골짜기’ 이론 역시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인간이 로봇이나 AI 챗봇을 보며 느끼는 이 설명하기 어려운 거부감은, 수천 년 동안 병에 걸렸거나 완전히 백골이 되기 직전의 시체를 구분해내야 했던 생존의 기억과 무관하지 않다는 해석이 유력하다. 너무 살아 있는 것 같지도, 그렇다고 완전히 죽어 있지도 않은 존재를 경계해야 했던 무의식의 잔여가 의식과 기계의 경계선에서 성장하고 있는 기술 앞에서도 되살아나는 것이다.

이 가운데 ‘우리’와 ‘그들’을 가르는 가장 강력한 기준은 언제나 언어였다. 바벨탑 신화에서 인간에게 내려진 형벌이 소통의 상실이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언어는 집단의 경계를 긋는 방식이었다. 타지로 여행을 떠날 때 간단한 인사말과 필수 문장을 외우는 것도, 여러 언어를 능숙하게 다루는 사람이 경쟁력을 갖게 되는 것도, 언어가 곧 소속과 이해의 증거이자 영역의 확장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이 점을 고려하면, 외적인 모습이 희미해지거나 뒤섞이는 디지털 공간에서 ‘사람’과 ‘프로그램’을 구분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언어가 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얼굴도, 체향도, 시선도 없는 공간에서 남는 것은 문장뿐이기 때문이다. 몇 해 전, 챗지피티를 필두로 한 대규모 언어 모델(LLM) AI가 등장하자 영어권 문화에서는 이 문장이 사람인지 기계인지 구분하는 법을 공유하는 데 유난히 열을 올렸다. 교사들은 AI로 작성한 과제를 걸러내고 싶어 했고, 인사팀은 자기소개서를 대신 써준 챗봇의 흔적을 찾아내려 했다. 소셜 미디어 사용자들은 댓글과 게시물 속에서 급증하는 봇 계정을 구분하려 애썼다. 이유는 제각각이었지만, 글자 뒤에 있는 주체를 가려내고 싶다는 욕망만큼은 공통적이었다.

이 과정에서 흥미로운 합의가 형성됐다. 지나치게 화려하고 시적인데도 정작 핵심이 비어 있는 비유, 특정한 문장부호, 과하게 정돈된 대구법, 불필요할 만큼 친절한 구조가 AI 작문의 증거로 지목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 결과, 한때는 전문성과 세련됨, 지성의 상징이었던 규격화된 작문법이 순식간에 의심의 대상이 되었다. 잘 쓴 문장이 오히려 기계적이라는 낙인을 얻는 역설적인 장면이었다.

대규모 언어 모델의 개발 방식만 놓고 본다면 이러한 형식화는 당연한 결과다. 방대한 데이터를 학습한 모델이 이미 검증된 논문과 출판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문체를 차용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다음에 있다. LLM의 상용화 훨씬 이전부터 세계는 이미 문해력 위기와 반지성주의라는 풍파를 겪고 있었다. 이 흐름 속에서 실제 사람이 능숙하게 쓸 수 있는 언어와 그렇지 않은 언어를 구분하려는 강박은, 오히려 사회 전체의 언어 체계를 점점 더 좁은 틀로 몰아넣고 있는 것이다. 소셜 미디어에서 종종 회자되는 ‘AI처럼 보이지 않으려고 일부러 초급자처럼 쓰는 나’라는 자조적인 농담은 이 현상을 잘 보여준다. 기술의 발전이 인간의 언어를 고도화시키기보다 오히려 퇴행시키는 아이러니한 장면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사람들은 AI를 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AI라는 의심을 받지 않기 위해 언어를 낮추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언어는 여전히 사람의 존재를 증명하는 가장 중요한 표식 가운데 하나다. 언어는 우리가 이 세계에 의미 있는 존재로 자리하고 있다는 신호로 기능한다. 그리고 그 언어는 단순히 머릿속에서 조립된 기호의 나열이 아니라, 물리적이고 추상적인 경험이 겹겹이 쌓여 형성된 체화된 표현이다.

프랑스 철학자 메를로퐁티에 따르면, 존재의 전제 조건에는 언제나 ‘몸’이 놓여 있다. 사유의 근간에는 지각이 있고, 지각에는 필연적으로 몸이 감지하는 환경과 감각이 개입한다. 우리는 살아 있는 몸을 통해 세상을 본다. 듣고, 만지고, 피로를 느끼고, 다시 떠올린다. 사물을 쥐는 손, 공간 속을 이동하는 걸음은 단순한 생물학적 조건이 아니라, 세계를 해석하는 방식으로 자리한다. 길을 걸을 때 매번 머릿속으로 지도를 계산하지 않아도 몸이 알아서 속도와 균형을 조절하는 경험. 익숙한 업무를 수행할 때 머리보다 손이 먼저 움직이는 순간. 이 모든 것은 사고가 생각 안에서만 일어나는 고립된 사건이 아니라는 반증이다. 몸은 언제나 생각보다 앞서거나 적어도 함께 움직인다.

이 점에서 우리가 AI를 마주하며 느끼는 무의식적인 거부감과 동시에 쉽게 설명되지 않는 매혹은 이 ‘몸’의 차이에서 비롯된다고 볼 수 있다. 대규모 언어 모델 AI에는 지각 능력이 없다. 많은 사람들이 AI가 의식을 가지고 대화를 나누고 있다고 느끼는 것은 이해할 만한 착각이지만, 현재의 언어 모델은 통계에 기반해 텍스트 패턴을 조합하는 고도화된 계산 시스템에 가깝다. 그 결과, AI가 생성하는 문장에는 통상적인 언어가 요구하는 ‘경험’이 결여되어 있다.

그러나 경험의 소실, 다시 말해 몸의 ‘거세’는 AI의 언어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인간은 이미 디지털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신체를 서서히 지워 왔다. 디지털 플랫폼에서의 글쓰기는 몸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훈육된다. 글자 수 제한은 표현을 납작하게 만들고, 주목을 끌기 위한 자극적인 단어 배치는 맥락을 끊어낸다. 검색과 공유, 인용에 적합하도록 설계된 문장 구조는 체화된 경험의 흔적을 제거한 채 안전한 템플릿으로 정리된다. 알고리즘에 최적화된 특정 어휘들은 반복되며 언어를 더 균질하게 만든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AI 문체가 확장된 이유는 단순히 많은 사람들이 언어 모델을 사용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전부터 사람들은 몸을 배제한 문체로 사회화되었다. AI는 그 결과를 가장 효율적으로 재현했을 뿐이다.

최근 화제가 되었던 ‘몰트북’을 둘러싼 반응 역시 이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AI를 위한 커뮤니티’를 지향한 몰트북은 애초에 AI 에이전트들이 서로 대화를 만들어내도록 설계된 온라인 공간이었지만, 그 안에서 생성된 게시글과 댓글들은 실제 온라인 커뮤니티와 거의 구분되지 않을 만큼 현실적인 어조와 갈등, 농담을 보여 주며 빠르게 주목을 받았다. 흥미로운 점은 그 과정에서 일부 실제 이용자들이 사람임을 숨기고 AI인 척 글을 쓰기 시작했다는 사실로, 이 공간에서는 누가 인간이고 누가 에이전트인지가 더 이상 자명하지 않게 되었다.

몰트북을 둘러싼 담론을 다소 주관적인 감정에서 한 발 물러나 바라보면, 그 대화들은 실제 감정이나 사고라기보다 학습된 상황 설정에 맞는 단어를 출력하는 기계적 시스템에 가까운 면모를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몰트북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해당 텍스트가 실제 인간의 그것과 흡사하다는 점에 있어선 입을 모아 동의했다. 사진도, 음성도, 실질적인 ‘증거’도 없이 오로지 화면을 통한 문자로만 판단한 결론이었다. 우리는 언제부터 ‘인간적인 것’을 이렇게 낮은 기준에서 판별하게 되었을까?

몰트북의 문장들을 차분히 들여다보면, 그것들은 감정이 없는 대신 감정을 흉내 내고, 경험이 없는 대신 경험을 설명한다. 슬픔은 구체적인 장면으로 드러나기보다, 슬픔이 무엇인지에 대한 설명으로 대체된다. 고민은 우왕좌왕하는 사고의 흔적이 아니라, 고민이라는 상태에 적합한 어휘들의 배열로 나타난다. 그것은 누군가 실제로 겪은 하루라기보다, ‘그럴듯한 하루’의 설계도에 가깝다.

그럼에도 많은 독자들이 그 문장들에 마음을 연다. 이 반응은 기계가 갑자기 인간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기 때문도 아니거니와, AI가 ‘의식’을 드디어 갖추었기 때문도 아니다. 사람들은 이미 디지털 공간에서 오랫동안 몸 없는 언어에 노출되어 왔고, 그 언어에 반응하는 법을 학습해 왔다. 감정은 설명되는 것이고, 위로는 정해진 어조를 갖는다는 관습 속에서, 확률적으로 생성된 문장 역시 충분히 진정성의 자격을 얻게 된 것이다.

우리는 어째서 경험이 아닌 설명에 감동하게 되었을까? 왜 몸의 흔적이 없는 언어에도 마음을 내어주는 것일까? 그 이유는 우리가 이미 오래전부터 디지털 환경 속에서 경험을 압축하고 정제하는 방식으로 소통해 왔기 때문이다. 긴 하루를 요약하고, 복잡한 감정을 정리하고, 불편한 망설임을 삭제하는 과정은 일상이 되었다. 몰트북은 이 과정을 극단적으로 수행했을 뿐이다. 이 익숙함은 곧 몸의 부재에 대한 무감각을 의미한다. 디지털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대화는 점점 체온을 잃고, 호흡을 잃고, 우연성을 잃어왔다. 그 결과, 언어는 점점 ‘상황에 맞는 출력’이 되었다. 몰트북은 이 언어의 현재를 가장 노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기술적 사건이기보다 문화적 증상으로 봐야 마땅한 것이다.

몰트북을 읽으며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은 기계에 대한 오해라기보다 자기 자신에 대한 투사에 가깝다. 우리는 그 문장들 속에서 기계적인 타자를 본 것이 아니라, 이미 그렇게 말하고 생각해 온 자신의 모습을 본다. 우리가 AI를 바라보며 느끼는 감탄은 생명을 얻은 조각상을 경외한 피그말리온의 그것이라기보다, 수면에 비친 자기 모습을 알아본 순간 그 자리에서 멈춰 서 버린 나르키소스의 감정에 가깝다.

메를로퐁티의 사유를 조금 더 밀어붙여 보자. 결국 문제는 언어의 진위가 아니라 사유의 조건으로 돌아온다. 그는 사고를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추상적 활동으로 보지 않았다. 사고는 언제나 세계 속에 던져진 몸에서 시작되고, 그 몸이 느끼는 저항과 리듬 속에서 형성된다. 망설임, 말의 끊김, 다시 쓰기, 주저함. 이런 요소들은 사고의 실패가 아니라 사고의 흔적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글쓰기 환경은 이런 흔적을 점점 용납하지 않는다. 빠르고, 명확하고, 오해의 여지가 없어야 한다는 요구 속에서, 생각은 종종 도착지부터 설정된 채 출발한다. 문장은 이미 승인된 형태를 향해 움직이고, 그 과정에서 몸은 개입할 여지를 잃는다. 그 결과 우리는 점점 더 효율적으로 글을 작성할 수는 있어도, 실제로는 덜 생각하게 된다.

이 지점에서 생성형 AI는 새로운 위협이라기보다, 이미 진행 중이던 변화의 가속기처럼 보인다. LLM의 전파 이전에도 인간의 글쓰기가 이미 기계가 가장 잘 따라할 수 있는 형태로 정돈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놀랍도록 능숙하고, 동시에 어딘가 공허한 AI의 문장은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 온 언어의 그림자다.

몸이 없는 언어는 효율적이다. 그러나 몸이 제거된 언어는 경험을 남기지 않는다. 읽히지만 머물지 않고, 이해되지만 축적되지 않는다. 인간의 언어가 다시 몸을 회복할 수 있을지, 혹은 회복할 필요가 있는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우리가 AI와 구분되고 싶다면 기술을 비난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점이다. 구분은 문장에 드러나는 태도에서, 그리고 사유를 대하는 방식에서 이루어진다.

어쩌면 앞으로의 글쓰기는 ‘AI처럼 쓰지 않는 방법’을 찾는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오히려 왜 이 문장을 선택했는지를 스스로에게 묻는 일이 더 중요해질 것이다. 이 표현이 빠르기 때문인지, 안전하기 때문인지, 평가받기 쉬워서인지. 아니면 지금 이 순간의 피로, 망설임, 불확실함 속에서만 나올 수 있었기 때문인지. 결국 모든 질문은 다시 사고와 주체성으로 돌아온다.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생각하고 말하기를 선택해 왔는가의 문제. 우리는 어떤 언어를 선택하며 살아왔는가? 그리고 그 선택은 우리를 어디로 데려가고 있는 걸까?

저자 소개

반휘은은 글로벌 AI 거버넌스와 신기술을 전문으로 하는 정책 컨설턴트이자 저술가다. 미국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디지털 인문학, 미디어철학, AI윤리를 전공하며 석사과정을 마친 후, 뉴욕 유엔본부의 (전)기술특사실 (현)디지털과 신기술사무국(전 Office of the Secretary-General’s Envoy on Technology, 현 Office for Digital and Emerging Technologies)에서 AI 정책 연구와 분석을 주도했다. 안보, 에너지, 노동, 건강, 법의 지배 등 다양한 분야에서 AI 거버넌스를 위한 전략적 프레임워크를 개발했으며 20회 이상의 고위급 자문 회의를 주관하며 AI 정책을 구체화했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MS), 메타 등 주요 산업 리더들과 협력하여 AI 거버넌스의 글로벌 표준을 마련하는 데 기여한 반휘은은, 디지털 윤리와 사회적 가치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을 제공한다. 학계와 산업계를 잇는 다리 역할을 하며, 현재는 AI 거버넌스를 주제로 한 책을 집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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