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 보호·책임 구조 정비는 과제

보험업계에 인공지능(AI) 전환(AX)이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전화 모집과 가입설계 자동화, 보상 상담 음성봇, 보험사기 탐지 고도화까지 적용 범위가 전방위로 넓어지는 흐름이다. 다만 소비자 보호 기준과 알고리즘 책임 구조를 어떻게 정교하게 설계하느냐에 따라 새로운 리스크로 번질 가능성도 함께 제기된다.
22일 금융권에 따르면 보험사들은 AI를 활용해 영업·인수·보상 프로세스 전반을 재설계하고 있다. 업무 일부를 자동화하는 수준을 넘어 상품 설계부터 모집, 심사, 보상에 이르는 전 과정에 AI를 활용 중이다.
상징적인 사례는 라이나생명이다. 금융위원회는 최근 라이나생명의 ‘AI 텔레마케터(TMR) 기반 보험 모집 서비스’를 혁신금융서비스로 지정했다. 보험 모집 단계에 AI를 적용한 업계 첫 사례다. AI가 고객 접촉과 상품 소개, 가입 권유를 수행하고 설명의무 이행과 청약은 전문 상담원이 맡는 구조다. 하루 발신 2000건 제한, 연간 모집 8000건 상한 등 통제 장치도 병행했다. 표준화된 스크립트로 불완전판매 리스크를 낮추겠다는 취지다.
신한라이프의 행보도 두드러진다. 신한라이프는 이달 9일 자연어 기반 가입설계 시스템 ‘LICO(Life Copilot)’를 오픈했다. 생성형 AI가 고객 정보와 보장 한도, 특약 규칙을 분석해 설계안을 실시간으로 추천하고 수정까지 지원한다. 가입설계와 전산 심사를 동시에 진행해 청약 소요 시간을 단축하는 구조다. 상담 요약과 상품 정보 관리 자동화에 이어 설계 영역까지 AI 활용 범위를 확대했다.
보상 영역에서도 도입이 본격화하고 있다. DB손해보험은 고객 참여형 보상 시스템 ‘AI Agent’를 정식 오픈했다. 음성인식(STT)과 음성합성(TTS) 기술을 기반으로 사고 접수 후 30분 이내 초기 안내를 자동 수행하고 개인정보 동의와 정비공장 정보 입력 등을 대화 방식으로 진행한다. 접수부터 지급까지 원스톱 프로세스를 구현해 대기 시간을 줄이고 보상 투명성을 높였다는 설명이다.
NH농협손해보험은 완전판매 모니터링 절차인 ‘해피콜’을 AI 음성봇으로 자동화했다. 연간 약 40만 건 상담을 처리하며 필요 시 전문 상담사로 즉시 연결하는 하이브리드 체계를 구축했다. 계약 만기 안내와 다국어 상담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AI 모델 성능을 관리하는 체계도 갖추고 있다. ABL생명은 ‘지능형 AI 성능관리 시스템’을 구축해 보험사기예측시스템(FDS)과 심사 AI 모델의 데이터 변화(Data Drift)를 실시간 모니터링한다. 성능이 일정 기준 이하로 떨어질 경우 즉시 알림을 보내고 보정하는 방식이다. 보험사기 탐지 정확도를 높이고 오탐지를 줄여 심사 효율성을 개선한다는 목표다.
대형사 차원의 전략 메시지도 분명하다. KB손해보험은 ‘2026년 상반기 경영전략회의’에서 AI 기반 고객 경험 혁신과 밸류체인 효율화를 핵심 과제로 제시했다. 정교한 수익성 관리와 AI 실행력을 병행하겠다는 방향이다.
보험권의 AX는 은행과 증권에 비해 더딘 편이었다. 상품 구조가 복잡하고 설명의무 규제가 강하며 설계사 중심 대면 영업 비중이 높기 때문이다. 그러나 IFRS17 도입 이후 보험계약마진(CSM) 관리와 자본건전성 지표(K-ICS) 대응 부담이 커지면서 비용 효율화 요구가 확대됐다. 비대면 가입 비중이 낮은 상황에서 디지털 채널 강화도 과제로 떠올랐다.
다만 쟁점은 소비자 보호와 책임 구조다. 표준화된 AI 스크립트가 설명 누락을 줄일 수 있다는 기대와 함께 알고리즘 판단 오류와 민원 증가, 책임 소재 문제도 제기된다. 감독당국의 관리 기준과 사후 점검 체계가 병행되지 않을 경우 새로운 리스크로 전환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보험업계 한 관계자는 “AI 도입은 설계사를 대체하기보다 불완전판매 리스크를 줄이고 영업 편차를 관리하는 보완 장치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크다”며 “IFRS17 이후 수익성 관리 압박이 커진 상황에서 AI가 비용 절감 수단으로만 활용될 경우 영업 조직과의 긴장도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이어 “설명 책임과 알고리즘 판단 책임의 경계를 명확히 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