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봉 5일 만에 누적관객수 100만명 돌파하며 흥행
단종-엄흥도, 정서적 차원의 유사 부자 관계로
비극적인 단종의 운명 표현⋯박지훈 연기 호평

장항준 감독이 연출한 ‘왕과 사는 남자’는 영월 청령포에 유배를 온 단종(박지훈)과 그 마을의 촌장이었던 엄흥도(유해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웃 마을에 유배를 왔던 고관대작이 한양으로 돌아간 뒤 그곳이 부촌으로 변하는 걸 목격한 엄흥도는 군수에게 “우리 마을에도 죄인을 보내달라”고 요청한다. 청령포가 여름에는 모기 때문에, 겨울에는 극심한 추위 때문에 유배지로 적합하다는 말도 덧붙인다. 옆에서 듣고 있던 한명회(유지태)가 단종의 유배지로 청령포를 낙점하면서 영화는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왕과 사는 남자’는 권력의 상·하층부가 교감하는 역사영화다. 이러한 구조는 ‘왕의 남자’(2005), ‘광해’(2012), ‘천문’(2019), ‘올빼미’(2022) 등의 영화에서 반복적으로 변주되어 왔다. 관객은 만날 수 없을 것 같은 사람들의 낯선 조우를 통해 서로 다른 세계가 교차하는 순간을 마주한다. 대개 웃음은 신분의 차이에서, 감동은 그 차이를 넘어서는 인간적 교감에서 나온다. 특히 절대 권력을 가졌던 자가 가장 낮은 자리의 삶에 던져질 때, 영화는 장엄한 시대보다 그 시대를 살았던 구체적 사람의 생애를 증언하는 서사로 나아간다.
청령포에 도착한 뒤 식음을 전폐하던 단종이 끝내 숟가락을 든 이유는 밥상을 차리기 위해 노심초사한 백성들의 정성 때문이다. 일찍 부모를 잃고 의지할 곳 없이 촌구석으로 내팽개쳐진 어린 왕은 마을 사람들이 마련한 청빈한 밥상을 마주하고 나서야 비로소 왕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한다. 자신을 위해 살뜰히 반찬을 챙기는 백성들의 마음을 헤아리고, 그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직접 불러주는 일. 큰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작은 일부터 소홀히 하지 않아야 한다는 깨달음. 이 같은 사소한 태도가 어린 왕을 현자로 만든다.

한편 엄흥도는 폐위된 어린 왕이 자식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스스로 생을 포기하려는 단종을 구하고, 왜 이렇게 철이 없냐며 제 아들 나무라듯 다그치는 엄흥도의 훈계는 왕의 짧은 생을 잠시나마 연장시킨다. 영화는 임금과 백성 관계에 있는 두 사람을 정서적 차원의 유사 부자 관계로 재정립한다. 엄흥도는 죽음을 앞둔 단종이 안타까워 그의 얼굴을 어루만지려다 이내 손을 거두며 눈물을 흘린다. 여기에는 자식을 향한 사적인 연민과 왕을 향한 공적인 경외가 함께 담겨 있다. 계급적 위계와 그 위계의 허물어짐을 동시에 표상한 장면이다.
공간 활용도 인상적이다. 청령포는 육지 안의 섬으로 배가 없으면 갈 수 없는 곳이다. 단종의 존재론적 고립을 은유하는 공간이면서 그가 새로운 관계 속에서 찰나적으로나마 삶의 활력을 회복했던 무대이기도 하다. 청령포를 비롯해 어음정, 군등치, 우래실, 방울재 등 단종과 관련한 영월의 공간들은 역사의 비극이 개인의 운명으로 소진되지 않고, 집단의 기억으로 보존되어 왔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역사는 가장 낮고 외진 자리에서도 시대를 증언하려는 사람들의 의식 속에서 새롭게 기술된다는 걸 이 영화는 말해준다.
단종의 복위 운동을 연상케 하는 군사적 충돌 전후의 과정은 다소 조악하지만, 영화는 대체로 잘 조율된 악기처럼 연주된다. 무엇보다 쉽고 재미있다. 유해진은 코믹함과 진중함을 오가며 전체적으로 이야기를 이끌고, 유지태는 극의 긴장을 높이는 연기로 제 역할을 해낸다. 박지훈은 비극적이었던 단종의 운명을 자신의 눈동자에 그대로 담아낸 것처럼 뛰어난 표정 연기를 선보인다. 쇼박스가 배급한 ‘왕과 사는 남자’는 개봉 5일 만에 누적관객수 100만 명을 돌파하며 설 연휴 극장가의 기대작으로 호평받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