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대 군사학과 교수·국제정치학
獨과 손잡은 伊, 경제 활성화 추진
‘지지기반 탄탄’ 멜로니 공조 주목

지난달 23일 독일의 프리드리히 메르츠 총리가 로마를 방문했다.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 두 나라는 국방과 안보 분야의 협력을 강화하기로 합의했다. 또 유럽연합(EU) 차원에서 강력한 규제 완화를 요구하기로 했다. 독일과 프랑스가 유럽통합을 주도해왔는데 프랑스의 정치적 어려움 때문에 베를린과 로마가 점차 그 역할을 맡고 있다. 그렇지만 독·이의 전략적 파트너십 형성에는 장애물이 있다.
베를린·파리 축이 작동하지 못하게 된 것은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레임덕 때문이다. 내년 4월에 프랑스 대선이 예정되어 있고 마크롱은 재선을 했기 때문에 더 이상 출마할 수 없다. 설상가상으로 2024년 7월 조기 총선에서 마크롱의 집권당은 의회에서 과반을 상실했다. 이후 4명의 총리가 교체됐고 야당의 지속적 조기 총선 요구를 대통령이 거부하며 코너에 몰려 있다. 국내 정치적 어려움이 산적한 대통령이 EU에서 리더십을 행사하기는 어렵다.
EU는 남미 공동시장 메르코수르와 지난달 중순 자유무역협정(FTA)에 서명했다. EU 27개국 인구 4억5000만 명에 메르코수르 회원국 2억9000만명의 대규모 FTA로 유럽은 공산품 시장을, 남미 공동시장 쪽은 농산품 시장을 주고 받았다. 회원국 표결에서 프랑스는 농산품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 등 여러 가지 양보를 얻어냈지만 반대표를 던졌다. 이탈리아가 찬성해 FTA 서명이 가능했다. 타결에 25년이 넘게 걸린 FTA였지만 트럼프의 재집권이 자유무역협정의 체결을 촉진했다.
미국에 대한 정책에서도 독일과 이탈리아가 유사하다. 두 나라는 미 대통령 자극을 자제하면서 대화와 타협을 우선시하지만 프랑스는 강경책 일변도다. EU는 1% 초반의 저성장을 극복하기 위해서 FTA를 적극 추진하며 친환경정책 등에서도 규제 완화를 이행 중이다. 메르츠와 멜로니 총리는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규제완화책 요구를 12일 열린 비공식 EU 정상회담에서도 의제로 제시했다. 벨기에의 국경도시 알덴 비젠 성에서 열린 회의에서 회원국 수반들은 경쟁력 강화 방안을 집중 논의했다. 이전 같으면 독일과 프랑스가 사전에 정책을 조율해 EU 정상회담에 제시했을 터인데 이번에는 로마가 파리를 대체했다.
피에트로 베나시 전 독일 주재 이탈리아 대사는 영국 일간지 파이낸셜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대미 정책 공감대가 독일과의 관계를 강화했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그는 1950년대부터 지속돼온 독일과 프랑스의 관계가 전략적인 반면 독일과 이탈리아의 관계는 아직까지 제한적이라고 평가했다.
예를 들면 국방비 대폭 증액이다. 이탈리아는 지난해 말 기준으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공공부문 총부채가 136%, 독일은 63%에 불과하다. 지난해 6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정상회담에서 회원국들은 2035년까지 GDP 대비 국방비를 5%(3.5%는 무기 등 직접 지출, 1.5%는 인프라 등 간접 지출)로 크게 늘리기로 합의했다. 이탈리아는 지난해 말 국방비 지출이 1.5%에 불과해 나토의 유럽회원국 가운데 매우 낮다.
EU는 지난해 1500억 유로의 기금을 마련해 2개 이상 회원국의 무기 공동구매를 지원 중이다. 이탈리아가 5% 국방비 증액을 달성하려면 막대한 채무 때문에 재정 여력이 부족해 EU의 지원이 추가로 필요하다. 반면에 EU 최대 경제대국으로 유럽연합 경제의 20%를 차지하는 독일은 1조 유로를 풀어 국방비와 인프라에 집중 투자 중이다. 따라서 독일은 EU의 지원이 필요없다. EU에서 추가로 회원국의 국방비 증액을 지원할 경우 자국 부담이 커진다. 회원국 경제력에 비례해 부담한 돈이 EU 지원에 사용되기에 독일은 EU의 추가 지원을 꺼릴 수밖에 없다. 이런 정책적 상이함이 두 나라 관계 강화의 걸림돌이다.
이런 장애물에도 독·이 관계가 강화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됐다. 이탈리아는 내년 말 안에 총선이 치러져야 한다. 2022년 10월에 총리가 된 멜로니는 이탈리아 형제당의 당수인데 집권 후 여론조사에서 계속 1위를 유지 중이다. 메르츠 총리도 임기가 최소 3년이 더 남아 있어 메르츠·멜로니가 협력할 여지가 많다. 반면에 프랑스는 내년 봄 대선이 있고 새로 취임한 대통령이 국내 정치적 한계를 대처하면서 유럽의 리더십을 행사하기에는 시간이 제법 걸릴 것이다.
팟캐스트 ‘안쌤의 유로톡’ 제작·진행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