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지된 속도': 불소 왁스 금지가 바꾼 올림픽 설상 종목의 과학 [2026 동계올림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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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S, 한국 크로스컨트리 선수 2명 '불소 검출' 실격…환경 규제가 승부처로
적외선 분광법(FTIR) 도입해 분자 단위 단속…'비의도적 오염' 변수 부상
화학적 발수 능력 대신 물리적 '스톤 그라인딩' 기술이 기록 좌우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당시 질주하는 크로스컨트리 선수들. (뉴시스)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 설상 종목이 '화학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수십 년간 스키의 속도를 책임졌던 '불소 왁스'가 환경 규제로 퇴출당하면서, 올림픽의 승부 공식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국제스키연맹(FIS)은 11일(현지시간) 크로스컨트리 여자 스프린트 예선에 출전한 한국 국가대표 한다솜, 이의진 선수를 실격 처리했다고 발표했다. 경기 후 진행된 장비 검사에서 두 선수의 스키 베이스로부터 규정치를 초과하는 불소 성분이 검출됐기 때문이다. 이는 이번 대회에서 강화된 환경 규정이 실제 경기 결과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사례로 기록됐다.

◇ '마법의 가루' 퇴출…적외선 탐지기가 심판관

(출처=클립아트코리아X이미지투데이)
불소 왁스 금지는 예고된 수순이었다. 왁스에 포함된 과불화화합물(PFAS)은 탁월한 발수성으로 스키와 눈 사이의 마찰을 줄여 기록 단축에 기여했지만, 자연 분해되지 않고 생태계에 축적되는 '영원한 화학물질'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에 FIS는 2023-2024 시즌부터 불소 왁스 사용을 전면 금지했다.

이번 올림픽에서는 단속 기술이 한층 고도화됐다. FIS는 '푸리에 변환 적외선 분광법(FTIR)' 장비를 도입해 선수들의 스키를 검사하고 있다. 이 장비는 스키 바닥 표면에 잔존하는 불소의 분자 구조를 적외선으로 식별해낸다.

문제는 '비의도적 오염' 가능성이다. FIS는 가이드라인을 통해 선수가 고의로 불소 왁스를 사용하지 않았더라도, 과거에 사용했던 왁싱 브러시나 다리미 등 정비 도구에 미세하게 남아있던 불소 입자가 옮겨붙어 양성 반응이 나올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장비 관리의 청결도가 선수의 생존을 결정하는 새로운 변수가 된 셈이다.

◇ 화학에서 물리로…'스톤 그라인딩'이 새로운 승부처

(출처=클립아트코리아X이미지투데이)
불소 왁스가 사라진 자리는 정밀 공학이 채우고 있다. 과거에는 왁스의 화학적 성질을 이용해 물기를 튕겨냈다면, 이제는 스키 바닥을 물리적으로 가공하는 기술이 핵심 경쟁력으로 떠올랐다.

대표적인 기술이 '스톤 그라인딩(Stone Grinding)'이다. 스키 바닥에 미세한 물길을 내어, 스키와 눈 사이에서 발생하는 마찰열로 녹은 물이 원활하게 배출되도록 만드는 공법이다. 불소 없이도 마찰 계수를 낮추기 위해 각국 기술팀은 설질과 온도를 분석해 최적의 바닥 패턴을 찾는 데 주력하고 있다.

결국 이번 밀라노 올림픽 설상 종목은 단순한 체력 싸움을 넘어, 변화된 환경 규제에 적응하는 '과학 기술전'으로 진화했다. 불소라는 '금지된 속도'를 누가 더 효율적인 물리적 기술로 대체하느냐가 메달의 색을 가를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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