前 산업연구원장
소득불균형·노인빈곤 갈수록 심화
中企 육성해 산업경쟁력 유지하길

한국의 부의 격차 현상이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 경제 성장의 과실이 특정 산업과 계층에 집중되면서, 성장 형태가 산업과 계층별로 K자처럼 벌어지는 ‘K자형 성장’이 깊어지고 있는 것이다.
국내 소득 불균형은 코로나19 때까지는 완만하게 개선되는 흐름을 보였으나 이후 악화 추세로 반전되었다. 소득 상위 20%와 하위 20%의 소득 격차를 보여주는 5분위 배율은 2011년 8.25에서 2023년 5.72까지 하락했으나 이후 상승세로 돌아섰다. 중위 소득 50% 이하에 속하는 인구 비율을 나타내는 상대적 빈곤율도 같은 시기 18.5%에서 14.9%까지 떨어졌으나 이후 15%대로 올라갔다. 부의 편중을 악화시키는 보다 근본적 문제는 소득보다 자산 격차에 있다. 전체 자산에서 부채를 뺀 순자산 기준으로 부의 불평등 관계를 나타내는 순자산 지니계수는 2012년 0.579에서 2025년에는 0.625 수준으로 상승해 불평등도가 악화되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연령대별 빈곤 구조다. 근로연령층과 청년층에서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소득 격차가 커지고 있고 주택 소유 여부에 따라 자산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 한국의 65세 이상 노인 빈곤율은 2023년 기준 38~40%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세 배에 달해 사실상 세계 최상위권이다.
세계적으로도 소득과 부의 집중 현상은 고착화하고 있다. 미국은 상위 1%가 전체 소득의 약 20%를 차지하고 있으며, 중산층의 실질소득은 수십 년째 정체돼 있다. 세계불평등데이터베이스(WID)에 따르면 글로벌 상위 10%가 전체 소득의 절반 이상, 자산의 70% 이상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세계적인 부의 불균형 심화는 글로벌 정치경제사회 전반의 불안정으로 직결된다. 미국과 유럽에서 확산된 자국 중심주의와 보호무역주의 그리고 모든 나라에서 재정 지출 확대를 수반하는 포퓰리즘이 만연하고 있는 것은 분배 구조의 왜곡과 매우 밀접하게 연계돼 있다. 성장 혜택에서 배제되었다는 소외 인식은 기존 정치 경제 제도에 대한 불신으로까지 이어진다. 소득 불균형은 단순한 경제 문제에 머물지 않고 정부 개입과 통제를 유발해 시장 경제와 민주주의의 작동 요건을 약화시키는 요인으로까지 작용하게 된다.
한국에서 부의 편재 현상이 깊어지는 원인은 매우 복합적이다. 세계 경기 둔화와 고금리 환경은 취약계층의 소득 회복을 지연시키고, 급속한 기술 발전은 고숙련과 저숙련 간 소득 격차를 확대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임금 격차,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고용 형태와 조건이 다른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역시 주요 원인이다. 여기에 가계 자산의 70% 이상이 부동산에 집중된 구조에서 부동산 가격의 지역 간 양극화는 세대 간, 계층 간 부의 격차를 확대한다. 최근 주가가 급등하고 있는 주식시장도 소수 업종이 주도하고 있어 이 역시 자산 불균등을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빠르게 다가오는 인공지능(AI) 시대는 부의 격차를 더욱 확대할 가능성이 크다. 인공지능과 자동화는 생산성을 올리지만, 그 과실은 신기술에 적응 가능한 대기업과 고숙련 인력에 집중될 공산이 높다.
소득과 자산 격차 현상의 구조적 고착화 상황에서는 부의 재분배 전략 추진의 패러다임을 바꾸어야 한다. 그동안 소득 격차 해소 전략은 먼저 성장한 연후에 분배를 보완한다는 이른바 ‘성장 후 재분배’ 방안이었다. 고도성장기에는 이 전략이 유효했다. 성장률이 높고 일자리가 빠르게 늘면 소득은 자연스럽게 확산됐고, 이후 조세와 소득 이전으로 불균형을 조정하는 것이 가능했다. 그러나 성장 과정에서 소득 격차가 갈수록 벌어지는 저성장·고령화·기술 전환의 시대에는 성장과 분배를 시간적으로 분리하는 접근은 오히려 격차를 확대하고 사회적 비용을 더욱 늘리게 된다. 따라서 이제부터는 성장 속에서 분배를 추구하는 ‘사전 분배 전략’을 실현해야 한다. 예컨대 노동시장에서는 동일 가치 노동 동일 임금 지불,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임금 격차 완화, 고용유지형 복지 지원책을 실시해야 한다.
산업 성장 역시 마찬가지다. 과거에는 오직 대기업 중심 산업 육성이 성장의 지름길이었다면, 이제는 중소·중견기업의 생산성 제고와 기술 확산이 함께 이루어져야 산업 경쟁력과 고용을 유지할 수 있다. 자산 정책의 중요성은 갈수록 커진다. 주거·금융 자산의 불균형은 세대 이동성을 차단하고 정치 사회 갈등과 불안정성을 키워 성장 동력을 약화시킨다. 성장 과정 속 분배 전략은 부의 불평등이 고착화하는 저성장·고령화·AI 시대에 지속 가능 성장을 위해 시급히 요구되는 시대적 과제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