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아트 대표이사/백남준포럼 대표
시각예술은 소외…개인역량에 의존
문화강국 설계할 인프라 지원 절실

유네스코가 2026년을 김구 탄생 150주년 기념연도로 지정했다. 이 결정은 단순한 기념사업 채택이 아니라, 국제사회가 김구라는 인물을 어떤 가치 체계 속에서 재해석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판단이다. 유네스코 기념연도는 회원국이 신청한다고 자동 채택되는 구조가 아니다. 평화, 인권, 교육, 문화라는 조직의 핵심 가치에 얼마나 부합하는지, 그 인물이 오늘날 국제사회에 어떤 규범적 의미를 갖는지를 다층적으로 심사해 결정된다. 김구가 이 명단에 포함됐다는 사실은, 그를 한국 근현대사의 위인이 아니라 인류 보편 가치의 사상가로 공식 승인했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김구는 더 이상 한국 내부의 역사 자산이 아니라, 국제 규범 질서 속에서 의미를 부여받은 인류 공동의 문화유산이 된 것이다.
김구는 백범일지에서 “내가 원하는 것은 오직 한없이 높은 문화의 힘”이라 말했다. 이 문장은 감상적 이상주의가 아니라, 국제질서에 대한 냉정한 통찰이었다. 그는 총칼과 경제력 중심의 패권 구조가 필연적으로 갈등과 파괴를 반복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간파했고, 문화적 존경과 신뢰가 축적될 때만 지속 가능한 평화가 가능하다고 보았다. 오늘날 각국이 소프트파워 지수를 국가 경쟁력의 핵심 지표로 채택하고, 문화외교를 외교 전략의 중심 축으로 삼고 있다는 사실은 김구의 통찰이 시대착오적 이상이 아니었음을 증명한다. 오히려 김구는 오늘의 세계가 뒤늦게 따라가고 있는 미래 전략을 80년 전 제시한 사상가였다.
문제는 한국 문화정책이 이 철학을 얼마나 실질적으로 계승하고 있는가이다. K팝, 드라마, 게임, 한식은 이미 국가 브랜드이자 공공외교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정부 공식 보고서에서도 한류는 외교와 관광, 무역 파급 효과를 창출하는 전략 자산으로 명시된다. 그러나 시각예술, 즉 K아트는 국가 전략의 중심에서 구조적으로 배제돼 있다. 세계 미술계는 뉴욕현대미술관, 테이트 모던, 퐁피두 센터, 베니스비엔날레처럼 기관 네트워크와 담론 권력이 작동하는 구조적 장인데, 한국은 여전히 작가 개인의 역량과 우연적 성공에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다. 국립 차원의 국제 전시 플랫폼, 장기 연구 프로그램, 해외 미술관과의 공동 큐레이션 체계, 비평가 양성 구조는 여전히 취약하다. K아트의 한계는 재능의 문제가 아니라 정책 인프라의 부재라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K아트가 수행해야 할 역할은 명확하다. 한국 현대사가 축적해온 분단과 냉전, 민주화 운동, 급격한 산업화, 기술사회 속 인간 소외, 불평등, 생태 위기와 같은 경험은 세계와 깊이 공명할 수 있는 강력한 서사 자산이다. 그러나 이 자산은 작품 생산에만 맡겨둔다고 자동으로 국제 담론이 되지 않는다. 전시 기획, 비평 담론, 학술 연구, 교육 프로그램, 국제 네트워크를 통해 구조화될 때 비로소 세계 미술계 안에서 영향력을 갖는다. 세계 미술시장에서 경쟁하는 것은 이미지의 독창성이 아니라, 그 이미지를 둘러싼 의미 체계와 담론 구조다.
문화강대국 담론 역시 수정되어야 한다. 이제 문화의 위상은 소비 규모나 수출액이 아니라, 어떤 가치와 규범을 세계에 제시하는가로 평가된다. 국가는 시각예술 국제교류 플랫폼을 공공 인프라로 구축하고, 장기 예산을 통해 연구와 기획 중심의 지원 구조를 설계해야 한다. 민간은 단기 수익 중심의 시장 논리를 넘어, 컬렉터와 기업, 재단이 공공성을 지지하는 후원 생태계를 형성해야 한다. 예술가 또한 시장 친화적 스타일 생산을 넘어서, 동시대 세계가 직면한 문제에 대해 자신의 작업이 어떤 윤리적 발언을 하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질문해야 한다.
김구가 말한 인류문화의 모범국가는 추상적 수사가 아니라 구체적 전략 개념이었다. 유네스코가 김구를 세계의 이름으로 다시 호출한 지금, 이를 정책과 구조, 제도로 번역하지 못한다면 이번 기념연도는 또 하나의 행사로 소진될 뿐이다. 이제 한국 사회에 필요한 것은 감동적인 추모가 아니라, 문화강국을 실질적으로 설계하고 실행할 수 있는 전략적 사고와 정책 역량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