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안 사는 사회…독일, ‘평생 월세’를 선택한 이유 [해외실험실: 주거의 경제학 ①]

기사 듣기
00:00 / 00:00

자가주택 소유 비중 절반 그쳐
자신증식 수단 아닌 거주 인프라로 인식
주택 가격 연봉 6~10배 달해
주거 안정성 유지 초점

한국 전세 제도가 구조적 한계에 직면하면서, 해외 주요 국가들이 어떤 방식으로 주거 안정을 확보해 왔는지 비교할 필요가 커지고 있다. 독일과 싱가포르 사례를 통해 주택을 ‘투자 상품’이 아닌 ‘거주 인프라’로 다루는 정책적 선택이 시장 안정과 투기 억제, 세입자 보호에 어떤 차이를 만드는지 짚어본다.

‘부동산 불패 신화’를 거부한 나라가 있다. 유럽 최대 경제국인 독일의 주택시장은 선진국 가운데서도 이례적인 구조를 갖고 있다. 독일의 자가 보유율은 전체의 약 절반으로 주요 선진국 중 최저 수준이다. 경제 규모나 소득 수준을 고려하면 낮은 수치이지만 독일 사회에서는 이 숫자가 문제로 인식되지 않는다. 독일에서 집은 자산 증식의 수단이 아니라 거주를 위한 인프라에 가깝기 때문이다. 정책·금융·문화가 함께 작동하며 집을 투기 대상에서 떼어낸 결과다.

4일 독일 부동산 투자·리서치 기업 인베스트로파(Investropa)에 따르면 독일은 거주자의 46~50%만이 자가 주택을 소유하고 있다. 루마니아, 스페인, 이탈리아 등 같은 다른 유럽 국가들의 주택 소유율이 75%를 초과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이러한 추세는 수십 년간 안정적으로 유지돼 왔다. 이는 임대 문화가 일시적인 경제적 대응이 아닌 독일 사회에 깊이 뿌리내렸음을 시사한다. 소득 대비 높은 부동산 가격, 엄격한 주택담보대출 기준, 구매자의 상당한 초기 비용, 강력한 세입자 보호 장치, 전후 재건 정책에서 비롯된 뿌리 깊은 임대 선호 문화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독일인들이 주택 소유를 쉽게 선택하지 않는 배경에는 소득 대비 과도한 부동산 가격 부담이 자리 잡고 있다. 독일의 주택 가격은 평균 연봉의 6~10배에 달한다. 여기에 세금 및 수수료 등 부대 비용이 매입가의 7~12% 수준으로 붙고 은행 계약금 또한 부동산 가치의 10~20%에 이른다. 무리해서 부동산을 매입하려 해도 독일 은행들의 엄격한 주택담보대출 승인 절차와 많은 신청자가 충족하기 어려운 보수적인 대출 기준이 발목을 잡는다.

하지만 독일에서는 집을 소유하지 않아도 삶의 안정성이 크게 흔들리지 않는다. 독일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세입자 보호 제도를 운영, 임대 주택을 매력적이고 안전한 주거 옵션으로 만든다. 세입자 보호법은 임차인의 퇴거를 극히 어렵게 하며 계약 기간에 따라 3~9개월의 사전 통지 기간을 요구한다. 임대인은 소유주 거주, 대규모 리모델링, 중대한 세입자 위반 등 합법적인 퇴거 사유를 제시해야 한다. 그럼에도 법원 절차를 통해 수개월에서 수년이 소요될 수 있다. 임대료 상한제(Mietpreisbremse)는 최소 2029년까지 연장돼 많은 지역에서 임대료 인상을 제한한다.

이 밖에도 전후 대규모 임대주택 중심의 재건, 사회주의 체제에서 사유주택을 억제하고 공공임대를 일상화했던 동독의 유산, 그리고 주택 소유보다 이동성·유연성·부채 회피를 중시하는 문화적 가치가 맞물리며 독일에서는 임대가 자연스럽게 표준적인 주거 방식으로 자리 잡았다는 분석이다.

인베스트로파는 “독일의 임대 중심 주택 시장은 경제적·문화적·규제적 요인이 독특하게 결합된 결과”라며 “부동산 소유는 높은 가격과 엄격한 대출 기준으로 인해 여전히 어려움이 있지만, 강력한 세입자 보호 제도와 고품질 임대 주택은 장기 임대 생활의 안정적인 기반을 마련해 준다. 많은 독일인이 주택 소유의 재정적 부담 및 위험보다는 이러한 임대 생활을 선호한다”고 분석했다.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추가취재 원해요0
주요뉴스
댓글
0 / 300
e스튜디오
많이 본 뉴스
뉴스발전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