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장 보고 의무 성립 요건 충족 안 돼”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추진 계획을 인지하고도 국회에 즉각 보고하지 않은 혐의로 기소된 조태용 전 국가정보원장이 첫 재판에서 공소사실을 거듭 부인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2부(류경진 부장판사)는 4일 직무유기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조 전 원장에 대한 첫 공판기일을 열었다. 조 전 원장은 이날 오전 9시 56분께 마스크를 착용한 채 흰색 와이셔츠에 회색 정장을 입고 법정에 출석했다.
재판부가 직업을 묻자 조 전 원장은 “없다”고 했고, 국민참여재판을 희망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날 조 전 원장 측은 공소사실을 모두 부인했다. 조 전 원장 변호인은 “특검은 마치 피고인이 비상계엄 자체가 내란에 해당한다는 점까지 인식했고, 윤 전 대통령과 내란을 공모하며 실행 계획까지 상세히 모의한 것처럼 전제해 범죄사실을 구성하고 있다”며 “그런 상상을 기반으로 기소하려면 직무유기가 아니라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로 기소했어야 한다. 이 점만 보더라도 특검 주장에 사실적 근거가 얼마나 허약한지 알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피고인은 윤 전 대통령이나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등의 내란 행위에 가담하거나 실행 행위를 분담한 사실이 전혀 없다”며 “특검이 피고인을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로 기소하지 않은 점에 비춰 보더라도 피고인이 내란 행위의 모의나 실행에 관여했다고 볼 만한 객관적 증거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국가정보원법상 국회 보고 의무가 발생했다고 보기 어렵다고도 주장했다. 변호인은 “국가정보원법 15조는 국가안전보장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상황이 발생할 경우 대통령과 국회 정보위원회에 보고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이때 ‘국가안전보장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상황’은 포괄적·평가적 개념”이라며 “이 규정을 근거로 직무유기죄를 구성하려면 보고 의무가 발동되는 상황이 특정되고, 피고인이 이를 인식한 상태에서 의식적으로 이행을 포기했다는 점이 입증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비상계엄 선포는 돌발적으로 이뤄졌고, 국정원 차원에서 즉각 수행해야 할 구체적 조치도 명확히 정리되지 않은 상태였다”며 “당시 상황이 언론을 통해 실시간으로 공개·전파되고 있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곧바로 국회 정보위원회에 지체 없이 보고해야 할 구체적 상황이 특정됐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변호인은 “피고인이 보고 의무의 발생 사실을 인식해야 직무유기죄가 성립하는데, 피고인이 그 발생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한 상황이었다”며 “피고인은 대통령이 헌법상 요건이 미비한 상황에서 비상계엄을 선포했다는 사실 자체는 인식했지만, 국정원장으로서 그 자리에서 비상계엄 선포의 위헌·위법 여부를 확정적으로 판단하고 이를 전제로 즉각적인 대외 조치를 취할 권한을 갖춘 지위에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조 전 원장은 2024년 12월 3일 대통령실에서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계획을 사전에 알고도 국회에 보고하지 않은 혐의로 지난해 11월 구속 기소됐다. 국정원법에 따르면 국정원장은 국가 안보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상황이 발생할 경우 대통령과 국회 정보위원회에 지체 없이 보고해야 한다.
특검은 조 전 원장이 대통령 집무실을 나서며 계엄 관련 문건으로 추정되는 종이를 양복 주머니에 넣는 장면이 폐쇄회로(CC)TV에 포착된 점 등을 근거로, 계엄 관련 내용을 인지하고도 보고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고 보고 있다.
조 전 원장은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의 모습이 담긴 국정원 CCTV 영상을 국민의힘에 무단 제공한 혐의, 박종준 전 대통령실 경호처장과 공모해 홍 전 차장의 비화폰 통화 기록 삭제했다는 의혹 등도 받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