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건강노트] 동의보감과 신경과학이 만날 때

정승한 (대구)상원한의원 대표원장

자율신경 실조를 다스리는 법

“소화도 안 되고 머리도 아픈데, 병원에서 검사 결과는 정상이래요.”

진료실에서 흔히 듣는 호소다. 검사상 특별한 이상은 없지만, 몸은 분명 불편하다. 임상에서는 흔히 자율신경계의 문제로 설명되는 상태다. 흥미로운 점은 이미 오래전에 ‘동의보감’에서도 이러한 내용을 다른 표현으로 설명했다는 사실이다.

동의보감에 ‘자율신경’이라는 용어는 없지만, 그에 해당하는 개념은 존재한다. 기(氣)가 막혀 잘 통하지 않는 상태, 장부의 기능 조절이 흐트러진 상태, 음양(陰陽)의 균형이 깨진 상태가 그것이다.

기가 정체되면 답답함과 통증이 생기고 소화가 안 되며, 위로는 열이 뜨고 아래는 차가워지는 상열하한(上熱下寒)의 불균형이 발생한다. 음양이 어긋나면 잠은 얕아지고 몸은 늘 긴장 상태에 놓인다. 동의보감은 이러한 상태를 몸 전체의 조절과 흐름이 무너진 상태로 이해했다.

자율신경 실조는 사람마다 양상이 다르다. 누군가는 소화불량으로, 누군가는 두통이나 생리통으로 나타난다. 자율신경은 특정 장기 하나가 아니라 전신 시스템을 조절하기 때문이다. 어디가 가장 약한 고리인지에 따라 증상의 모습은 다르지만, 뿌리에는 자율신경 조절의 문제가 자리하는 경우가 많다.

현대 신경과학의 거장 스티븐 포지스(Stephen W. Porges)는 다미주이론을 통해 자율신경이 “지금 이 몸이 안전한가”를 먼저 평가한다고 설명한다. 몸이 안전하다고 느낄 때에만 소화, 생식, 회복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고, 위협을 느끼면 생존을 위해 이 기능들을 뒤로 미룬다.

이는 동의보감에서 말하는 ‘기의 울체’, 즉 조절과 순환이 막힌 상태를 현대 신경과학의 언어로 풀어낸 설명과 맥을 같이 한다.

한편 크리스토퍼 팔머(Christopher M. Palmer)는 저서 ‘브레인 에너지’에서 신경계 조절 능력이 결국 미토콘드리아의 에너지 대사 문제임을 강조한다. 자율신경 문제를 단순한 예민함이 아닌, ‘에너지 조절 실패’의 관점으로 봐야 한다는 뜻이다. 이러한 전신 조절의 관점은 한의학의 추나 치료와 상호 교류중이기도 한, 서구권의 수기 치료 체계인 오스테오파시(Osteopathy)에서도 핵심적인 개념이다.

장 피에르 바렐(Jean-Pierre Barral)은 내장기의 긴장이 뇌와 신경계 리듬을 흔드는 과정을 체계화했고, 브루노 치클리(Bruno Chikly)는 림프 순환을 통해 신경계의 회복 환경을 정비하는 법을 제시했다. 증상을 억누르기보다 몸이 스스로 회복할 수 있는 환경, 즉 '흐름'을 복구하는 데 집중한 것이다.

아래는 스스로 자율신경 상태를 점검해 볼 수 있는 몇 가지 신호들이다. ‘잠들기 어렵거나 자도 개운하지 않음’, ‘식사 후 더부룩함이나 가스, 트림이 잦음’, ‘스트레스를 받으면 몸이 불편해짐’, ‘손발이 차거나, 얼굴·상체로 열이 쉽게 오름’, ‘원인 모를 두통 및 목·어깨 결림’, ‘사소한 일에도 불안·걱정·초조함’, ‘(여성의 경우) 생리통이 심하거나 생리 주기가 일정하지 않음’. 이런 신호들이 여러 개 겹친다면 자율신경계의 과부하를 의심해 볼 수 있다.

자율신경의 자가관리로는 차, 운동, 호흡명상 등이 활용된다. 동의보감의 조언처럼 복부가 따뜻해야 장기가 움직이고 순환이 이루어져 자율신경의 부담이 줄어든다. 생강차는 속을 따뜻하게 해주고, 귤피차는 속이 더부룩하고 가스가 찰 때 도움이 된다.

숨이 약간 차지만 대화는 가능한 이른바 ‘존 2’ 강도의 가벼운 유산소 운동은 미토콘드리아 수와 기능을 늘려 신경계의 회복 탄력성을 높여준다. 여기에 깊고 느린 복식호흡과 명상을 더하면 부교감신경을 활성화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

자율신경의 문제는 생활관리만으로 충분히 회복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동의보감이 말하듯 이는 몸 전체의 균형과 흐름, 그리고 장부 기능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구조적인 긴장과 부정렬을 바로잡아 신경계의 부담을 줄이는 접근과 함께, 장부가 제 기능을 회복하도록 돕는 치료가 병행될 때 회복은 더 안정적이고 지속된다. 잠을 잘 자고, 소화가 편해지고, 손발이 따뜻해지며, 생리와 같은 몸의 리듬이 안정될 때 비로소 자율신경은 스스로 조절하는 힘을 되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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