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너머] 바이오 키우신다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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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바이오산업을 설명할 때 빠지지 않는 표현이 있다. “글로벌 신약 파이프라인 3위 국가”이다.

숫자가 이를 뒷받침한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에 따르면 2024년 기준 한국이 보유한 신약 파이프라인은 3233개다. 미국(1만1200개), 중국(6098개)에 이어 세계 세 번째 규모다. 신약개발에 도전하는 기업 수와 연구 프로젝트 수만 놓고 보면 산업의 외형은 분명히 커졌다.

그러나 이 수치가 곧 산업 경쟁력을 의미하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글로벌 제약 시장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2% 안팎에 불과하다. 세계 시장의 중심은 여전히 미국과 유럽이고, 중국은 국가 주도의 대규모 투자로 빠르게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파이프라인 수는 늘었지만 시장에서 ‘영향력’은 지극히 낮다.

이러한 괴리는 블록버스터 신약 부재에서 더욱 분명해진다. 2025년까지 허가된 국산 신약은 41호에 달하지만, 글로벌 시장에서의 성공 사례는 아직 없다. 기술수출 성과가 이어지고는 있으나, 대부분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고 상업적 성공으로 이어진 경우는 제한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제네릭의약품과 특허 만료 의약품을 대상의 약가인하 방안을 꺼내 들었다. 명분은 건강보험 재정 안정이다. 재정 절감이란 단기 효과는 기대할 수 있겠으나, 산업 구조를 고려하면 우려의 시선도 적지 않다.

국내 업계가 블록버스터 신약으로 대규모 현금 창출 단계에 이르지 못한 상황에서 제네릭과 개량신약은 연구개발(R&D)을 지속하기 위한 핵심 재원 역할을 한다. 신약개발은 성공보다 실패 확률이 훨씬 높다. 이를 감당하게 하는 건 안정적인 현금 흐름이다.

성장 단계인 K-제약바이오산업에 필요한 건 체력 보강이다. 제약바이오는 단기간에 성과를 내기 어려운 산업이다. 약가인하가 당장 건보 재정 수치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지만, 줄어든 연구개발 투자는 수년 뒤 산업 경쟁력 약화로 연결될 수 있다. 결국, 그 비용은 산업과 시장 전체가 부담할 수 밖에 없다.

정부의 제약바이오 산업 육성 목표가 유효하다면 산업이 지속해서 도전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우선이다. “바이오 키우신다면서요?”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선언이 아니라 정책의 방향에서 확인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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