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기술 자립’ 장벽⋯韓기업 리스크 관리ㆍ맞춤형 생존 전략 [리셋 차이나]

SK, 그룹 차원 중국 전략 검토
하이닉스, D램 생산·R&D 분산
현대차 '일렉시오'로 정면승부
삼성 '갤 Z 트라이폴드' 내세워
AI 응용ㆍ콘텐츠 협력 여지 있어

한중 정상회담 이후 ‘리셋 차이나’의 방향타가 기술로 옮겨졌다. 시장 접근과 투자 재개를 넘어 중국이 설정한 ‘기술 자립’의 벽을 한국 기업들이 넘을 수 있느냐가 핵심 질문으로 부상했다. 반도체와 인공지능(AI), 배터리, 통신 장비 등 핵심 영역에서 자급률 제고를 전면에 내세운 정책 기조는 외국 기업의 단순 생산기지 역할을 허용하지 않는 방향으로 진화했다. 한국 기업 입장에서는 기술 이전 요구와 데이터 규제, 현지 생태계 편입 압박이라는 복합 리스크가 상존한다.

13일 재계에 따르면 SK그룹은 최근 주요 경영진이 참석하는 토요일 회의에서 중국 사업을 재점검했다. 최창원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부회장)과 서진우 중국 총괄 부회장을 비롯해 SK이노베이션, SK수펙스추구협의회 AI위원회, SK텔레콤, SK하이닉스 등 계열사 대표들이 참여해 그룹 차원의 중국 전략을 다시 들여다봤다.

미중 갈등 장기화 속에서 한중 관계 개선 신호가 포착되자 선택과 집중에 기반한 ‘관리형 재진입’ 전략을 검토 중인 것으로 파악된다. SK그룹은 정책·통상 경험이 풍부한 박성택 전 산업통상자원부 1차관을 SK차이나 사장으로 영입해 리스크 관리와 대관 대응을 강화했다.

SK하이닉스는 기술 주도권 방어에 방점을 찍었다. 미국·중국·일본 주요 거점에 글로벌 AI 리서치 센터를 신설해 시스템 아키텍처 연구를 가속화하고 빅테크와의 협력은 확대하되 핵심 기술은 글로벌 분산 구조로 관리한다는 전략이다. 중국 우시와 다롄에 D램·낸드플래시 생산기지를 운영하면서도 연구개발(R&D)의 중심축을 다변화해 기술 유출 리스크를 낮춘다는 계산이다.

현대자동차그룹도 중국 전략 재정비에 나섰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이달 초 이재명 대통령의 중국 국빈방문을 계기로 열린 한중 비즈니스 포럼에서 중국 투자 의지를 재확인했다. 정 회장은 판매와 생산이 모두 위축된 현실을 언급하며 겸손한 자세로 현지 경쟁력 회복에 나서겠다는 메시지를 냈다.

현대차그룹은 중국 소비자를 겨냥한 현지 전략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일렉시오’를 공개하며 기술 사양과 가격 경쟁력을 동시에 겨냥했다. 전기차 전용 플랫폼과 고용량 배터리를 앞세워 주행거리와 충전 성능을 개선하며 현지 브랜드와의 정면 승부를 택했다.

삼성전자는 ‘현지 최적화+프리미엄 기술’ 투트랙 전략을 가동했다. 폴더블 스마트폰 ‘갤럭시 Z 트라이폴드’를 중국을 포함한 주요 시장에 순차 출시하며 기술 리더십을 전면에 내세웠다. 지난해 상하이에서 열린 중국 최대 가전 전시회 AWE 2025에서는 중국 소비자 라이프스타일에 맞춘 AI 홈 경험을 선보이며 브랜드 존재감을 재확인했다.

동시에 중국 영업 전문가를 전진 배치해 인력 구조를 강화했다. 지난해 정기 임원 인사에서 DS부문 DSC 화남영업팀장 제이콥주 부사장을 승진시키며 중화권 영업을 강화했고 이달 초에는 네트워크사업부 김상식 전문가를 제조기술 부문 명장으로 선정해 중국을 포함한 해외 생산거점의 공정 혁신 역량을 끌어올렸다.

전문가들은 한중 관계 개선이 곧바로 기술 협력 확대로 이어지기는 쉽지 않다고 본다. 중국의 기술 자립 노선은 구조적 흐름이기 때문이다. 다만 인공지능 응용, 콘텐츠, 일부 소비재 기술 등 비교적 규제 강도가 낮은 영역에서는 선택적 협력 여지가 남아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결국 관건은 ‘어디까지 들어가고 무엇을 지킬 것인가’다. 재계 관계자는 “한·중 회담은 관계 개선의 문을 열었지만 기술 자립이라는 중국의 전략 목표는 더 분명해졌다”며 “한국 기업들은 낙관도 철수도 아닌 정교한 포트폴리오 전략으로 중국 시장을 다시 계산대에 올리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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