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장관·여당 "전기 있는 곳으로 가"⋯하남 주민 설득 명분 상실 우려

정부와 여당을 중심으로 분출하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호남 이전론’이 국가 전력 안보의 핵심인 ‘에너지 고속도로’ 구축 사업을 좌초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 특히 동해안-수도권 송전망의 핵심 관문인 경기 하남시 ‘동서울변전소’ 증설이 지방자치단체 인허가에 막혀 2년째 표류 중인 상황에서 여권의 산업 입지 변경 주장은 주민 반발에 기름을 붓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2일 정치권과 업계에 따르면 최근 여권을 중심으로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의 입지를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조직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앞서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이 지난달 26일 한 라디오 방송에서 “용인 클러스터 전력 수요가 16GW(원전 15기 분량)에 달한다”며 “지금이라도 전기가 풍부한 지역으로 기업 이전을 고민해야 한다”고 밝힌 것이 발단이 됐다. 더불어민주당 내 호남권 의원들도 이에 가세했다. 안호영, 윤준병 의원 등은 “수도권 중심 성장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반도체 공장의 전북 이전을 공개적으로 요구하고 나섰다.
급기야 청와대가 8일 “검토하지 않은 상황이며 기업 자율”이라고 선을 그었지만 여진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문제는 정부·여당이 주장하는 ‘수요 분산론’이 현 정부의 핵심 공약인 ‘에너지 고속도로’의 취지를 정면으로 부정한다는 점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재생에너지와 원전 등 분산된 에너지를 수요처와 효율적으로 연결하는 지능형 전력망인 에너지 고속도로를 깔겠다”고 공언해왔다. 이러한 구상을 뒷받침하기 위해 지난해 9월에는 국무총리 산하 위원회를 신설해 지자체 인허가 절차를 획기적으로 단축하는 ‘국가기간 전력망 확충 특별법’까지 시행하며 제도적 기반도 탄탄히 다져놓은 상태다.
에너지 고속도로의 핵심은 동해안의 원전·화력발전과 호남의 풍부한 재생에너지를 수도권 등 산업 중심지로 막힘없이 수송하는 초고압직류송전(HVDC)망 구축이다.
정부가 추진 중인 ‘동해안-수도권 HVDC’ 건설 사업은 이 에너지 고속도로의 핵심 축이다. 동해안의 대규모 전력을 수도권으로 끌어오기 위해서는 종착지인 경기 하남시 ‘동서울변전소’의 옥내화 및 증설이 필수적이다. 이 구간이 뚫리지 않으면 에너지 고속도로는 끊어진 다리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하남시는 전자파와 소음 등을 우려한 주민 반발을 이유로 2년째 인허가를 불허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주무부처 장관과 여당이 “고속도로를 뚫는 대신 도시(공장)를 옮기자”는 주장을 펴면서 사실상 정부가 역점 추진해온 국책 사업의 당위성을 스스로 훼손하는 ‘자기모순’에 빠졌다는 비판이 나온다. 사업 담당자인 한국전력이 하남 주민들에게 “국가 첨단 산업을 위해 변전소 증설이 시급하다”고 호소해도 “장관도 공장을 지방으로 옮기자는데 왜 굳이 우리 동네에 혐오 시설을 들이냐”는 반박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생산 공정상 현실적인 문제도 있다. SK하이닉스는 이미 지난해 용인 팹(공장) 착공에 들어가 2027년 5월 1기 준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삼성전자 역시 2026년 기반 조성 및 착공에 돌입해 2030년 첫 가동을 시작으로 2042년까지 총 5기의 팹을 순차적으로 건설할 계획이다.
전력업계 관계자는 “이미 수조 원이 투입돼 터 파기와 기초 공사가 한창인 상황에서 전기 때문에 공장을 옮기자는 주장은 기업 입장에서는 청천벽력과 같다”고 지적했다.
이어 “동해안-수도권 HVDC는 용인 클러스터뿐만 아니라 수도권 전체의 전력 공급 안정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필수재”라며 “정부와 여당이 이전론으로 혼란을 부추길 것이 아니라 꽉 막힌 하남시 등 지자체의 인허가 문제를 풀기 위해 범정부 차원에서 나서야 할 때”라고 말했다.









